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에서 본 인간관계의 기술

▲책 ‘소코의 미소’(2016).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에 나와 처음 빛을 본 순간에는 ‘가족’이라는 자들이 내 옆을 지키고 있고, 학교나 직장을 다니면 ‘동료’라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인생의 절반이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해도 될 만큼 이는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부딪히는 일도 많다. 살아온 과정과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면 여러 감정이 오고 간다. 질투심, 서운함, 공허함, 어색함, 불편함… 등등. 오히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더 많다. 고작 60페이지 속에 담긴 ‘쇼코의 미소’에서는 신기하게도 ‘관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 들어있다.
주인공 소유는 교환학생 쇼코가 자신의 집에 지내게 된 후 집 안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생각한다. 늘 소파에 등허리를 붙이고 있던 할아버지가 쇼코에게 일본어로 말을 건네고, 엄마는 평소에 짓지 않는 미소를 띠었기 때문이다. 특히 할아버지는 손녀인 소유보다 쇼코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 피가 섞인 가족에게도 사랑표현을 일절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이방인에게 성심성의를 다하는 모습에 소유는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또한 쇼코가 다시 일본으로 떠난 뒤 편지를 주고받는 할아버지를 보며 소유는 질투심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소유는 자신을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 남들이 소유를 향해 영화감독의 자질이 없다고 비판해도 할아버지만큼은 그가 만든 영화를 끝까지 봐준 유일한 관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소유가 꿈을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칭찬을 해준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소유의 관계가 조금 나아졌나 싶을 때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다. 그것도 소유에게 투병 중인 걸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말이다. 할아버지와 소유의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보일 때 쯤 일어난 일이라 독자로 하여금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이루어졌다면 그들의 사이가 원만해지지 않았을까.
인간관계는 무게가 다른 추로 수평을 맞추는 것과 같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추의 무게가 같을 순 없다. 각자 다른 이야기와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끝 부분에서 소유가 아닌 쇼코가 할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소유는 자신이 모르는 비밀을 쇼코가 알고 있었다는 질투를 느끼지만 독자는 그것이 소유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인 소유의 앞길을 망치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의 ‘배려’ 말이다. 어쩌면 소유는 할아버지와 자신의 무게가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수평을 이루기를 기다린 것일 줄도 모른다. ‘관계’는 이렇게 자신과 무게가 같아야 한다는 ‘당연함’에서부터 틀어진다. 소유가 할아버지의 처지와 상처를 생각해보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오직 자신만의 기준에서 할아버지를 바라본 것이다. 우리도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때 이러한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한다.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기분이 상할 때, 딱 한 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들을 백 퍼센트 이해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온 환경과 생각이 모두 다르기에, 그리고 추의 무게가 다르기에 이를 맞춰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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