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2019.3.7 16:26

동대신문

상단여백
HOME 여론/칼럼 학생칼럼
우울해도 괜찮아

지난 5년간 20대 우울증 환자가 22.2%나 증가했다. 우울한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은 굳이 통계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나 자신이나 주변을 보면 체감할 수 있다. 취업, 학자금 문제부터 인간관계, 연애, 개인적인 문제까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감정에조차도 “우울하면 안 된다”는 죄책감과 “우울함에 지쳐있을 시간이 없다”는 압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불가항력적인 감정조차 표현할 수 없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서, 내 우울함이 다른 사람들도 우울하게 만들어서, 나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취업할 때 불이익을 당할까 봐 등등 우울한 이유만큼 우울함을 숨겨야 하는 이유도 많다.  
우울증을 앓는 인구가 많다는 통계자료나 우울증은 흔한 현대인의 병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많다. 언론들은 정신과 진료 기록은 회사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 보도하며,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호전된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치료를 받도록 권유까지 한다.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상담을 다니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넘쳐난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은 많지만, 상담소를 다니거나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람들은 드물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은 전체 우울증 환자의 15%밖에 안 된다. 
정신과 질환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두려운 것도 있겠지만, 그중 20대들은 “예전에 비하면 환경이 좋아졌지. 그러니까 넌 잘해야만 해”, “노력의 문제야, 끈기가 있어야지”같이 힘듦의 책임을 당사자의 능력으로 돌리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자랐다. 또, 경쟁 사회에서는 우울한 감정에도 등급을 매긴다. 내가 털어놓은 우울한 감정은 쉽게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된다. “나에 비하면 넌 행복한 거야”라는 말만큼 잔인한 위로가 있을까.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이런 얘길 했었다. 자기가 학교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우울했는데 홀로 버티다가 그 일이 해결될 때쯤이나 주변에 지나가듯이 얘기한다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다들 힘들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힘든 얘기 좀 털어놓는 게 뭐 그리 큰 잘못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우울함보다도 타인의 감정을 우선해야 했을까. 개인의 노력과 정신력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울증 따위는 누구에게나 있는 디폴트값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있다고 해서 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병이 초기엔 약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강해진다. 그렇게 커진 병은 곪기 마련이고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온다. 나도 그랬다. 왜 그토록 감정이 터졌는지는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 소리 내며 우는 내게 엄마가 “바보같이 왜 우느냐”고 했었다. 바보 같다는 말에 화가 났던 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내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냐”고 소리를 꽥 질렀었다. 한 번 감정을 터트리니 억압감이 조금은 사라졌다. 왜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힘든 상황을 맞았을 때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우울하거나 힘든 감정이 나를 넘어설 땐 그냥 표현한다. 울기도 하고 힘들다고 티도 내고 상담도 받는다. 
막막하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우울할 수 있다. 그 우울함이 당신만의 잘못도 아니다. 제어할 수 없는 우울함에 잠 못 들고 죄책감 느끼지 않길 바란다. 행복해야 할 청춘이 감정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한 건 슬프지 않겠는가. 당신, 좀 우울해도 괜찮다.

안다솜 미컴17  dgupress@dgu.edu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