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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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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말
▲박철우(경영학과14)

괴테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저 문장에서 속도는 이미 방향성이 내포된 개념이므로 속력이라 표현해야 맞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속도라고 한다. 속도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고 일상에서 많이 사용돼서 그런가 보다.
주로 이 문구는 남들보다 뒤쳐진 삶을 살고 있거나,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전달된 말은 방향이 우선적으로 잘못되면 속력은 아무 소용없으니 조금 느리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전개된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걷자.’, ‘얼마나 빠른지에 연연하기 보다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자.’, ‘당신은 루저(loser)가 아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렇게 이 말은 세상의 느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고 그들을 위로하는데 쓰여왔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 구절을 재수하고 삼수할 적에 처음 들었고, 그 후에도 늦어진 삶에 허덕일 때 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맴돌 뿐 와닿지는 못했다.
나는 고교 시절 방황했고 늦은 대학 입학 후에도 이리저리 휘둘리며 지난했다. 한번 늦어진 삶은 좀처럼 되돌리기 쉽지 않았고 그렇기에 더욱 난만했다. 이제야 겨우 삶의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늦더라도 이제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으니 느리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면 난 분명 어딘가 비참해 질 것이다. 저 말은 느리게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기만한다. 삶을 속도와 방향성에 가두고, 방향성이 속도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위로도 격언도 될 수 없다. 그것은 속임수이다. 삶은 속도와 방향성으로 나눌 수 없고, 속도가 방향성 보다 결코 가볍지도 않다. 올바른 방향성이란 또 도대체 무엇인가. 뒤쳐짐에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방향성을 논하는 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 세상에 뒤쳐지고 싶어서 뒤쳐지는 사람은 없고, 세상의 수많은 거북이들은 토끼의 낮잠을 기다리는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속도란 인생에서 아주 기초적인 영역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다들 비슷한 시기에 배우고 결혼하고 자식을 기르며 밥을 벌어먹고 살다가 죽는다. 여기서 비슷한 시기란 사회의 보편적 질서이기 전에 사람의 원초적인 먹고 사는 문제다. 시기를 놓치면 먹고 살기 힘들다. 먹고 산다는 행위는 절대 가볍고 하찮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토대이다. 함부로 삶을 재단해서 삶의 원초적인 소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기만하지 말라.
그래서 “인생은 속도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다. 저 말이 헛소리인 근본적인 이유는 삶을 정의 내리는 사실적 관계에서 정답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 말은 삶을 보편적 개념 안으로 끌어넣으려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삶의 실질을 얘기할 수 없다. 삶은 무수하게 개별적인 것이어서 공식화되고 일반화되어 진리 안으로 귀속될 수 없다. 삶의 길은 언어로써 포획될 수 없고 오직 살아감으로써 채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추상적인 개념과 언어로 올바른 인생이란 이렇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의 질감은 오히려 아주 단순하고 구체적인 무수한 것들로 이뤄져있다. 삶의 힘은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개별성에서 나오고 이것들은 애써서 입 벌려 말할 필요 없다.
그러니 삶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할 필요 없다. 굳이 삶이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라면, 오직 중요한 점은 움직이는 주체가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길은 속도로도 방향성으로도 놓여있지 않다. 빠르든 느리든 향하는 곳이 진흙탕든 오아시스든 결국 내가 가는 것이다. 내가 걸으면 길이고 걷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 뿐이다.
 

박철우  dgupress@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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