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문창4) 作

이갑수(문창4)
합리적인 광기

열차가 들어온다. 선로를 따라 울림이 전해진다. 뛰어들고 싶다.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것이 재미있다. 노란색으로 그어진 안전선이 생과 사의 경계처럼 느껴진다. 뛰어드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또렷해진다. 작은 세포 하나의 감각까지 되살아난다. 하지만 고작 몇 초뿐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막힌 것을 뚫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다들 한 번쯤은 금기된 것을 상상한다.


양복이 물에 젖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는 게 힘겹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보인다. 비가 오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 집까진 십 분 이상 걸린다. 생각처럼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다. 속도를 내려고 할 때마다 후들거린다. 숨이 막힐 것 같다. 현기증이 난다. 땅과 하늘이 눈앞에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다행히 집이 보인다. 마당이 있는 2층 집이다. 1층과 지하에 다섯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다. 전세가 둘 월세가 셋이다. 조만간 전부 월세로 바꿀 생각이다.

2층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다. 방이 여섯 개, 화장실도 두 개나 있다. 거실은 부엌과 이어져 있는데, 축구는 무리라도 탁구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 외관은 꽤 낡았다. 하지만 아직 튼튼하다. 아버지가 못 하나까지 확인하며 지은 집이다. 아버지는 평생 모은 돈으로 집을 짓고 돌아가셨다. 당뇨에 위암까지 앓고 있을 때니까, 아마도 당신이 살기 위해서라기보단 나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난 그 집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금껏 살고 있다.

옷을 갈아입는데, 밖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운이 좋았다. 방에는 담뱃갑과 꽁초가 널브러져 있다. 치우기가 귀찮다.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불현듯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냉장고에 술이 없다. 전화기를 든다.

“앞 족발 하나랑, 소주 두 병만 갖다 주세요.”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이다. 집이 더 넓게 느껴진다. 나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장이 난건지 건전지가 다 된 건지 벽시계도 멈춰 있다. 하긴 1년 전에도 이 시간이면 집은 늘 비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텅 빈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내와 딸이 보고 싶다.

나는 작년 오늘, 이혼했다. 이유는 확실치 않다. 아내는 내가 미쳤다며 이혼을 요구했는데, 나는 절대 미치지 않았다. 모든 게 개 때문이었다.

아내는 처녀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애견센터가 보이면 한참을 유리 앞에 붙어 있는 여자였다. 어쩌면 그 모습에 반해서 청혼했는지도 모른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애견센터에 있는 개를 좋아하는 것과, 직접 개를 키우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아니 처음엔 괜찮았다. 마당에 개 한 마리쯤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아내가 처음 사왔던 개는 진돗개였다. 별로 짖지도 않았고, 얌전한 놈이었다.

나는 한창 박사과정에 있을 때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박사과정을 마치고 보니, 녀석이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아 개가 다섯 마리로 늘어 있었다. 거기다 아내는 강아지들을 집 안에서 키웠다. 이유는 다양했다. 밖이 춥다느니, 먼지가 많다느니, 동네 꼬마들이 돌을 던진다느니……. 그 일로 몇 번이나 부부싸움을 했다. 결국 내가 이겨서 아내는 개를 집 밖에서 키워야 했다. 딸애가 말을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얼굴도 제 엄마를 꼭 빼닮았는데 개를 좋아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안고 있는 개를 뺏으면 동네가 떠나가라 우는 통에, 집 안에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후로 개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작 개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고, 뭣보다 말할 기회가 없었다. 한국의 대학에서 자리를 얻으려면 외국에서 받은 학위가 필요했다. 난 유학을 갔다. 아내는 딸애의 교육을 핑계로 한국에 남았다. 나도 비용문제 때문에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너무도 쉽게 남겠다고 말하니 왠지 서운했다. 바빴다. 난 최선을 다했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했다.


