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문창1) 作

이지영(문창1)
안녕, 마돈나

Y가 전 국민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세시 이십분 경의 일이었다.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그는 왼쪽 발목에 힘이 풀리면서 넘어지고 말았는데 양 손과 두 무릎을 땅에 댄 Y의 모습에 대회장에는 적막이 흘렀다. 벌떡 일어나 절뚝거리며 단상에 나아간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당선 소감을 발표하였지만 소감이 끝날 무렵에는 머리의 가발이 슬금슬금 흘러내려 귀를 덮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때에는 국내 최대 정당의 대표가 부러진 하이힐 굽과 신발을 한 손에 움켜쥐고 양말바람으로 단상을 내려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였다.

이 날의 사건은 매우 큰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인터넷에서는 Y굴욕 3종 세트 UCC가 수많은 버전으로 만들어져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인터넷 뉴스 속보의 정치면에는 Y의 굴욕이 단연 상위에 링크되었고 포털사이트의 연관검색어에는 ‘굴욕’과 연계된 것들이 빠지지 않았다. 퉁퉁 부어오른 발목에 거머리를 붙이고 있던 Y는 9시 뉴스의 마지막 코너인 ‘오늘의 인터넷 검색어’에 자신의 굴욕 3종 세트가 1위를 차지해 다시 한 번 모든 장면이 전파를 탄 것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덕에 Y의 발목에서 터질 듯 똥똥해진 거머리가 새빨간 기둥을 그리며 떨어져 나갔다.

P는 Y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다. 며칠 전 있었던 영화제의 레드 카펫 행사에서 순백의 턱시도를 입고 빗물에 젖은 카펫 위로 슬라이딩을 했던 그는 허리에 냉찜질을 받고 있던 참이었다. 기자들의 플래시 속에서 본 그의 하얀 바지에는 꼬질꼬질한 땟국이 흘렀고 가는 하이힐 굽은 볼썽사납게 부러져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포토 라인에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던 P의 민망하고 애처로운 모습은 그와 관련된 모든 기사에 사용되고 있었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1.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힐(굽이 있는 구두)은 16세기 말에 신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힐은 굵고 낮은 편인 데 비해 여자의 것은 높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이힐은 초기에 나무나 코르크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금속이나 고무를 사용하고 현대는 비닐 ·플라스틱 등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당초에는 외형에 착색을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17∼18세기의 화려한 시기를 맞이하면서 표면에 조각을 하고, 천이나 가죽으로 싸는 등, 복장 양식에 맞추어 여러 가지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현란한 문구와 늘씬한 피팅 모델을 내세운 수백 개의 여성 의류 쇼핑몰, 찰리의 초콜릿 공장 같은 웹 사이트들 속에 홈페이지 디자인부터 어딘가 어설픈 남성 하이힐 전문 쇼핑몰이 불쑥 나타난 것이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양강장제나 정력에 좋은 보조 식품을 연상시키는 남자여 당당하라, 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쇼핑몰이 주력해서 취급하는 품목은 5cm, 7cm, 11cm의 민자 하이힐이 전부였다. 특수 맞춤 제작으로 310mm까지 주문할 수 있는 쇼핑몰의 자유게시판에는 이거 정말 주문되는 거예요? 정말 남자용 하이힐 인가요? 라는 질문들이 간간이 올라올 뿐 단 한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주 커다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칸의 왕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영화배우 P가 레드카펫에서 자빠져 순백의 턱시도를 졸지에 넝마로 만들어버리더니 며칠 뒤에는 여당의 대표로 뽑힌 Y가 전 국민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남성 패션계에 쓰나미와 같은 유행의 흐름이 밀려오게 되었다. 인터넷을 화끈하게 달군 두 사건으로 인해 불모지였던 남성 하이힐 시장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하이힐에 두터운 발을 밀어 넣은 이들은 홍대 앞 인디밴드였다. 곧이어 질풍노도의 격정 속에서 삐뚤어지고만 싶은 사춘기 중,고딩들과 입대 전 말이 되어 달리고픈 군 미필자들이 하이힐신고 달리기 입문 단계에 들어섰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노랑머리나 오토바이, 피어싱과는 달리 하이힐은 아버지 세대와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Y의 공이 지대하였다고 할 수 있다.

