▲ 보안스님 시드니 보리사 주지스님

사람은 선사시대로부터 자연의 재해를 이겨낼 힘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에 어떤 커다란 힘을 가진 존재가 있어서 그들의 힘을 능가할 수 없고 그들에게 타협을 하고 복종을 해야 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서 종교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불교가 서양적 개념 정리에 휩쓸려서 삶에 도움이 되는 진리에서 종교라는 범위에 들어가서 본래 가진 의미가 변질돼 이해되고 있다.


불교에서의 믿음은 어떤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본 마음이 부처라는 것을 믿고, 누구나 모든 생명은 본 마음이 같다는 것을 믿고, 어느 무엇도 변하지 않음이 없음을 믿고,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이 조건에 의해서 다르다는 것을 믿고, 어느 무엇도 그 자체로 영원하지 않음을 믿고, 이런 믿음을 완성하면 마음이 어느 무엇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해져서 나와 세상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을 자연스럽게 제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고,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불변의 진리를 말하게 되며, 다툼보다는 평화로운 방향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실천하면서 조금씩 내 마음에 있는 어느 누군가를 괴롭게하는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스스로 다시 어느 누군가를 괴롭게 할 고통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불상은 위대한 스승이기에 닮아가기 위해서 만들어 모시는 것이고, 근본자리로 돌아가는 방법이 각각의 업에 따라 다르므로 여러가지 문 즉 방법이 생기고 그 방법을 이룬 분들의 모습을 조성하여 모시는 따라가야 할 대상이며,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상에 기도를 하여도 기도가 성취된다. 기도가 성취되는 것은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업이 바뀌어 막힌 부분이 자연스럽게 뚫리는 것이다.


부처님은 뭔가를 믿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말하고 계실 뿐이다. 불교에서의 부처는 믿는 대상이 아니고 내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에 가는 길을 알려준 위대한 스승이다. 그 가르침을 오롯하게 실천하고 가르쳐주는 분들도 좋은 스승이다.


우주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진리,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 원인과 조건과 결과로 이어지는 그 이치를 알면 쳇바퀴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얽힌 것이라도 서서히 풀려간다. 자유로워진다. 지혜로워지고 자비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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