내 전공은 뇌화학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 뇌의 화학반응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리학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연구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분야다. 약간은 기계론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모든 감정을 화학반응으로 본다는 점이 그렇다. 가령, 사람이 분노하는 것은 도파민 때문이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었기 때문에, 흥분하는 것은 코르티토스테로이드 때문에, 하는 식이다.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화학반응을 인위적으로 일으켜서 특정한 감정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성을 유혹하는 향수 같은 것은 뇌화학의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나는 광기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광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인데 정확한 연계치를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주로 동물 실험을 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수백 마리의 쥐와, 토끼, 원숭이들에게 화학물질을 투여했다. 죽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것들은 실험도구일 뿐이었다.


내가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개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난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들어왔는데, 집에 올 때마다 못 보던 개가 있었다. 옆집 여자가 준 것, 아내의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맡긴 것, 새로 산 것. 종류도 다양했다. 치와와, 푸들, 요크셔테리어, 진돗개, 나는 처음 보는 종도 있었다. 하지만 개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구소와 학교를 오가느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지방대학에 출강할 땐 하숙을 하기도 했다.


내가 전임 연구원이 된 게 2년 전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딸애는 어느새 중학생이 됐다. 집은 개판이었다. 소파에 앉아 한 마리씩 잡아서 줄을 세워 보니, 열 마리였다. 얼핏 이름을 들은 것이 세 마리 정도였다. 또치와, 쥬시, 미리. 나머지는 이름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거 아냐?”


나는 밥을 먹으면서, 개에 대해 언급했다. 정말 많았다. 집 어디에도 개가 없는 곳이 없었다. 소파와 침대는 개털로 덮여 있었고, 화장실에선 개 오줌 냄새가 났다.


“다다익선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많으면 좋죠 뭐.” 아내는 식탁에 있던 소시지를 개한테 먹이면서 말했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몇 마리라도 밖에서 키우는 게 좋겠어. 지저분하기도 하고.” 나는 위엄을 갖추려고 일부러 저음으로 말했다. 아내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소시지 먹이는 것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얘들이 얼마나 깨끗한데. 아빠보다 더 깨끗해. 봐봐 비누 냄새밖에 안 나잖아. 내가 얼마나 자주 씻기는데.”

딸애가 개를 안아 올리면서 끼어들었다. 아내와 딸이 똑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알았어, 대신 소파에 개털이나 좀 치워놔.”
나는 할 수 없이 물러섰다. 그 갈구하는 눈빛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한번 의식하니 자꾸만 개들이 거슬렸다. 모처럼 늦잠을 자려고 하면 개 짖는 소리가 방해를 했고, 뉴스를 볼 때도 신문을 읽을 때도 발밑에 와서 귀찮게 했다. 똥을 싸는데 화장실에 들어와서 내 눈앞에 볼일을 보고 나가기도 했다. 뭣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였다.

연구소의 특성상 일찍 퇴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대체로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집에 왔는데, 그 시간에 집은 항상 비어 있었다. 모녀가 개들을 산책시키러 나간 탓이었다. 상은 차려져 있었지만 식탁의 빈자리를 보면 왠지 식욕이 없어졌다. 개 때문에 남편의 국을 데워주지 않는 아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난 개들한테 화풀이를 했다. 발밑에 어슬렁거리면 걷어차 버렸다. 그러면 개들은 신음 소리를 내고는 멀리 도망갔다. 몇 번 차인 녀석은 다시는 내 근처에 오지 않았다. 나를 슬슬 피해 다니는 게 또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눈에 보일 때마다 테니스공을 던졌다.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했던 적이 있어서 집에 테니스공이 많았다. 개들이 공에 맞고 멍청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걸 보는 게 재밌었다. 아내 때문에 자주 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내가 개를 걷어찰 때마다 눈을 흘겼다.

“아빠, 얘들 좀 그만 괴롭혀요.”

