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걸어가는 일’로 곧잘 비유된다. 걸음이란 방향과 행동을 담고 있기에, 누군가가 걸어온 길은 곧 그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손과 발은 모두 행동(行)을 상징한다. 손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뜻한다면, 발은 땅을 딛고 묵묵히 갈 길을 감으로써 개인의 가치관과 행보를 담고 있다. 발이 가는 방향은 손의 일을 규정하고, 손이 하는 행동은 발의 행보를 지시하면서 손발이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우리 일생 동안의 여행 가운데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 하였다. 머리와 가슴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움에 대해 ‘가장 먼 여행’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머리로는 그럴듯한 생각을 곧잘 해 말과 글로 나타낸다. 하지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기 힘들고, 가슴으로 느꼈다 하더라도 발을 움직여 행동으로 옮기기는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부처님은 삶 자체가 행동이요 실천이었다. 길을 걸으며 갖가지 상황을 만날 때마다 질문과 답변으로 가르침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모이면 넓은 들판에서 가르침을 펼쳤으며, 길 위의 숲에 누워 열반하였으니 참으로 발의 의미를 생생히 일깨워준 삶이었다. 그가 두 발로 남긴 것이 후세인들에게 진리의 길(道)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어느 스님에게 제자가 물었다. “어디로 향하나 부처님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고, 큰길이 열반의 문 앞까지 곧게 뚫려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스님은 지팡이로 제자의 바로 앞에 줄을 그었다. “바로 여기서부터!”


실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일깨우는 문답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체험할 수 없는 곳에 있어, 우리에게 실재하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이다. 바로 이 자리에 강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이니, 지금 이 순간에 머리와 가슴과 발이 하나로 통한다면 깨어있어 삶이 아니겠는가.


‘가을 다람쥐 같다’라는 말이 있듯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건만 자연의 생명들은 찬 바람이 불면서 조용하고 재빠르게 움직인다. 여름새 제비는 돌아가고 겨울새 기러기가 날아들며, 크고 작은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먹이를 저장하며 겨울을 대비한다.
인간의 일생에 비하면 영겁의 세월 동안 반복되었을 자연의 지혜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처럼,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나아가는 자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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