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 님이 빨리도 오셨다. 이달의 풍경 중 하나는 입시와 취업이다. 기쁨과 슬픔이, 성취와 좌절이 가장 많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학내에서도 종강하면 곧 한 학기 성적에 따라 작은 희비가 오갈 것이다. 예전과 같은 듯 다른, 학생들은 그런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얼마 전 한 학생이 필자의 연구실에 왔다. 고등학생 때까지 자기는 최상위권 학생으로 자신감도 충만하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학생이였다는 것. 그런데 대학에 와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감도 없어지고, 친구들 관계 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져,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과 새로운 꿈이 생겨 전처럼 자존감이 바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학생이 비단 우리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이유나 사연은 다르지만, 다른 대학의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요즘 학생들이 자존감이 낮아 안타깝고 걱정스럽다는 것’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이유로는 ‘형편없는 시험 성적을 받았을 때, 취업에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의 비판을 들었을 때, 어떤 일이든 쉽게 불안하고 우울증을 느끼는 것’ 등 많다. 기성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 학생들이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다. 정신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현상이 단순히 개인의 정신력 문제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기성세대는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좌절하고 실패하며, 때론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길 때도 있었다. 그리고 별일 아니라며 옷에 묻은 흙을, 먼지를 털어내듯 그렇게 툴툴 털어 버리거나 한바탕 울고 다시 일어서곤 했었다. 정말 강한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렇게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의 여유가 그 시대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어떤가. 가정이, 사회가, 제도가, 교육이 그럴 기회를 주는가. 그럴 시간과 여유를 주고 기다려주고 있는가. 모든 것이 경쟁 속에서 작동하고 서열화되는 것은 아닌가. 노력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이 팽배한 시대. 성적이 좋아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는 말은 메아리일 뿐이다. 여전히 학벌주의는 심화되고, 빈부격차는 커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성적을 끊임없이 관리하고, 스펙을 만든다.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는 여유도 없이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아, 너는 정말 괜찮은 학생이야.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힘을 내!” 필자가 학생과 상담을 마치면서 했던 말이다. 상담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이럴 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 돼 버렸다. 이런 말이라도 학생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마음이 아리고 한동안 먹먹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 땅이 건강해야 한다. 그 대지에 거름을 주고 휴식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필자의 연구실 창으로 보이는 나무는 언제나 푸르다. 소나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상록수인 소나무도 낙엽수처럼 잎갈이를 한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시기에 2-3년마다 조금씩 잎갈이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시련이 있고, 좌절도 있고, 우울도 있다. 학생들이 건강한 대지에서 소나무처럼 보이지 않게 천천히 잎갈이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주 천천히. 때론 한파에도 흔들리면서 푸른 내면의 빛이 생길 때까지. 늘 푸르른 솔잎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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