딸애도 한 몫 거들고 나섰다. 공에 맞은 개를 안고서 울먹였다. 아내와 딸 앞에서는 개들한테 손댈 수가 없었다. 개들도 내가 보이면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개들을 마음껏 혼내줄지를 생각했다. 기회는 많았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딸애 역시 학교와 학원에 다니느라 바빴고, 친구들을 만나 늦을 때가 많았다. 아내가 시장에 가는 주말이 제일 좋은 시간이었다.

아내가 밖으로 나가면 개들은 이곳저곳으로 숨어들었다. 소파나 침대 밑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빨래바구니 속에 숨어 들어가는 바람에 찾지 못한 적도 있었다. 숨어 있는 개들을 찾는 것도 재미를 더했다. 맹세하지만, 내가 무슨 가혹한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베개 위에 살짝 집어던지거나 알밤을 때리는 정도였다.

하루는 딸애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개한테 상처가 났는데 내가 그랬다는 거였다. 침대로 던졌던 녀석이었다. 힘이 과했는지 옷장까지 날아갔던 게 생각났다. 옷장 서랍 손잡이에 부딪혀서 배 쪽이 조금 긁힌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였다. 아니 상처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냥 피부가 조금 붉게 변한 정도였다. 하지만 딸애는 대성통곡을 했다. 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던 아이였다. 괘씸했다. 처음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마음까지 싹 가셨다.

“울음 못 그쳐?”
내가 소리를 질렀다.
“몰라, 이제 아빠랑 말도 안 할 거야.”

딸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개들을 전부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문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게 어디 아빠한테 버릇없이. 문 못 열어. 당장 나와.”
내 목소리도 커졌다.
“당신이 좀 심했어요.”

아내가 비난조로 말했다. 황당했다. 난 이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깟 애완견 따위가 조금 다쳤다고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딸애는 정말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도 딸애와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어쩌다 학교생활이나 친구들에 관해 물어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내 얘기를 듣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뭔가 말해주려고 하면 ‘아빠하곤 말이 안 통해.’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딸애의 방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교복을 입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 어디 숙녀 방에 함부로 들어와. 빨리 나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애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는 벌써 이렇게 컸나 싶어 그냥 웃고 말았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좀 문제가 있었다. 이 집은 내 집이었다. 내 집에서 내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개들도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겨 있는 딸애의 방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연구 과제처럼 보였다.

나는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애완견은 말 그대로 애완견일 뿐이야. 예뻐하는 것은 좋지만, 당신하고 유미는 도가 지나쳐. 언제나 나보다도 개가 먼저야. 우선 당신, 나 퇴근하기 전에 개들 산책시키러 나가지 마. 대체 내가 왜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야 해? 그리고 유미 너, 개가 어쩌고 하면서 자꾸 아빠한테 대드는데, 그럼 못 써. 고작 짐승 몇 마리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있어야 되겠어? 마지막으로 이놈하고, 이놈은 밖에서 키워. 집에 두기엔 몸집이 너무 커. 개털도 잘 치우고. 이상. 다들 알아들었지?”

열심히 준비한 나의 명연설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바보 같아.”
“그래요. 여보, 유치해요. 당신이 애도 아니고……”
딸애는 한숨을 쉬었고,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충격이었다.
“뭐, 뭐야 지금 이깟 짐승보다 내가 못하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왜 그래요? 봐요 재들도 웃잖아요.”
아내가 그렇게 비꼬며 개를 가리켰다. 내가 공들여 준비한 이야기가 개도 웃을 소리로 전락했다.
“저깟 게 무슨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야 지금. 당신 심하게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저건 개야. 그냥 짐승이라고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 마.”