Y의 비서관들은 하이힐을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포장하여 홍보했다. 자칫하면 발목이 꺾이며 넘어지기 쉬운 하이힐의 특성을 상기시키며 언제나 신중하게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각인시키는 홍보 전략은 하이힐의 유행과 맞물려 매우 잘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국내 굴지의 모 기업에서는 전 사원에게 하이힐을 선물하였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하였고, 몇몇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하이힐 신고 국회 참석하기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하였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자식들의 하이힐을 슬그머니 훔쳐보던 아버지들까지 헛기침을 흠흠, 하며 뾰족구두를 하나씩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세대를 아우르는 전대미문의 트렌드가 탄생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패션 전문가들은 설렘의 나날을 보냈다.

VJ 특공대와 생방송 화제집중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밤 아들과 아버지가 장판이 닳는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꿋꿋이 이겨내며 똑바로 걷기 연습을 하는 모습을 매우 인간적으로 연출해 방송하였다. 대화가 단절되었던 부자지간에까지 훈훈한 정을 싹트게 하는 하이힐의 순기능적 측면은 활활 타고 있는 하이힐 바람에 더 큰 불을 일으켰다. 과년한 딸에게서 전수받은, 혹은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첫발을 내딛은 후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하이힐을 신고 똑바로 걷거나 간혹 뛸 수도 있게 된 중년 남성들까지 동참하면서 바야흐로 하이힐 4500만 시대가 도래 하였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2. 하이힐에는 아련한 욕망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담겨 있다. 태초에 신발이란 발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에게는 오래 신기에 편하고 튼튼한 부츠가 선호되었고, 섬나라 사람들에겐 통풍이 잘되고 물에 젖어도 상관없는 샌들이, 추운 지방에서는 가죽과 모피 소재의 따뜻한 신발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발을 감싸는 이 조그마한 공간에는 문화와 역사가 함께 숨 쉬고 있다. 16~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행했던 나무로 만든 통굽 형태의 구두는 현대의 플랫홈 슈즈(통굽 구두)의 원조일 것이다. 그 시절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한 여행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베네치아 여인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세 가지는 여인 자신과 화려한 의상 그리고 나무, 즉 18cm나 되는 통굽 구두다.”

하이힐이 남성 잡화로서 자리를 잡아갈 무렵 의류시장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남성의 양말이었다. 하이힐은 높은 굽으로 인해 중심이 발가락에 집중된다. 따라서 신발의 길이가 발의 길이와 똑같지 않으면 걸을 때마다 벗겨지며 발목을 꺾이게 만들기 떄문에 무조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이런 하이힐을 신으면서 두툼한 남성용 양말을 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혹은 필연적으로 판타롱 스타킹을 찾게 되었다. 판타롱 스타킹은 무릎 까지 올라오는 길이의 얇은 나일론 소재로 된 여성용 양말인데 주로 긴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을 때 신는다. 스타킹은 손거스러미에도 쉽게 올이 나가버리는 소재로 되어 있어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난생 처음 스타킹을 받아든 남자들이 이것을 알 리가 없었다. 여자들은 남편과 아들이 다회용 제품을 일회용 제품처럼 써대는 탓에 사다놓는 족족 없어지는 스타킹 값을 대느라 김치찌개에 고기도 못 넣어 끓인다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양말에서 스타킹으로의 일대 혁명이 일어나자 그 다음에는 넓은 양복바지의 통에 문제가 생겼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으니 바지의 밑단이 신발을 푹 덮어 바닥에 질질 끌리게 되었고 가뜩이나 걷는 것이 힘든 남자들은 걸핏하면 제 바짓단에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다. 수선집 아지매들은 부쩍 늘어난 수입에 영감 몰래 순금함유 한방 마사지 크림을 거금을 주고 구입하여 날로 얼굴에 뽀얀 윤기가 돌게 되었다. 그러나 하이힐에 정신을 홀딱 빼앗긴 아저씨들은 아지매의 얼굴은 거들떠도 안 보고 하이힐에 반질반질 광을 내는데 여념이 없어 아지매는 반짇고리 안에 숨겨둔 크림 대신 여느 때와 같이 대바늘을 찾았다는 하소연이 찜질방의 구운 계란과 식혜 속에서 오고가고 있었다.

