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희는 카운터로 갔다.

다이얄을 돌렸다.

통환가? 자리로 돌아왔다. 7시 30분이다. 다방안은 거의 다 메워졌다. 속힌 것인가 하는 생각이 왈칵든다.

그래두 30분간이나 조심성스럽게 기다린 것이 미련이 남았다. 례지가 커피를 가지고 았다. 현희는 전화통 앞으로 갔다. 세 번이나 돌렸으나 나오이 않는다. 전화까지 고장이 났나 하는데 례지가 옆에 오더니 몇 번에 거느냐고 묻는다. 유쾌하진 않았으나 시간을 끈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어 망설이며 알려줬다.

“⑧국에 2·4·8·3인데 잘 안되는군요.”

“2483?”

례지가 의아해하며 쳐다본다.

“여기가 ⑧에 2483인데요?”

정신이 앗찔했다. 이렇게 속힐 수가 있나 싶다. 기가 맥힌다는 생각 뿐이다. 구직광고, 국민학교, 삼천원, 다방 ‘초원’ 검은 옷의 사내, 이런 대화들이 뇌를 어지럽혔다.

어떻게 찻값을 치르고 다방 ‘초원’을 빠져나왔는지 아련했다.

다방 어느 구석엔가 웅크리고 앉아 내 행동을 눈여겨보고 조소했을 그 사내. 잇빨이 부딪도록 얄밉다. 건너편에 앉았던 그 뚱뚱보는 당황하게 나가는 자기에게 이상한 계집앤걸 하며 손가락 끝으로 동그라미를 그렸겠지.

비 탓이였는지 밤의 공기가 제법 싸늘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종이 쪽이 집혔다. 얌전히 접은 메모용지들, 파란 것이 하나. 다방 ‘초원’의 도어를 밀고 나오면서 전언관에서 뽑아 온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고 나온 것이다. 사실 이걸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빼온 것은 아니었지만 보복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정말 중대한 내용이나 쓰여진 것인지 아니면 자기에게처럼 이렇게 속임수를 전하기 위해 쓰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시간 속에 몇 사람의 발길이 엇갈려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잖은 마음이 되었다. 결국 손바닥만한 이 석장의 종이조각 길바닥에도 얼만던지 흩어져 있을 수 있는 종이 쪽이라고 생각해 부리기엔 아직 현의는 그렇게 옹골차지 못했다. 그렇다 제자리에 갔다 둬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없었다. 찢어버릴가 하다 도로 주머니에 꾸겨넣었다.

와야 하겠다는 생각도 없으면서 다방 ‘밀궁’까지 오고 말았다. 안식하고 싶은 엷은 기대가 울증으로 가득한 가슴을 베어 들었다. 포근히 감싸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게 현선생님이던 미스터 박이던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은 일종의 지나가는 사건들의 강물이며 ㅇㅇㅇㅇ ㅇㅇㅇㅇ다. 그리하여 어떤 사물이 나타났는가 하면 연방 스쳐가 버리고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샐 등장한 이것도 곧 스쳐가 버리고 말 것이다. 쉬고 싶다. 현희는 다방 ‘밀궁’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한산하다. 미쓰 리가 아는 체를 한다. 마주 웃어주며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방 ‘밀궁’은 현선생님이 아침저녁 들르시는 곳이다. 좁은 다방은 볼품이 없었지만 언제나 안개 속 같은 기분을 갖게 해난 다방 분위기다. 한 두 번 정도 좋아질 수는 없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밀궁’의 손님은 단골을 제외하곤 별로 낮선 손님이 적은 편이다. 온갖 피로와 그 사내를 향한 가셔지지 않는 엷은 분노가 손끝으로 밀려 나오는 듯 했다. 파도가 조약돌이 깔린 해변가를 질주해 오다 빠져 나가듯이 이렇게 ‘초원’에의 기억도 엷어가지만 현희에겐 지나치게 센 물살이었다. 일단 3행의 구직광고에 온통 자신을 얽매이게 한 스스로의 자세에 더 짜증스러움이 생겼다. 현 선생님은 삼촌이 납치당해 버린 후에도 가까이에서 현희를 애껴주시던 분이다. 밀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좀 더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 앉았다. 안갯발 같이 공복이 느껴졌다.

50일 전 지금의 하숙으로 옮기던 다음날 현식이가 교통사고로 죽게되었을 때 일주일 동안이나 집엘 알리지 않았었다. 물론 현선생님에게도 얘기하지 않은채 경찰병원에서 고아로 가매장되었다. 왜 그런 깜직한 행동을 저질르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아버지가 기절을 할 것을 염려해서 한 것은 아니다. 그때 동행했던 현식이가 아스팔트 위에 나둥그러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현희가 기절을 했었다. 눈을 떴을 땐 주위에 몇사람의 시선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기억이 없다.

“현식인?”

“둘이 다 중병이라곤 하나두 없어서…”

하며 눈알이 붉어진 사내가 묻기 시작했다.

“들다?”

현희는 다시 의식이 몽롱해졌다. 무엇이라고 지꺼렸는지 기억이 없다. 고아라고만 울부짖던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며 병원을 뛰쳐나왔다. 거리를 헤매다 늦게 하숙으로 돌아왔다.

주인아주머니에겐 동생이 친척집에 며칠 가 있기로 했다고 하고선 그 길로 꼼짝없이 하숙에 있었다. 일주일째 되던날 하숙을 찾아 온 현선생님은 사색(死色(사색))이 되어진 현희를 보시고 깜짝 놀랐다.

현희는 모든 것이 자기 안으로 찾아드는 환각 속에서 정신없이 지꺼렸다. 그 다음은 깅거이 없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으리라.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현희는 눈을 떳다. 엄마다. 그 옆에 아버지가 지키고 계셨다.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물이 주름진 그네들의 얼굴 위를 타고 내렸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현식이 얘긴 하지않았다. 의사의 주읨나도 아닌성 싶었다. 현선생님은 매일 들르셨다. 열한살 짜리의 생명은 아버지의 욕심으로 조건없이 흙이 된 셈이다. 국민학교 五(오)학년에서 시골학교에서 전학을 시켰다.

(國文科(국문과))金靜瑗(김정원) 吳明哲(오명철) 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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