난 꽤 흥분해 있었다.
“애들이 얼마나 영리한데요. 또치, 이리와. 앉아. 봐요. 내 말을 다 알아듣잖아요.”
아내의 말대로 개는 아내의 발 앞에 다가와 앉았다. 하지만 그건 절대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니었다.
“그건 그냥 조건 반사야.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니라고. 개는 지능지수가 삼십도 안 돼.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저건 그냥 짖는 거야.”
“하여튼, 아빠하곤 말이 안 통해. 또치, 쥬시, 이리와”

딸애가 개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딸이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개하고는 말이 통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날 난 양주 한 병을 전부 마셨다.
나는 개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침 실험 설비교체작업으로 삼일 정도 여유가 생겼다. 확실히 잘 길들여져 있었다. 개들은 딸애의 발소리가 들리면 현관 앞으로 몰려가 꼬리를 흔들었다.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는지 아는 것 같았다. 반면,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합창으로 짖었다. 몇 마리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마치 아내에게 집에 손님이 왔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가만 보니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도 신기했다. 오줌이나 똥이 마려운 녀석은 화장실로 들어가 해결을 하고 나왔다. 몸집이 작은 푸들은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가끔씩 화장실 문 앞에다가 오줌을 흘려 놨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면서 볼을 꼬집었다. 관찰을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아내는 재밌는 장면을 연출했다.

푸들이 화장실 문 앞에 오줌을 싸자 아내가 벌을 세웠다.
“너, 여기 꼼짝 말고 앉아 있어. 움직이면 혼날 줄 알아.”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야구 중계를 보면서 녀석을 살폈다. 녀석은 야구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세 시간이 넘는 경기였다. 중간에 몇 번 소시지를 들고 유혹을 해봤지만 넘어오지 않았다. 딸애가 하듯이 혀로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려 불러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말 잘 듣네. 이리와. 담에 또 그러면 또 혼날 줄 알아.”

아내가 녀석을 부르자 녀석은 신나서 아내한테 달려갔다. 꼬리를 한껏 세우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내는 녀석에게 소시지를 줬다. 녀석은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다른 개들도 아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내가 화가 난 걸 보고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개들이 영리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개가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개들은 아내와 딸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내가 ‘밥 먹자’라고 외치면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달려나왔다. 딸애가 서라고 하면 섰고 앉으라고 하면 앉았다.

아내가 슈퍼에 간 사이에 나도 똑같이 해봤다. 나는 그릇에 개 사료를 가득 담아 거실 중앙에 내려놨다.
“자, 밥 먹자.”

내가 그렇게 외쳤지만 한 마리도 내게 오지 않았다. 더 큰 소리로 몇 번 더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몇 마리가 멀리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사료를 손에 쥐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날 외면했다. 나는 사료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개한테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그릇을 씻는데 식탁 밑에서 자고 있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나를 무시하고 낮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나는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화장실로 갔다. 녀석은 놀랐는지 신음소리를 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동물을 갖고 임상실험을 많이 해서 동물을 못 움직이게 잡는데 능숙했다. 녀석의 머리를 변기 안에 쑤셔 박았다. 물에 들어가자 몸부림이 더 심해졌다. 손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변기 밖으로 물이 튀었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으므로 밖으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것을 반복했다. 등 뒤에서 다른 개들이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마리뿐이었는데 점점 늘어나더니 아홉 마리가 전부 모였다. 녀석들은 화장실 문 앞을 포위했다. 몇 놈은 사납게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발길질 한 번이면 날려버릴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왠지 무서웠다. 아홉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나는 잡고 있던 녀석을 놔주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화장실에 있었다. 아내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변기 위에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렸다. 개들은 아내 앞에선 얌전하게 굴었다. 나는 앙갚음으로 테니스공을 던졌다.