한편 하이힐은 소리 없이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사업수완이 좋은 패션계 종사자들은 빠르게 여러 형태의 하이힐을 고안해 내었다. 디자인이나 수요 면에서 지극히 정적이던 남성 신발 시장에 남성 하이힐 유행 바람으로 때 아닌 특수가 찾아온 것이다. 신발 공장에서는 신발의 길이가 길어지고 발볼의 크기가 늘어남으로써 이에 맞는 굽의 굵기와 밑창의 각도를 찾기 위해 고심하였다. 그 결과 굽의 길이가 11cm 이상으로 길어지게 되었고 기존의 굽보다 두께를 2/3만큼 줄인 하이힐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하이힐은 쇼핑몰에 납품을 시작한 날부터 공장을 3교대로 풀가동하여도 물량이 달릴 만큼 폭발적인 주문 수를 기록하였다. 소위 대박을 노리는 여러 홈쇼핑 회사들의 독점계약 요구가 쏟아져 행복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공장장은 자다가도 박장대소할 만큼 살 맛 나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신바람 난 사람으로 치자면 맨 처음 인터넷에 남성 하이힐 쇼핑몰을 오픈한 J만한 사람도 없었다. 혹자는 자신이 직접 하이힐을 신고 사진까지 찍어 올리는 J가 분명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단정적 발언을 서슴지 않기도 하지만, 사실의 진위 여부는 J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 조차 자신이 여자에게 가슴이 떨렸는지 아니면 정말 남자를 보고 아랫도리에 반응이 왔던 지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28년 솔로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너무 오랫동안 동정을 지켜 이제 곧 마법사가 될 지도 모르는 위기의식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되었던 J의 쇼핑몰은 어마어마한 매출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어디 하나 눈 두기 민망한 J의 몸뚱어리 중에서 신의 손길이 머물다 떠난 곳이 바로 종아리였는데 힘의 상징인 알은 물론이거니와 솜털도 하나 없이 매끈한 종아리가 성공신화의 주역이었다. J는 몸소 하이힐을 신고 사진을 찍어 올림으로써 신어볼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함에 구매를 망설이던 쇼핑몰 고객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으며 다른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 모델료를 아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던 것이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3.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미국 드라마 ‘섹스 & 시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의상이나 보석이 아닌 슈즈 브랜드였다. ‘구두에 탐닉하는 사람’을 뜻하는 ‘슈즈홀릭’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현대에서 슈즈는 수집의 대상이 됐다.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하이힐은 프랑스의 구두 디자이너 로제 비비에에 의해 탄생되었다. 1973년 파리 시내에 가게를 연 비비에의 첫 창작은 파격 자체였는데 검정, 갈색, 푸른색이 대부분이던 가죽을 총천연색으로 확대하고 플라스틱, 셀로판 섬유 등 가능한 재료를 모두 사용했기 때문이다. 1974년 그는 가는 뒷 굽의 하이힐을 내놓음으로써 다시 한 번 인기를 얻게 된다.

J의 쇼핑몰 VIP회원인 I역시 요즘처럼 살맛나던 때가 없는 것 같았다.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동대문과 명동 어디를 나가보아도 남성 패션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I는 고민 끝에 질러버린 스키니 양복바지를 입어보며 절로 흐뭇하기 그지 없는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늘 정해져 있던 양복 스타일에서는 멋을 내려고 해봐도 넥타이와 셔츠가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항상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그에게 하이힐의 유행과 함께 시작된 지금의 세상은 별천지였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다양한 색깔과 감촉의 양복바지들이 계속해서 입고되고 있었다.

I가 스키니 양복바지를 사야겠다고 느낀 것은 길을 걸어가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옆모습을 본 순간부터였다. 문득 가느다란 굽 위로 뻗은 자신의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가 긴장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제법 섹시하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고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아쉽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습관처럼 들어간 쇼핑몰에 새롭게 등장한 스키니 양복바지가 유독 눈에 띠었고 고민 끝에 한 장을 주문했던 터였다. I는 가죽바지를 입지 않고도 빵빵한 엉덩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펑퍼짐한 바지와 함께 입고 다니던 양복 자켓을 입으면 한껏 봉긋하게 보이는 엉덩이가 모두 가려진다는 점이었다.

