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출처=freepik company.

‘조현병’이란 용어는 옛 이름인 ‘정신분열증’에 내포된 부정적 어감을 순화하기 위해 2010년 이후 변경된 명칭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나쁜 인상을 가진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대학 이 모 씨(27)는 조현병에 대해 “솔직히 두려움의 대상”이며 “잠재적인 범죄 가능성을 내포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18년에 실시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관련 설문에 따르면 비장애인 1000명 중 69.1%의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한국 미디어의 ‘조현병 마케팅'

위와 같은 조현병 인식의 원인을 지난 6월 오마이뉴스 보도에선 언론 미디어의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사는 사건의 맥락과 범죄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조현병’이라는 병력만을 강조한 자극적인 보도방식을 문제 삼았다. 언론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문제는 이어졌다. 2018년 방영했던 OCN ‘보이스 시즌2’, SBS ‘황후의 품격’, ‘여우각시별’ 세 드라마에서는 작중 인물의 폭력적인 범죄를 주체자의 조현병 질환에 의한 것으로 묘사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 최근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정신질환자 비하 발언 문제도 있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일부인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사회에서 배제해 버린다는 점에서 대중의 비판과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료만 적절히 받으면 조현병은 위험한 질환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현병은 생물학적,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뇌의 이상이 생기는 질환으로 그 증상은 환청, 환영, 망상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일반적 통념처럼 반드시 폭력적인 성향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대부분 약물을 비롯한 치료로 관리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입원 치료 등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병을 앓고 있다는 병식이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일반 치료로 회복관리 된다고 한다.

부재한 복지 시스템과 단절된 당사자들

과거에는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정신질환자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이것은 상처의 기억이다. 2016년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역학조사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비(非)자의 강제입원 환자는 5만 1,416명이다. 또한 동년 퇴원 후 1년 이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10만 명 당 700명으로 일반인 29명보다 약 24배 높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한 것이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안이다.

96년 12월 말일부터 시행되어 17차례의 개정을 거쳐 온 과거 ‘정신보건법’은 2016년 9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내용으로 하는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이후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란 제명으로 법률이 전부개정되면서 환자의 인권 보장을 표방하게 되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고 나서 강제입원이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지고 비자의 입원 환자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단법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하 ‘파도손’)의 대표이자 조현병 당사자인 이정하 대표는 이에 관한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강제입원이 까다로워진 만큼 지역사회의 대안적 시스템이 존재해야 하는데 한국엔 그것이 부재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은 당사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이 문제해결을 도와 해결을 이루는 위기 개입 시스템과 응급환자들에 대한 응급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이러한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았을 때 조현병 사각지대가 발생하는데, 최근 미디어에 보도되는 ‘조현병 범죄’는 모두 이 사각지대 안에서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표는 “‘범인이 조현병 환자’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미디어의 보도가 조현병 당사자들을 죽이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제대로 된 사실 검증도 없이 보도되어 일반 시민의 혐오와 차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조현병 당사자들은 실제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증상 악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피력했다. 더불어 당사자들의 예정되어 있던 취업이 취소되거나, 지역사회의 정신장애인 주거시설 계획이 취소되는 등의 사례들을 들며 언론의 선정적 보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반 시민의 목숨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매해 수많은 사람이 사회적 타살로 목숨을 잃는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조현병 당사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의 기사나, 범인이 조현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범죄사건 보도 기사의 댓글 창을 보면 일반 시민들의 혐오와 공포를 파악할 수 있다. 차별이 옳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들의 범죄를 예측할 수 없으니 통제, 관리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조현병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유병률이 1%나 되는 흔한 병이고, 한국 사회에 약 51만 명이나 앓고 있는 조현병을 무슨 수로 통제, 관리하냐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근본적 문제를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이어서 정신장애인 범죄에 대한 접근의 핵심은 범죄자를 대하기 이전에 정신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라고 밝혔다. 그들이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이 아무런 편견과 사회적 손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병의 주된 원인인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맘 놓고 공유할 수 있는 연대의 장, 소통의 장을 넓게 마련하는 것이다.

스스로 일어서며 연대를 도모하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만드는 언론인 ‘마인드포스트’는 그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며, 구독 및 조회를 위해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기성 언론을 대체하기 위한 대안 언론이다. 그들은 KBS ‘추적 60분’에서 보도된 「조현병 범죄의 진실」 방송을 보고 「추적60분 ‘조현병 범죄의 진실’편을 보고…“우리는 탄식한다”」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이자 조현병 당사자이기도 한 박종언 기자는 “‘존재론적 모욕감’을 느꼈다”고 서술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파도손 역시 자체 홈페이지 커뮤니티 ‘당사자주의’ 게시판에 기고문을 게시하며 조현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당사자’라는 명칭은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신체장애인까지 사용하는 용어다. 이에 대해 이정하 대표는 “‘환자’나 ‘장애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타자화되고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당사자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외부에서 그들을 가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조현병 당사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움직임을 보이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여전히 정부나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는 부족하다. 이정하 대표는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서비스와 인프라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현재 조현병 관련 정신건강 관련 기관은 정신건강 복지센터가 중심역할을 하고 정신 재활 시설이 사회 복귀를 담당하는 구조다. 하지만 그 수가 부족하며, 지역별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이정하 대표가 직접 당사자들끼리의 연대 조직을 만든 이유는 외부의 도움이 있기 전에 자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성과 관련이 있다. 정부 지원이 없어 사비를 들여가며 시작한 당사자운동은 현재 많은 결과물을 낳았다. 올해 파도손 산하의 당사자 지원 사업이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지정되었다. 이를 ‘절차 구조 사업’이라고 하는데, 당사자가 활동가로서 월급을 받으며 다른 당사자를 돕고 아픈 정신장애인을 면회하는 등의 일을 한다.

덧붙여서 이 대표는 파도손이 우리학교에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움을 주겠다고 밝히며 “동국대 학생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파도손에 연락을 주거나 충무로의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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