그날 밤 나는 잠들 수가 없었다. 안방 문에는 개들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어떤 정신병자가 칼로 초등학생들을 난자한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사람도 그런 짓을 하는데 개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개들이 안방에 들어와서 발톱으로 내 눈을 파버릴 것만 같았다. 화장대 의자를 빼서 구멍을 막았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됐다. 얕게 잠이 들었다가도 아주 조그만 기척에도 깼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인테리어업자를 불러 문을 바꿨다. 아내가 갑자기 왜 그러냐며 유난을 떨었지만 무시했다. 개들은 노골적으로 날 경계했다. 내가 움직이기만 해도 멀리 도망가 버렸다. 물에 들어갔던 녀석은 나만 보면 짖어댔다. 개들이 정말 말을 알아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들끼리도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개들이 모여 있으면 내 욕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내가 문을 바꾸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지출이 생겼다고 툴툴거리며 가계부를 썼다. 문 값이 얼마나 나왔나 가계부를 봤다. 살림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겼기 때문에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처음 보는 거였다.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개들한테 나가는 돈이 엄청났다. 한 달 사료 값이 삼십 만원이 넘었다. 내 한 달 점심값의 두 배였다. 내가 이발하는 횟수보다 더 많이 털 관리를 받았고 심지어 발톱을 다듬는데도 돈을 쓰고 있었다. 아내는 내 양복보다도 더 많은 개 옷을 샀다. 나는 아파도 약을 먹는 게 고작인데 개들은 수시로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번 돈을 나보다 개들이 더 많이 쓴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개들을 더 세게 걷어찼다. 야구공과 글러브도 구입했다. 야구공에 맞은 개는 잠시 기절하거나 똑바로 걷지 못했다. 아내와 딸이 있을 때는 건드리지 않았다.
“여보, 이리 좀 나와 봐.”

출근을 하려다가 나는 아내를 불렀다. 내 목소리가 신경질적이었기 때문에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현관으로 달려왔다. 나는 양말을 벗어 아내의 발밑에 던졌다. 양말에는 개똥이 묻어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구두를 집어 아내에게 건넸다. 구두 안에도 개똥이 가득했다.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 뒤에서 개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녀석들은 나를 골탕먹이려고 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기회였기 때문이다. 퇴근하는 길에 충무로에 들려 개집을 하나 샀다. 냉·난방은 물론이고 환풍기까지 완비된 최신식이었다. 사람이 살아도 될 만큼 아늑했다. 개집이 너무 커서 차 트렁크가 닫히지 않았다. 아내는 몇 마디 변명을 하긴 했지만, 결국 몸집이 가장 큰 진돗개를 마당으로 내보냈다. 딸애는 개를 묶는 것을 반대했지만 녀석이 자꾸 현관으로 달려와 화단을 망치고 화분을 깼기 때문에 수긍 할 수밖에 없었다.

개집은 대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녀석은 개집의 지붕으로 올라가 하루 종일 현관과 창문을 바라봤다. 나는 가끔씩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면서 녀석을 지켜봤다. 집안엔 아직 아홉 마리의 개들이 남아 있었지만, 녀석을 볼 때마다 나는 일종의 승리감을 느꼈다.

개들도 나름의 위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당으로 쫓겨난 진돗개가 대장이었던 것 같다. 우두머리가 없어진 개들은 힘을 잃었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짖어대던 것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왠지 흥미를 잃었다. 담배가 늘었다. 하루에 반 갑 정도 피우던 것이 어느새 한 갑을 가지고 하루를 넘기기가 힘들어 졌다. 옥상에 올라가 녀석을 지켜보는 습관 탓이었다. 집 밖으로 쫓겨난 지 며칠이 지났을 때, 녀석은 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개집 지붕으로 올라가 날 향해 맹렬히 짖었다.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녀석에게 답례를 했다. 유쾌했다. 녀석의 짖는 소리에 하교하던 여고생 세 명이 대문을 열고 안을 쳐다봤다. 녀석은 짖는 걸 멈추고 꼬리를 흔들었다. 여고생들은 뭐가 좋은지 저희끼리 말을 주고받으면서 웃었다.

