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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에 대한 단상
  • 이원석 다르마칼리지 교수
  • 승인 2019.03.25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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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석 다르마칼리지 교수.

요즈음 동악은 ‘새봄’과 ‘신학기’의 시작에다 19학번 ‘새내기’의 가세로 활기가 넘쳐난다. 동악의 ‘신입생’들에게는 사회와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하기를 빌어마지 않으며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한국사회에서 ‘새것’은 대개 환영의 대상이었다.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옛것’은 개혁과 혁명의 대상으로 전락한 반면에 그 부정은 ‘새것’의 정당성을 쉽게 확보해주었다. 이는 한국의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최근 과학계와 산업계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가능성은 ‘새것’에 대한 폭풍이다. 2016년 2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을 계기로 물리학·생물학·디지털 등의 융합과 초연결성은 뚜렷해졌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지능형기계, 3D프린터, 무인운송수단, 신소재, 사물인터넷, 블록체인시스템, 플랫폼기반, 가상·증강현실, 합성생물학 등의 ‘혁신’이 강화되었다.

‘새것’에 대한 바람은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것'은 대학교에 보다 손쉽게 안착하였다. 동악의 커리큘럼에도 사회와 시장의 요구로 ‘새것’은 수용되었다.

반면에 ‘전통적’ 학문은 약화되었다. 모든 학문의 출발이었던 ‘구학’의 대표 철학은 학과의 존재마저 희석되었고, 통치자의 감계학인 역사도 국가와 사회의 압력에 자유롭지 않다. 문학도 사정이 예전만 못하고, 정치학과 사회학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한 때 ‘옛것’은 이상으로 간주되었다. 헤시오도스는 상고를 황금의 시대로 규정하였고, 기독교도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세계를 낙원으로 삼았다. 중국의 유교도 하·은·주의 ‘삼대’를 이상사회로 간주하였다. 조선의 과학자인 홍대용조차도 『의산문답』에서 태고를 이상사회로 보았다. 근대역사학을 정립한 랑케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화하며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역사가의 임무로 삼았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 비판에 직면하였다. 랑케의 주장과 달리 역사가가 ‘현재적’ 관심과 의식의 프리즘을 통하지 않고는 역사적 사실을 재생할 수가 없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그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하였다. 물론 그 방법론에 문제가 있지만 이는 ‘과거’와 ‘현재’, ‘객관’과 ‘주관’의 대화와 상호작용을 중시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옛것’을 공부하여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거론하였고, 박지원은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故創新)’을 언급하였다. 양자는 ‘새것’을 보다 강조하였지만, ‘옛것’을 ‘바탕’으로 삼았다.

시각을 확대하면 중국과 한국의 유학도 공자의 학술과 사상을 재해석하여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합당한 학술체계를 정립하였다. 남송의 주자학이나 명대의 양명학, 청대의 고증학이 모두 그러하였다. 한국의 실학자에게도 상고의 이상과 개혁의 원리나 동력은 밀접하였다. 여기에서 ‘금고(今古)’의 절충과 회통은 중요 관건이었다.

‘옛것’은 부정하고 폐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보다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바탕’이다. 그나마 동악에서 강조되는 명작은 이에 다름 아니다. 동악에는 명작을 정독하고 올바로 이해한 다음 ‘현재’의 한국사회와 관련하여 비판하고 창조하는 열풍이 일어나야 한다. 특히 ‘새내기’들도 크고 굳건한 ‘바탕’을 갖추고 그 위에 ‘새롭고’ 훌륭한 건축물을 쌓아올리기를 학수고대한다.

이원석 다르마칼리지 교수  dgupress@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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