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유명인의 죽음에 '미안하다'는 감정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기존의 질서와 통념에 저항하는 설리(본명 최진리)의 행보를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의 편에 선 적은 없었다. 그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적이 없고, 그를 공격하는 악플에 맞서 싸우지도 않았다.

단순히 개인 수준에서의 미안함은 아니었다. 흔히 악플을 설리 죽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그런데 설리를 향한 악플이 나오게 된 맥락에는 '언론'과 여성을 도구화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자이면서 동시에 지금껏 ‘여성혐오 문화’를 나도 모르는 사이 방조․묵인했던 남성으로서 ‘남 탓’을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설리가 ‘논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런데 설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하나를 전부 기사화하며 실제로 ‘논란’을 만들어 낸 것은 언론이었다. 불필요한 ‘가십 기사’를 생산해서 설리의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려놓고, 사실상 그에 대한 비난을 유도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설리의 추모 칼럼을 연달아 싣는 매체들은, 대부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던 곳이다. 심지어 한 매체는 설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도 ‘노브라 주창’을 운운했다. 설리를 ‘조회 수’ 얻는 도구로 이용했던 언론은 왜 반성하지 않는 걸까?

동시에 언론과 누리꾼들이 설리를 끊임없이 ‘문제시’했던 이유는, 그가 아이돌 출신 여성연예인에게 요구되는 규범, ‘예의 바른’, ‘조신한’, ‘귀여운’ 등의 태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성을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하려는 남성의 욕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한 명의 평등한 ‘주체’로서 인정받으려던 설리가 견디기엔, 너무나 폭력적인 구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남성 중심적 시선에 재단당하기를 거부하며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설리의 죽음 이후, 악플 방지법이나 인터넷실명제 도입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언론도 악플이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인지에 대해 계속 보도하는 중이다. 그런데 ‘악플’ 문제만 부각되다 보니, 정작 반성하고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행동하고 있다. 언론의 ‘조회 수’ 장사와 ‘여성혐오’의 공모가 악플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구조를 만드는 상황을 간과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적어도 이미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을 지키려면, 지금부터라도 ‘악플 너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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