녀석은 계속 살랑대면서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여고생들은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남의 집 마당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아니, 녀석의 큰 몸집이 무서웠을 수도 있다. 한 소녀가 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꺼내 녀석에게 던졌다. 약간 높았다. 녀석은 점프해서 그것을 받아먹으려다 지붕에서 떨어졌다. 녀석의 목에는 줄이 묶여 있었고, 줄에 목이 졸린 녀석은 자기 집 벽을 네 발로 긁었다. 여고생들은 놀라서 도망쳤다. 나도 놀라서 담배를 떨어뜨렸다. 나는 내려가서 도와주려다가 발을 멈췄다. 나는 옥상에 있었고 내가 내려가는 동안 이미 죽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녀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발톱이 부러진 것 같았다. 녀석이 네 발을 버둥거릴 때마다 개집 벽에 핏자국이 났다. 얼마 안 있어 움직임이 멎었다. 신음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나는 녀석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혀를 찼다. 피곤했다.

딸애의 소란 때문에 잠에서 깼다. 아내는 의외로 침착했다. 죽은 개의 시체를 닦고 개집을 정리하더니, 조용히 동물 장묘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기르던 개가 죽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딸애는 계속 개의 시체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아내는 딸애를 진정시키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왔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신문을 읽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남자 둘이 들어와 시체를 가져갔다. 그들은 낚시조끼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조끼뒤쪽엔 ‘아롱이천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체를 대하는 손길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다녀올게요. 차 가져가요.”

아내가 그들을 따라나서며 말했다. 나는 아내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눈빛이 날 힐난 하는 것 같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애는 개들을 전부 데리고 갔다. 갈 생각은 없었지만 내게 같이 가자는 말은 없었다. 아홉 마리나 되는 개를 태웠으니 차가 비좁았을 것이다.
나는 신문을 두 번 읽고, TV를 봤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볼만한 방송은 없었다. 저녁은 중국요리를 시켜 먹었다. 아내는 열한 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아빠가 죽인 거지?”
딸애가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데다 울어서 눈이 부어 있어 약간 섬뜩한 모습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거짓말 하지마. 얘들이 다 말했어. 아빠가 죽였다고.”
딸애가 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들이 날 보며 짖어댔다. 덤벼들 것 같았다. 딸애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무시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출근을 하다가 딸애와 마주쳤다.
“살인자.”
딸애가 날 보자마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살인자라니. 중학교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살인자라고 한다는 간단한 것조차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게 우스웠다. 나는 따끔하게 혼내주려고 했지만 딸애는 어느새 나가버렸다.
“살인자.”
퇴근해서 처음 들은 말도 그 말이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개가 죽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당신 그럼 일부러 죽으라고 보고 있었단 말에요?”
내 말을 들은 아내가 끼어들었다. 답답했다.
“거짓말하지 마. 아빠가 죽인 거야. 얘들이 다 말했어.”

딸애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때 개 한 마리가 내게 달려들었다. 변기에 처박았던 녀석이었다. 나는 놀라서 급히 물러섰지만 개의 빠른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장딴지를 물렸다.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쳤지만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빨이 정강이뼈에 닿은 느낌이었다. 한 발로 균형을 잡는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 고통이 더해져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아내가 뭐라고 소리치자 개가 떨어졌다. 몸에 박힌 못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지에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녀석의 침과, 뚫린 바지 구멍 사이로 배어 나온 피가 엉겨 토사물처럼 보였다.

“얘들이 이러는 건 분명 이유가 있어요.”
아내가 딸애 옆에 섰다. 난 간신히 숨을 골랐다.
“좋아, 내가 증거를 보여주지.”
목소리가 떨렸다. 난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실험준비를 시켰다. 개의 증언 따위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려줄 생각이었다. 개와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개들이 저희끼리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준비했다. 개들을 전부 차에 태우고 실험실로 향했다. 개들은 조교에게 맡기고, 나는 아내와 딸애를 모니터 룸으로 안내했다. 지하 실험실에선 조교들이 준비를 끝내고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해.”