양복 상의를 걷어보기도 하고 접어보기도 하던 그는 재빨리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길이가 짧고 타이트하게 피트되는 양복 상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의 웹 서핑 끝에 그가 결재한 품목은 상의 두 개와 검은 바탕에 은색 세로줄이 있는 바지, 화려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넥타이 세 개, 반값 할인행사를 하는 판타롱 스타킹 열 켤레였다. I는 장시간 모니터에 시달려 뻑뻑해진 눈을 감고 아련히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블라우스를 하나 사면 맞춰 입을 치마가 없고, 치마를 사면 어울리는 구두가 없어 구두를 사고 보니 비슷한 색깔의 가방이 필요해 졌다는, 그래서 가방도 하나 사고 보니 네 주산 학원비가 모자란다는 그 절절한 고백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그머니 조만간 날아올 카드사용 내역서가 걱정이 되어 지출 금액을 어림 계산 해보던 I는 자꾸만 불어나는 금액에 방금 결재한 옷을 취소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현관에 얌전히 놓여있는 신상 하이힐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젠 남자도 가꾸는 시대였다. 흥청망청 먹고 마시기보다는 자신의 옷과 몸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올려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세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차, 멘유와 첼시의 경기가 있었지. 축구와 야구는 물론 배구경기까지 꼬박꼬박 챙기던 그는 문득 그런 것들이 시들해짐을 느꼈다. 그 대신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뒤태가 죽이는 바지를 입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출근을 할 때마다 쏟아지는 여자들의 시선에 묘하게 흥분되는 그 기분을 빨리 느끼고 싶었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4. 하이힐은 구두의 굽의 높이에 따라 여자들의 자존심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과거에는 구두의 굽이 높아질수록 가슴과 엉덩이 부분이 나오고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가며, 가슴이 펴지면서 기세가 당당해진다고 하여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굽을 높여 신었다고 한다. 또한 이런 하이힐은 발목은 가늘고 발은 작아 보이게 만들어 매력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효과를 가진다.

동양에서 역시 높은 굽은 곧 고귀한 지위와 존경의 의미였다. ‘게다’라고 불리는 일본의 나무통굽 샌들은 일본기생 게이샤에게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굽의 높이가 곧 자신의 등급이었다. 고 히로히토 일본 천황도 1926년 자신의 즉위식에서 무려 30cm나 되는 게다를 신었다고 전해진다.

서울중앙지법 제 3검사실 회식 자리에 참석하러 가던 I의 발걸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막 문이 닫히려는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달려 내려가다 마지막 계단을 보지 못해 발목이 완전히 꺾이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고 냉찜질과 온찜질을 반복하는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발목의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동안 하루 평균 세 시간에 이르는 출퇴근 시간 내내 하이힐에 시달린 발목에 쌓인 피로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었다. 굽이 너무 높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허리와 목도 자꾸만 결리는 것 같았다. 한의사는 당분간 하이힐을 신지 말고 편안하고 굽이 낮은 신발을 신을 것을 권하였지만 I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같은 검사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W와의 은근한 신경전은 어느새 노골적인 경쟁으로 변하였고 한 달 새 두 사람 모두 각각 세 켤레의 하이힐을 사며 경쟁은 점점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I가 처음 하이힐을 신고 왔을 때 주변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늘 신발 아래 키 높이 깔창을 두개씩 넣은 요술 신발을 신고 다니던 I는 서울 지법에 출근한 이래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은 일절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술에 만취해 3차로 찾은 감자탕 집에서 무심결에 요술 신발을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어 그날부터 그는 비밀의 베일을 벗고 땅꼬마의 오명을 쓰게 되었던 차였다. 이런 I에게 높을수록 좋은 하이힐은 그를 위한 신발이었다. 키가 작은 만큼 발 크기도 작았기 때문에 그의 발에 하이힐은 본래 제 신발인 것 처럼 꼭 맞았고 키 높이 깔창으로 습득한 노하우는 11cm의 하이힐에도 금방 적응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패션 센스가 너무 대단하시다며 관심을 보이는 여직원들을 의식해서였을까, 싱글을 자칭하는 유부남 W 역시 최신 유행의 토 오픈 하이힐을 장만하여 I가 일으킨 서울 지법 내 유행의 물결에 W가 슬쩍 끼어들었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5. 하이힐 슈즈는 곧 구속이요, 동시에 성(sex)을 표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본래 ‘신데렐라’ 이야기는 일종의 ‘잔혹 동화’였다. 신데렐라의 사악한 자매들은 유리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발가락을 잘랐다. 이것은 곧 가늘고 예쁜 발에 대한 일종의 맹신도적인 경외이자 동경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의 전족이 대표적이다. 딸이 걸음마를 떼면 엄마는 어린 딸의 발을 천으로 칭칭 감싸 발가락을 부러뜨리고 그대로 동여매어 놓는다. 끔찍한 고통 속에 유년 시절을 보내는 여성들은 대부분 이를 숙명과도 같이 받아들이는데 그 옛날 절세의 미인이었던 양귀비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만큼 발이 작았다고 하니 작은 발이 곧 미의 척도인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전족을 한 발은 뼈의 모양 자체가 하이힐과 같게 변하는데 이는 여성이 하이힐을 신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그것은 뼈를 깎는 고통보다 더욱 지독한 것이 아닐까.

