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기자.

정보문화관에서 팔정도까지 연결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 보면 잎사귀에 가려진 이정표가 보인다. ‘동우탑가는 길’이라고 적힌 간판은 어쩐지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동우탑은 1960년 4·19혁명 때 희생한 우리 학교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1960년 11월에 세워진 동우탑은 벌써 50년을 넘어 6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의 세월은 민주주의가 된 우리나라 나이를 뜻하기도 한다. 당시 많은 것들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1960년,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하고자 하나둘씩 움직였고 그 작은 움직임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시작된 분노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까지도 확산됐다. 4월 19일 우리대학 40~50여명은 동국대학교 이름이 적힌 붉은 현수막과 함께 대학 교문을 나와 시청,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돌며 행진했다. 하지만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라고 외치며 의견을 표시했던 학생들에게 돌아온 건 무장경관들이 쏘아 올린 최루탄과 물대포였다. 우리대학 학생들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에 맞섰지만, 무장을 한 사람들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희두(법학59) 선배를 포함한 여러 학생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나이에 목숨을 잃은 그들의 모습은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깊은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그들이 있었기에 학내 언론 자치 기구와 같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동대신문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산될 만큼 최근 ‘대학 언론 위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활동하는 학생 기자가 적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학보사도 있으며, 발행되는 신문의 절반 이상이 폐지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학내 언론에 관심이 없어진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최근에 인터넷이 발달되어 신문을 많이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내 사안의 관심이 떨어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약 50년 전 그들처럼 맞서 싸우고 행동으로 보여 달란 말은 아니다. 그저 교내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돌아오는 4월 19일을 생각하며 주변을 향해 눈길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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