나는 마이크에 대고 실험 시작을 알렸다. 모니터에도 전원을 넣었다. 여섯 개의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 속에 개들이 있었다. 아내와 딸애는 개들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했다.
“뭐 하는 거예요?”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실험이 시작됐다. 실험 방식은 간단했다. 방에 칸막이를 세우고 한쪽에는 일곱 마리의 개를 놔두고, 나머지 한쪽에는 두 마리의 개를 묶어둔다. 칸막이는 소리는 들리지만 반대편이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두 마리가 묶여 있는 쪽 중앙에는 개 사료를 놔둔다. 그리고 칸막이 반대편에 있는 개들을 한 마리씩 사료가 있는 곳으로 들여보낸다.

첫 번째는 우리 집 개가 아니라 실험용으로 실험실에 있던 개를 들여보냈다. 그 개는 사료를 보자마자 그릇으로 달려갔다. 그릇 중심에는 막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스위치를 누르면 막대에는 10만 볼트가 넘는 전류가 흐르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스위치를 누르자 개가 즉사했다. 사료도 수분이 증발해서 쪼그라들었다. 조교가 개의 사체를 치우고 새 사료를 그릇에 담았다. 묶여 있던 개들이 짖어댔다. 우리 집 개들 중에 가장 영리한 두 녀석이었다. 만약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칸막이 반대편에 있는 개들에게 그릇의 위험을 알렸을 것이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끔찍해.”
딸애가 얼굴을 찡그리며 화면에서 멀리 물러섰다. 우리 집 개가 들어섰다. 화장실 앞에 오줌을 흘리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묶여 있는 두 마리 다른 개들을 보고 몇 번 짖었다. 묶여 있던 개들도 짖었다. 마치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사료그릇으로 다가갔다. 처음 개처럼 무조건 먹지는 않았다. 냄새를 맡고 코끝으로 몇 번 그릇을 건드려봤다. 조심성이 많은 놈이었다. 하지만 결국 먹기 시작했다. 난 스위치를 눌렀다. 순식간이었다. 털이 바늘처럼 빳빳하게 섰다가 헝클어졌다. 윤기나던 흰색 털들이 쥐색으로 변했다. 입에서 피와 체액이 섞여서 흘러나왔다. 스위치를 누른 손끝에 묘한 쾌감이 전해졌다. 화면을 보고 있던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딸애는 내 팔을 때렸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묶여 있는 두 마리 개들은 계속 짖고 있었다. 칸막이 반대편의 개들도 요란하게 짖었다.

두 번째는 날 물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좀 더 오랫동안 그릇 주위를 서성였다. 묶여 있던 개 옆에 다가가서 한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녀석도 결국 사료에 주둥이를 묻었다. 딸애가 팔을 꼬집었지만 밀어내고 스위치를 눌렀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전류봉에 직접 닿지 않은 탓인지 한 번에 죽지 않았다. 눈알이 터져 체액을 흘리면서도 몸을 움직였다. 짖는 건지 신음을 내는 건지 모를 소리를 냈다. 녀석은 부러진 다리를 끌면서 묶여있는 개들한테로 조금씩 다가갔다. 조교가 야구배트로 녀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혹시 이런 경우가 있을까봐 미리 지시한 대로였다.

“미쳤어? 엄마 어떻게 좀 해봐.”
딸애가 쥐어뜯어 와이셔츠가 뜯어졌다. 아내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실험을 계속했다. 세 번째 개가 들어왔다. 딸애가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계획대로였다.
“해피야 먹지 마. 그 그릇에 전기가 흘러. 위험해. 먹지 마.”

딸애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개들에게 전달됐다. 개들은 딸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정작 세 번째 개는 그릇에 주둥이를 묻고 사료를 먹었다. 딸애가 몇 번을 더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난 스위치를 눌렀다. 개가 딸애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절대로 먹었을 리가 없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모두 성공이었다. 칸막이 반대편에 있던 개들이 모두 죽었다. 딸애는 목이 쉬었다. 개는 저희끼리 대화를 할 수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나는 아내와 딸애한테 실험 내용을 설명했다.