W는 아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재빨리 BB크림을 손등에 덜었다. 전날 밤, 부쩍 피부가 상한 것 같아 아내가 자기 전에 바르는 화장품을 얻어 바르려다 한바탕 부부싸움이 벌어진 탓이다. 안티 에이징 에멀젼이니 화이트닝 소스, 모이스처 에센스 뭐시기 등등 전부 영어 이름을 붙여 놓은 탓에 어디에 어떻게 바르는지를 알 수 없어 옆에서 따라 바르던 것이 화근이였다. 자그마한 병에 들어있어 공짜로 받은 샘플인가 싶어 듬뿍듬뿍 바르는 W를 보며 아내는 금방이라도 숨이 꼴깍 넘어갈 만큼 화를 냈다. 이게 한 통에 얼마짜리인줄 아냐며 당신이 생전 나한테 싸구려 영양 크림 한통 사줘본 적 있냐고 난리를 치는 통에 한 번만 더 네 화장품에 손을 대면 내가 네 아들이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이미 맛본 그 놀라운 마법을 잊을 수는 없었다. 며칠 전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포장을 갓 뜯은 화려한 넥타이를 메어보니 타이 색깔에 비해 얼굴색이 어두워 지나치게 우중충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아내가 바르던 것이 생각나 살색이 나는 크림을 얼굴에 발라보니 얼굴이 한층 화사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화사한 넥타이까지 매니 5년은 젊어진 것만 같았던 것이다.

두 세 개의 색조 화장 기초 단계를 하나로 합친 BB크림을 바르고 나니 W는 입술이 너무 창백해 보여 병자 같은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장대 서랍을 뒤적거려 옅은 분홍빛이 도는 립스틱을 조금 찍어 발라보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온 얼굴에서 붉은 입술만 도드라져 보였고 그래서 주홍빛이 도는 분첩을 꺼내 조금씩 볼에 바르다가 허전한 눈두덩에 금색 빛 세도우를 바르며 점점 달라져가는 자신의 얼굴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젖은 머리를 털며 나오던 아내가 화장하는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그날로 W는 이혼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아내가 주장하는 이혼 사유는 성정체성이 흔들리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으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속인 채 자신과 결혼한 것은 명백한 사기라는 것 이었다.

W의 사연은 뉴스의 사회 가십 코너에 자그마하게 실렸는데 인터넷에서 이는 큰 이슈가 되었다. 사이버 토론장에서는 소송의 결과를 놓고 네티즌들 간에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W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내의 이혼 요구가 정당하다는 이들 간에는 팽팽한 긴장마저 흘렀다. 열띤 공방을 잠시 살펴보자면 요새는 남자다운 남자가 없다는 뭇 여성들의 한탄과 그런 것들은 고자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는 자칭 진짜 남자들의 격양된 의견이 한 개의 축을 이루고 있었다. 반대편의 구성원으로는 남자보다도 안 예쁜 여자들은 다 꺼지라는 자칭 초미녀 꽃미남 팬클럽과 남성에게도 화장과 치장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가꾸는 남자들의 모임이 가장 활발하게 동참하였다.

