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에 잘 섞이는 사람을 뜻하는 인사이더의 줄임말, ‘인싸’와 그 반대말 ‘아싸’를 모른다면, ‘아싸’라고 놀림 받기 십상일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서점을 가면 ‘개인주의자 선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개인주의를 지향하듯 강렬한 제목을 가진 책들을 ‘베스트셀러’ 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주의’는 각박해진 사회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SNS를 통해 ‘인싸춤’이 유행하기도 하고, 특정 물건을 ‘인싸템’이라 칭하기도 하며 집단의 공유물을 늘리고 있다. 언어는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개인주의와는 별개로 집단주의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교차해 존재한다. 물론 한 국가에 다양한 사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속에서 누구나 한 번 쯤은 ‘관계’를 회의적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나는 ‘나’와 ‘우리’의 균형을 이루는 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으면서도, 내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도 항상 함께하고 싶었다. 사회를 공부하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주어진 많은 양의 과제와 시험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풀어나가기 위해 먼저 내가 속한 집단에 관심을 가져보고자 했다. 이것이 내가 동대신문에 들어오게 된 이유다. 다른 수습기자나 정기자들처럼 기자의 꿈을 꾸거나 정의 구현 등의 원대한 포부를 가진 채로 입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닌 ‘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학보사 활동은 학교를 비롯한 여러 집단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보고 배우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개인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는 집단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성장한 개인들이 모여 그들의 공동체 또한 키워나가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생각은 동대신문 기자로 계속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개인이 집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나’를 위해 학보사 기자를 지원했던 나는 정기자가 된 지금, ‘나’와 ‘우리’가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우리를 위해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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