“어때? 이제 알았지? 개는 말을 못 해. 내가 죽였다는 말을 했을 리가 없어.”
“당신은 미쳤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딸애가 의자를 집어던진 탓에 모니터 하나가 깨졌다. 조교가 사료그릇 앞에 묶여 있던 두 마리의 개를 풀어줬다. 과연 개들이 눈앞에서 다른 개들이 죽는 것을 보고도, 사료를 먹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도 확신할 수 없는 실험이었다.
“또치야 먹지 마.”

딸애가 소리를 질렀다. 역효과였다. 사료그릇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던 개들이 딸애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것 같았다.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지만, 둘 다 사료를 먹었다. 난 딸애를 못 움직이게 제압하고 스위치를 눌렀다. 마지막으로 죽은 녀석은 크게 울부짖었다. 스피커뿐 아니라 계단 쪽으로 이어진 통로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역시 개는 한낱 짐승일 뿐이었다. 그깟 미물 따위가 감히·……. 마지막 개가 죽을 때 딸애는 기절했다.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미쳤다고 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쳤다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매우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뭣보다 혹시나 하고 측정해본 내 세로토닌 수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나는 실험이 계획대로 끝나 기뻤다.

개가 없는 집은 정말 평온했다.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제야 진정 내 집이 된 것 같았다. 아내와 딸애가 화가 났겠지만 곧 풀어질 것이고, 나는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당신하곤 못 살아.”

아내는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갔다. 딸애도 함께 갔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깟 개 때문에 이혼을 하겠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이혼에 합의하지 않았다. 아내는 소송을 걸었다. 내 재산의 반을 위자료로 달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약간의 예금이 있긴 했지만, 재산의 반이라는 것은 집을 팔아 나누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집은 아내와 내가 살면서 생긴 재산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유산을 그깟 개 때문에 팔 수는 없었다. 뭣보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했다.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애완견을 죽인 것은 이혼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나는 아내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위자료도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니 꼭 이혼을 해야겠다고 했다. 딸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 딸애는 날 악마 보듯 했다. 아내 말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 이라고 했다.

아내는 옷만 챙겨갔을 뿐 다른 물건은 그대로 놔뒀다. 집안 곳곳에 아내와 딸애의 흔적이 남았다. 화장대를 볼 때마다 아내가 생각났다. 마트에서 사온 김치는 아내가 담근 것보다 맛이 없었다. 드디어 딸애의 방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옷과 책만 없을 뿐 그대로였다. 벽에 남자가수들의 대형사진이 붙어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왜 날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술이 떨어졌다. 족발은 거의 먹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씩 후회는 된다. 집은 엉망이 됐다. 방마다 형광등이 나가 어두웠고, 바닥엔 먼지가 쌓여 매일 양말을 새로 사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오랜 유학생활도 견뎌온 나다. 혼자 산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어야 한다. 도우미를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욕이 없다.

아내가 보고 싶다. 딸애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딸애는 이제 고등학생이 됐을 것이다. 제 엄마를 닮았으니 예쁜 숙녀가 됐을 텐데. 결혼할 때 내가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동안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번호가 뜨면 전화기를 꺼버리는 것 같다. 눈물이 난다. 지갑을 열어 가족사진을 본다. 딸애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다들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개를 백 마리 키운다 해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함께 있어야 한다.
나는 발신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말을 하면 아내는 전화를 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곧 전화는 끊길 것이다.

“월, 월, 멍, 멍……”
나는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낸다. 아내가 계속 말을 한다. 나는 더 크게 짖는다. 동네의 개들이 내 소리를 듣고, 따라 짖는다. 내 슬픔에 공명하는 것 같다.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동네에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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