하이힐에 대한 사소한 담론 6. 높은 구두를 신고 오래 생활하다 보면 척추 굴곡이 심해져 척추에 과도한 힘이 가해진다. 이로 인해 허리가 아프고 심하면 척추 전방전위증을 유발하므로 장시간 착용은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하이힐은 가슴을 내민 채 고개를 앞으로 쳐들게 하기 때문에 어깨와 목의 통증을 유발하고 무릎통증까지 동반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연령에 따라 허리가 무리를 견대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연령층이 높을수록 굽 높은 구두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새우며 매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던 J의 쇼핑몰의 판매가 갑자기 줄어든 것은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허리를 다치면서 부터였다. TV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 T의 부상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비가 내리던 야외 특설무대에서 파워풀한 댄스를 선보이던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마침내 절정으로 흘러갔을 때 팀의 막내인 T가 별안간 허리를 손으로 받치며 무대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빗물에 젖어있는 무대 위에서 하이힐을 신고 움직이다 발이 미끄러져 허리를 삐끗하고 만 것이다. 눈앞에서 오빠가 쓰러져 실려 나가는 것을 본 소녀들은 한 손에는 풍선과 다른 한 손에는 야광 봉을 든 채 공황상태에 빠졌다. 각종 연예 전문지에서는 인기 그룹 멤버의 발목 골절 소식을 속보로 보도했고,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T의 부상 소식은 그가 발목에 철심을 받는 대 수술중이라는 데에 까지 이르러 소녀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커지고 있었다. T가 긴급 후송 된 병원 앞에는 오빠 걱정에 울먹이며 몰려든 팬들과 특종의 기쁨에 울먹이며 몰려든 기자들이 뒤엉켜 생지옥을 방불케 하였고 팬과 기자, 경호원간의 몸싸움이 여과 없이 방송되면서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이 날의 사건은 가열 차게 타오르던 하이힐 바람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기 가수 T의 발목 부상으로 하이힐이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치명적 문제점이 속속 제기되었고, 범국민적으로 하이힐 착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만날 으르렁거리던 여러 아이돌 그룹 팬클럽들은 연합 전선을 이루어 ‘오빠의 허리는 우리가 지킨다.’라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캠페인에 임하는 여중생과 여고생들은 ‘운동화를 신으세요. 오빠의 허리는 소중하니까요’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어디든 들고 다녔는데 이런 팬들의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아이돌 그룹이 가장 먼저 하이힐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와 더불어 TV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연일 하이힐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담은 방송을 내보냈고 하이힐의 인기도 조금 주춤하는 듯하였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부상으로 인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판매량을 바라보며 고심하던 J가 야심차게 꺼낸 카드는 ‘비싼 하이힐’ 이었다. 정체된 하이힐 시장에 수혈된 새 피의 효과는 엄청났다. 굽의 높이를 높이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비싸고 화려한 신발에는 한계가 없었다. 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은 더 크고 아름답고 빛나는 보석을 신발에 박아 넣기 시작했고 이러한 현상은 전보다 더 무섭게 달아올랐다. 밀수업자들은 외국의 보석 산지에서 커다란 원석을 세공하여 바로 제작한 일명 ‘묻지 마 하이힐’을 들여오느라 여념이 없었고, 세관에서는 고가의 하이힐 불법 밀수를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이힐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방송과 기사가 무색하게 하이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전보다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지치지 않는 하이힐의 유행 속에서 꾸준히 고수익을 올리던 J는 강남 압구정로의 명품 숍들 사이에 자신의 오프라인 매장을 차려 인터넷 창업 대박 신화의 정점을 찍었고, 인터넷 쇼핑몰 계의 전설이 되었다. 한편 이혼의 기로에 놓였던 W는 하이힐과 아내와 투명 메이크업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가정의 평화를 되찾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변강쇠도 울고 갈 힘으로 아내에게 세쌍둥이를 덜컥 임신시키며 성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켰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W의 이혼소송 취하 전말을 밝히기 위한 제 2차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하이힐과 정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과거 W와 쌍벽을 이루며 하이힐의 굽을 높여만 가던 I는 키가 너무 큰 탓에 하이힐은 신어볼 엄두를 못 낸다는 미모의 그러나 지나치게 키가 큰 여성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였다. 퇴장을 하다가 신부의 드레스에 걸려 무려 15cn의 하이힐에서 떨어진, 그래서 신부의 등에 업혀 나간 I의 슬픈 사연은 매너 있는 하객들의 동정으로 크게 소문이 나지는 않았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밖에도 영화배우 P는 하이힐 모델의 선두 주자로서 CF를 빵빵 터트리고 있었고, 정치인 Y는 젊은 감각을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어 2,30대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가 높아만 가는 퇴근 시간, 굽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발을 밟은 남자와 발을 밟힌 남자 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발목에 쌓인 하루의 피로를 풀러 습관처럼 한의원 물리치료실로 향하는 남자들의 그림자를 보며 저 다리가 내 다리인 것처럼 흐뭇해진 남자들의 얼굴 위로 붉은 노을이 홍조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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