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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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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없는 것이 한이다
▲유흔우 철학과 교수

“다만 나에게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唯我無蛙人生之恨).” 고려의 대학자인 이규보(李奎報)가 과거(科擧)에 몇 차례 낙방하자 자기 집 대문에 써 붙였던 구절이라고 한다. 이는 ‘와이로(蛙利鷺)’라는 말의 출처가 되는데, 개구리 와(蛙), 이로울 이(利), 해오라기 로(鷺)이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경로를 통해 상대방에게 금품이나 물품을 전달하고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어느 날 까마귀가 목소리 좋고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꾀꼬리를 찾아와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고 제안한다. 꾀꼬리는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승낙하고 해오라기(백로)를 심판으로 삼아 노래시합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꾀꼬리는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시합 당일, 꾀꼬리는 본래의 재주와 피나는 노력의 결과를 다 보였으나 까마귀는 듣기도 거북하게 까악까악 소리 질러댔다. 그런데 해오라기의 판정 결과는 까마귀의 승리였다. 어찌된 일인가? 까마귀가 연습은 하나도 하지 않고 미리 해오라기를 찾아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알게 된 꾀꼬리는 실의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이규보가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임금한테 한 말이다. 이규보는 이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승승장구하고 「동명왕편」과 같은 대문장을 후세에 남겼다. 하지만 최씨무인 정권에 몇 차례 핍박을 받게 되자 마침내 보신(保身)을 위해 부당한 정권에 충성을 다한다. 


이규보는 또 젊었을 때 강좌칠현과 어울리면서도 동참의 권유에는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대나무 아래의 모임에 참여하는 영광을 차지하고서 술을 함께 마셔서 기쁘지만, 칠현 가운데 누가 씨앗에 구멍을 뚫을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노래했다. 중국의 죽림칠현 가운데 인색한 사람 하나가 자기 집의 좋은 오얏 씨앗을 다른 누가 가져다 심을까 염려해 모두 구멍을 뚫어 놓았다는 고사를 빗대어 은거를 표방하면서도 제 먹을 것을 먼저 챙기기는 한계와 이중성을 야유한 것이다. 만년에 보인 이규보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벼슬과 영달을 추구했던 자기 본래의 모습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위험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순탄한 곳을 만나 멈추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대는 위험한 곳을 만나 멈췄는가? 아니면 순탄한 곳을 만나 멈췄는가? 뜻을 잃고 멈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뜻을 얻고 멈추는 것은 군자만이 할 수 있다. 그대는 뜻을 얻고 멈췄는가? 아니면 뜻을 잃은 후에 멈췄는가?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 멈출 수 있고, 뜻을 잃었을 때 멈출 수 있는 자이면 나는 일반인보다 현명하다고 말하겠다. ……한 번에 멈출 수 있는 것은 현자의 일이다. 멈추고, 또 멈추면서 다시 나아갈까 두려워하는 것은 힘써서 가능해진 사람이다. 현자는 내가 볼 수 없어도 힘써서 가능해진 자를 볼 수 있으면 또한 다행이다. 그대는 힘써 그 이름을 저버리지 말고 이 말을 소홀히 하지 말라.” 홍길주(洪吉周)의 「멈춰야 할 때 멈추는 집 이야기[止止堂說]」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신정권에게 유학의 교양을 덧칠하기에 급급했던 이규보는 지식은 많이 갖췄으나 ‘멈출 수 있는 용기’는 없었던 인물이다. 자신의 ‘지식’을 와이로 썼던 이규보에게서 지식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우리는 현자(賢者)나 그 이상은 아니라도 ‘힘써서 가능해진 사람’이라도 볼 수 있을까?

유흔우  dgupres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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