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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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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이 블라인드로 느껴지지 않는 한국에서
▲현요아 (국문문창 15)

선배가 채용 연계형 인턴으로 일하던 모 기업에서 최종 불합격했다. 그 기업은 초창기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해 경험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형성한 곳이었다. 선배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인턴에 합격했는데, 출근 첫날 학력과 학점들을 적어냈다고 했다. 그는 3개월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거의 인서울 학생이었다는 말을 덧붙였고, 나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업이 인서울이라는 잣대 하나로 떨어뜨리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선배가 잠시 몸담았던 그곳은 정량적인 스펙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홍보가 대단했으므로 그가 첫날 펜을 잡으며 느꼈을 박탈감이 어느 정도는 짐작됐다. 또한 평소 그가 겪었던 학벌에 대한 부조리함이 얼마나 그를 옥죄었을지도 느껴졌다.

 정량적 스펙에 대한 주눅이 비단 그의 일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막 학기여서일까. 지난주,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한 학우가 “그 기업은 학벌을 많이 본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런가요?”라 물었고, 그는 “서연고는 둘째 치고, 카이스트도 정말 많습니다.”라 답했다. 슬픔까지 더해진 분위기 탓에 그는 그래도 개개인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 나처럼 그렇지 않은 이도 많다는 말을 덧붙였으나 이미 좌절한 학우들에게 들릴 리는 만무했다.

지금도 속속히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으나,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은 블라인드가 블라인드가 아님을 확신한다. 모 기업의 이력서만 하더라도, 어학 점수는 물론 자격증이나 해외 경험까지 써야 하는데도 자기소개서란에 와서야 블라인드라는 글자가 작게 표시되어 있었다. 열띤 점수 경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토익과 학점은 고고익선, 자격증은 다다익선이다. 학벌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꿀 수는 없기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그 나머지, 대표적으로 학점에 집중한다. 강의 평가를 열람할 때면 ‘팀플이 없으니 신청하라’거나 ‘플러스를 채워주시는 편’ 같은 후기들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반대로, 설령 A+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한 학기 동안 무얼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학우들을 숱하게 마주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슬퍼하느냐 하면 아니다. 문과는 4.0 이하로 뽑지 않는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점이 낮으며, 막 학기지만 17학점을 듣는다. 수강 정정 때면 폐강 위기에 놓이는 과목에 남아있기를 좋아하고, 졸업 요건을 채웠음에도 학구열을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전공 강의를 수강한다. 높은 난도를 요구하는 수업인지라 플러스는 더해지지 않아도 배운 것은 참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력서 앞에서는 자주 초라해진다. 분명 많은 것을 익히고 해냈건만 낮은 점수가 성실성과 열정의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이번 학기, 역시나 어렵다고 소문난 강의를 신청했다. 교수는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은 뒤 답이 없다면 수업을 중단한다. 자문하는 과정 속 큰 깨달음을 얻는 시간에서 교수는 서울대의 얘기를 꺼냈다. “오픽이나 학점을 높인다고 서울대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서울대가 진리라는 정신을 추구하는 것처럼, 동국대도 동국대만의 특별한 정신이 필요하다.” 획일화된 같은 선상에서 쫓아가면 학벌에 대한 격차만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는 뜻이 담긴 이 말을 우리대학 모든 학우에게 전하고 싶었다. 물에서 나와야 물의 논리를 깨닫듯, 정량화된 스펙에서 잠깐 발을 떼고 동국인들이 어떤 식으로 타 대학 학생과 차별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나는 그 실천이,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수업 시간에 입을 여는 것으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으리라 감히 확신한다.

현요아  dgupress@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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