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낚시篇(편)

낚시에 잊은 새 學期(학기) 開講日(개강일)

손 끝에 전해오는 生動(생동)의 맛

두 가지 재미

 

아침 저녁으로 싸늘한 바람, 이젠 가을도 깊었음에 틀림없다. 얼마후면 밤하늘에 기러기의 울음이 울려퍼질 이 맘때면 검푸른 밤하늘을 담은 물도 제법 차갑다. 차가워진 물 그 속에서 고기들은 지금쯤 겨우살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낚시는 한철을 冬眠(동면)해야 한다. 그래서 休日(휴일)이면 막바지의 단 하루라도 잔잔한 湖心(호심)에 잠겨 보려고 낚시 同好人(동호인)은 거의 必死的(필사적)으로 湖水(호수)를 찾는다.

나는 얼마남지않은 낚시철을 자꾸 놓치면서 늦으막히 버스에 오르는 낚시人(인)의 푸짐한 바구니에 視線(시선)을 뺴앗기곤 한다.

내가 낚시질을 처음 배운 것은 아마도 여일곱살 때부터 였을게다. 그때 스물넷인가 했던 삼촌이 줄곧 나를 대리고 낚시질을 갔었다. 내 고향은 바닷가인 陸地(육지)여서 바다낚시질과 일몰낚시질을 함께 배웠었다. 햇볕이 쨍쨍 내려쪼이는 여름이면 아무래도 바닷물에서 망둥이를 낚아 올리는 재미가 그만이었고 이른 봄이나 초가을엔 붕어 낚시가 제법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의 이른 봄이었다. 나는 동네아이들이랑 마을 앞 저수지에 낚시질을 갔었다. 都市(도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으나 우리들 보다는 못낚는 모양이었다.

우리들은 지렇이를 정성스레 낚시에 끼었고 그 어른들은 보리멱을 쓰고 있었다. 그날은 나나 친구나 푸짐히 낚았다. 그런데 마흔살쯤 되어보인 아저씨는 종일 내내 허탕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즈음이면 저수지 뚝은 아직도 쌀쌀해서 우리는 그만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우리에게 고기를 팔라는 것이었다. 꾀 많은 돈을 난생처음 고기와 바꿔쥐고 오면서 우리는 이상스런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고기를 사서바구니에 넣으며 씁쓸하게 웃는 그 아저씨가 어쩐지 퍽 안되었다 싶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고기를 낚으면 팔자고 했다.

고기를 낚아 올리던 그 재미 보다도 돈과 바꾸는게 이상하게 좋았다. 그래서 나랑 친구녀석은 그 다음날부터 점심을 싸가지고 곧장 저수지로 가곤 하였다. 며칠 수의 오전이었다. 우리가 낚시질에 한창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들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돈과 바꾸는 재미에 빠져서 그만 새학기가 시작된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튿날 부터는 할 수 없이 학교에 나가느라고 그만 두었지만 전날 밥을 뿌려둔 곳에 다른 사람이 낚시를 넣지나 않을까 잠이 오질 않았었다.

그후로는 여간해서 낚지할 機會(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高等學校時節(고등학교시절)부터 다시 틈을 내었다.

낚시질을 하면서 나는 두가지의 재미를 만끽하곤 하였는데 물론 좀 나이가든 뒤부터의 일이다. 손끝을 通(통)해 전해오는 고기의 꿈틀거림이며 生動(생동)의 맛 휘어진 낚싯대의 진동을 좀 더 오랫동안 맛볼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잔잔한 水面(수면)에 온 힘을 기울여 筆(필)을 그어댄 東洋畵(동양화) 水面(수면)을 通(통)해 深淵(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忘我(망아)의 境地(경지)는 고기를 낚아올리는 재미보다 한결좋았다.

물에 담긴 그림자를 바라보며 自己(자기)를 觀照(관조)하는 態度(태도)를 배운 것은 더할나위 없는 낚시의 보람이기도 했다.

낚시질을 즐기면 가난해진다고 어머니나 아버지는 낚시질을 한사코 말리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난해질까봐 낚시질을 못가는 편이 아니라 오히려 生活(생활)이 어려워진 탓으로 낚시를 못간다. 日曜日(일요일)이면 살금살금 낚시도구를 챙겨 곧장 저수지아니면 바닷가로 내달렸던 그 마을, 그 동무들이 지금은 다 어디가서 무얼하고 있는지, 낚시질은 해봐야겠다면서 자꾸만 視線(시선)을 빼앗는 고깃바구니가 더없이 부러울 뿐이다.

(法學科(법학과)) ▲投稿歡迎(투고환영) 申正秀(신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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