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019.11.12 20:57

동대신문

상단여백
HOME 여론/칼럼 학생칼럼
엄마부대와 애국
▲김태일(사회학과13)

“아베 총리에게 사죄한다.” 놀랍게도 한국인의 말이다. 일본이 일방적 수출규제를 단행한 뒤 엄마부대 대표가 내뱉었다. 가해자에게 사죄하는 기괴함을 연출한 셈이다. 계보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일베 회원들, 그들에게 생맥주와 피자를 나눠주던 인물이다. 위안부 합의 지지 시위, 계엄령 선포 요구 집회에도 엄마부대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강제노역 피해자라 주장했다. 아버지는 이런 고통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조선이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단다. 그 방법이 한국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일본과의 친교다. 그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했다. 역사는 잊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엔 식민사관, 그 이상의 무언가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민족주의를 고집한다. 백인우월주의, 이슬람 극단주의가 그렇다. 자국과 자민족 외부를 배척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특이하다. 안보를 부르짖으며 쿠데타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자라면서 독재를 찾는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흔든다. 이스라엘 국기도 더러 있다. 또 자국 대통령은 내려오라면서 미국 대통령은 환영한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신을 지킨다면서 자해를 해댄다. 단발적 논리들이 엉켜 비논리가 됐다. 외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존적 정체성이 탄생했다. 이 정체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국 보수의 근간은 반공주의다. ‘빨갱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 공산당은 절대 악이었고, 그 반대편에 서는 게 정의였다. 정의를 믿은 그들은 응집했다. 문제는 외부의 적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으면서 발생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됐다. 문민정부에 잇따라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보수로의 정권 교체가 있었으나, 광화문의 촛불은 다시 정권을 되돌렸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나라를 빼앗겼다. 그들에게 한국 정부는 더는 ‘한국’이 아니다. 그들의 한국은 무너졌다. 그들에게 국가는 한 인물로 표상됐기 때문이다.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그들은 국가였고, 우상이었다. 그들의 몰락은 국가의 몰락이었다.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마음의 회계는 논리를 무력화했다.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아오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자아는 사라졌다. 자아의 상실은 특정 신념에의 의지로 이어졌다. 기댈 곳이 필요한데, 그게 스스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치를 지켜만 봤던 당시 독일인들의 심리 기제와 유사하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로 대표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파시즘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자아는 사회적 자아(ego)를 중재자로 하여 그를 억압, 통제, 금지하는 초자아(super ego), 반대로 내재적인 욕구, 충동, 분출 등을 갖춘 이드(id)의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이때 나머지 둘의 중간자적 존재인 ‘자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초자아와 이드가 직접 만난다. ‘억압’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파시즘’이다. 정확하게는 파시즘에 매몰된 군중의 심리 상태다. 자신을 통제해주길 바라는 일종의 마조히즘(masochism)이다.


이번에 우연히 아베였을 뿐이다. 다음에 또 다른 대상을 찾을 터다. 자신들을 억압해줄 수 있는 누구든 상관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서 누군가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해주길 바란다. 그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환상만 충족된다면, 더한 굴종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애국은 망상이다.

김태일  dgupress@dgu.edu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