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형(경영정보18)

사람들은 말하는 대로 생각할까? 아니면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걸까?
이누이트 족들이 ‘눈’에 관한 다양한 단어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요즘에도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은 이누이트 족이나 무지개의 색깔 등의 이야기들과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런 ‘언어의 상대성’에 관한 논의가 오늘날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주류에서 부분적으로만 수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독일 출신의 미국인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1884~1939)와 그의 제자 벤저민 리 워프(1897~1941)는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의 ‘사피어-워프 가설’을 내놓았다. 워프는 “우리는 우리 모국어가 그어놓은 선에 따라 자연 세계를 분단한다.”는 주장과 함께 유명한 이누이트 족의 사례를 근거로 들며 당시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문화나 삶의 방식이 언어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는 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워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언어 자체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 파격적인 가설은 당시 사회언어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런 류의 사유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신어라는 개념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워프의 이런 ‘언어결정론’은 사회운동의 영역까지도 실천되었는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 불리는 언어 개선 운동은 언어가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위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주류는 이런 언어결정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사피어-워프 가설’이 느슨하게는 연구되고 있지만, 워프가 당시 주장했던 엄밀한 차원의 언어결정론은 그 반증 사례가 확실하게 관찰되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진 다민족 국가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후에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론가도 나왔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에 따르면, 사람은 영어나 중국어, 인도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 그 ‘사고의 언어’는 모든 언어들에 선행하는 메타언어다. 핑커의 이런 생각은 모든 언어가 심층구조에서는 동일한 문법을 지녔다는 촘스키 이후 언어학자들의 생각과 연결된다. 이러한 보편언어의 틀 안에서, 지각의 근본적인 체계와 인식작용은 인류에게 종(種)보편적이고, 따라서 언어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구조로부터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말과 생각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의견들은 ‘사피어-워프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20세기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지적 논쟁의 흥미로운 주제였고, 세상보다 언어가 우위에 있다는 말도 사람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언어는 사고나 세계관에 아예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언어가 사고나 세계관을 ‘결정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언어의 도움을 받아 세계를 인식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언어의 도움 없이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반적 수준에서는 언어가 사고의 흔적이고 세계관의 흔적인 것이지 그 거꾸로가 아닌 것이다. 결국 사고나 세계관이 언어의 흔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언어의 화자이던 간에 사고와 인식의 가능성은 똑같이 무한히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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