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 언론인 및 시인

열반(涅槃, 니르바나)을 성취하기 위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팔정도(八正道)는 불교와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용어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불자라고 하더라도, 팔정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팔정도의 첫 번째가 정견(正見)인데, 많은 이들이 정견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정견은 흔히 ‘바른 견해’로 이해된다. 조금 더 자세히 아는 이들은 정견을 ‘연기(緣起)와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지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견을 ‘바른 견해’라고 아는 것은 너무 협소하고, ‘연기와 사성제에 대한 지혜’라고 아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바른 견해’와 ‘연기와 사성제에 대한 지혜’라는 정견에 대한 이해가 틀린 건 아니지만, 그 의미가 지나치게 축소되었거나 확대된 것이어서 두 경우 모두 막연함에 머무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면 정견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아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일상에서 늘 부딪치는 신호등을 비유로 들어보기로 하자. 신호등의 색깔은 빨강, 초록, 노랑 세 가지이다. 사고를 당하지 않거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운전자이건 보행자이건 세 가지 색깔의 등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적색등은 적색등으로, 녹색등은 녹색등으로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바르게 보는 것만으로는 완전하지가 않다. 각각의 신호등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색등은 ‘멈추라’는 신호이고, 녹색등은 ‘가라’는 신호라는 것까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만약 적색등을 녹색등으로 착각하거나 녹색등을 적색등으로 잘못 본다면 곧 위험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적색등과 녹색등이 가리키는 의미를 혼동한다면 이 또한 큰 낭패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아야 하는 것, 즉 정견이 왜 중요한 지, 왜 팔정도의 첫 번째가 되었는지 신호등의 비유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철스님의 법어로 널리 알려진 ‘산은 산, 물은 물’도 정견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왜곡된 선입견으로 산을 물로, 물을 산으로 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늘 알아차리며 살라는 경책의 말씀이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아는’ 정견에 입각해 행동거지(行動擧止)를 하고 있는지 늘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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