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우리나라는 태어나서 생존할 수 없는 무뇌아 같은 심한 태아기형을 인공임신중절수술 하는 경우 형법에 의해 의사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전이 되는 정신 장애가 없음에도 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수많은 정신 장애 환자들의 인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 이런 모순을 조속히 해결하지 않고 방관하며 사회적 혼란을 자초하는 정부와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 작다고 할 수 없다.


WHO에서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여성이 가져야할 근본적인 권리라고 규정했다. 카톨릭 기세가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인 폴란드에서는 2016년 규제가 심한 기존의 낙태법을 더 강화하려는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낙태죄 폐지를 위한 시민의 시위가 계속되어 결국 무산이 된 적이 있다.


의사는 낙태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현재의 모자보건법의 의학적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그동안 사문화된 법으로 국민을 혼란하게 하는 조항을 사회적 합의로 현실에 맞는 법을 개정하면 그 법을 지키겠다고 일관된 주장을 해왔다.


모자보건법이 만들어지면서 낙태는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산아제한의 한 방법으로 당연히 가능한 수술로 인식됐다. 그런데 그동안 입법 미비의 낙태문제를 방치한 보건복지부가 2018년 8월 17일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낙태하게 한 경우에는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고 하여 산부인과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고 처벌의 의지를 명문화했다.


낙태를 여성과 의사에게만 책임을 지우면서, 의사 처벌만 강화하여 낙태를 막겠다는 개정안은 현실을 무시하는 미봉책일 뿐이며 이로 인해 오히려 낙태 음성화를 조장하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낙태를 금지한 국가에서 중절수술로 인한 모성 사망이 많다는 것은 이미 WHO에서도 심각하게 보고되고 있다. OECD 30개 국가 중 23개국에서 ‘사회적·경제적 적응 사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으며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산부인과는 어려운 의료 환경을 마다하지 않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며 밤을 새우며 사명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수술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환자의 눈물을 보면서도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술이 불가능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지고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는 비도덕적인 의사가 아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준 높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조속히 이루어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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