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출처=shutterstock.

사진과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SNS에 ‘꿀잠템’을 검색하면 오 천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이렇게 수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숙면을 도와주는 다양한 상품이 등장하고 수면 사업 시장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면 사업 시장의 본격적인 성장은 어떻게 나타나게 됐을까?

 

슬리포노믹스의 필연적 등장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대충이라도 아침을 챙겨 먹고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10분 더 잠을 잘 것인가.’ 실제 생활에서 밥과 잠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은 반복되지만, 그 사회적 관심도는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식생활을 중시하는 풍토였지만 오늘날 수면의 관심도와 그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면건강연구소의 황청풍 소장은 “경제가 성장하고,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식생활뿐 아니라 수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했고, 그에 관련한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가 성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며 수면의 위상과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미국, 유럽국가의 경우 수면에 대한 연구와 수면 사업 시장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반면, 한국은 2010년 즈음부터 본격화돼 수면 연구와 사업의 시작이 선진국에 비해 늦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수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연하게 높아진 데는 경제 성장 이후에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계기가 있었다. 황 소장은 그 계기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꼽았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나타난 현대인의 습관 중 하나는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올해 1월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수면을 방해하는 청색광 자극에 사용자를 노출시켜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억제한다. 또한 스마트폰은 TV 모니터보다 청색광을 많이 분출하고 수면 방해 효과는 에스프레소 커피 2잔 섭취보다 강하다. 하지만 청색광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사용자는 스마트폰의 존재만으로 수면 시간 확보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김서연(국문문창18) 씨는 “스마트폰을 하느라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잘 때가 많다”며 “다음 날 등교를 걱정하며 억지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지만 늦게 자서 수업 시간에 종종 넋이 빠지곤 한다”고 밝혔다.

수면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스마트폰과 바쁜 일과로 잠이 부족해진 현대인들이 수면욕을 충족하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며 기업 역시 본격적으로 수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면 사업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에서도 지난 2010년에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슬리포노믹스는 잠(Sleep)과 경제(Economic)의 합성어로 현대인이 숙면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수면 사업 시장이 거대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국에서 슬리포노믹스라는 표현의 사용과 수면 사업 시장의 확연한 성장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약 20년 늦게 나타났다. 그러나 올해 한국의 수면 시장 규모는 3조 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며 한국의 수면 사업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떠올랐다.

 

성장하는 슬리포노믹스 산업

슬리포노믹스라는 표현 자체는 생소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현상은 결코 생소하지 않다. 많은 현대인이 직간접적으로 슬리포노믹스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취침 등의 용도로 무드등을 사거나, 숙면을 위해 캔들과 캔들 워머를 산 것 모두 슬리포노믹스 상품을 이용한 것에 해당한다. 라텍스나 메모리폼의 특수 재질로 제작한 베개, 수면 안대, 극세사 잠옷도 슬리포노믹스 상품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헬스, 뷰티 스토어에 숙면을 위한 환과 차 제품이 들어와 소비자들은 슬리포노믹스 상품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실제 제품뿐 아니라 심리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인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역시 처음에는 슬리포노믹스 상품으로 등장했다. ASMR 영상은 바람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재생 시켜 청취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잠들 수 있게 한다.

숙면에 대한 현대인의 높아진 관심에 발맞춰 기업 역시 앞 다투어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면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내의 한 화장품 브랜드는 작년 신사동 가로수길에 ‘숙면 연구소’를 설립했다. 숙면 연구소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밤잠 이루지 못하는 현대인이 숙면하도록 돕는다. 또한 국내 유명 체인 영화관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시적으로 낮잠을 잘 수 있는 ‘시에스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밥보다는 잠이 절실한 현대인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다.

이처럼 수면 사업 시장은 계속 확장됐지만, 슬리포노믹스 분야의 경제성은 과학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했다. 과학 기술은 수면의 질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키는 단계까지 발전했고 수면 사업에 과학 기술을 직접적으로 접목하려는 움직임 역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사용자의 수면 관련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수면을 돕는 기술을 지칭하는 슬립 테크(Sleep-Tech)라는 용어 역시 새로 등장하게 됐다. 슬립 테크의 대표적 예시로는 베개 형태의 수면 로봇 섬녹스(Somnox)가 있다. 섬녹스는 가속도계, 오디오 센서, 이산화탄소 센서가 장착돼 있어 사용자의 숙면을 돕는 적절한 움직임을 취하고, 소리를 재생시킨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호흡 리듬의 조절과 같이 사용자의 신체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슬리포노믹스 산업은 IT 기술과 결합하여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산업과 결합한 수면, 그 위험성은?

언뜻 보기엔 슬리포노믹스의 등장은 긍정적 결과만 가져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업이 기존의 자연적 행위로 여겨졌던 수면의 영역에 들어서고, 수면과 관련된 상품화가 진행되며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수면 제품의 경우 사용자가 그 효과를 느낌으로 어렴풋이 알 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특성으로 수면 사업 시장에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채 판매되는 제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ASMR에 수면 유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ASMR이 의학적으로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이에 대해 황 소장은 “ASMR이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사용자가 수면 유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더불어 다양한 수면 제품의 등장은 오히려 수면 문제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막을 우려가 있다. 지난 1월 필립스의 글로벌 수면 서베이는 한국, 호주,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인도, 일본, 네덜란드, 싱가포르, 미국 등 총 12개국 성인 약 만 천 명을 대상으로 수면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수면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는 조사국 중 한국이 가장 높았고 실제 수면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의료진을 찾는 비율은 가장 낮았다. 이는 숙면에 대한 욕구와 별개로 많은 한국인이 수면 문제 자체에 대한 치료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황 소장은 “아주 작은 변화로 해결되는 수면 문제들이 많지만 아직은 치료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식이 부족하다”며 “코골이나 수면 무호흡증을 비롯한 수면 장애들의 경우 수면 제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숙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수면 사업이 발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건강에 대한 의식 수준이 향상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면에 관심을 기울일 땐, 자신의 수면 습관에 대한 이해를 수면 제품의 구매보다 우선해야 한다. 황 소장 또한 “수면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증대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수면이 사업과 연계됐을 때의 우려할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면에 대한 관심은 제품 검색보다는 자신의 수면 습관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