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裏窓(이창)’

 

佛蘭西(불란서)의 記錄映畵作家(기록영화작가) ‘후란소와·라이헨바흐’가 一年半(일년반)동안 美國(미국)을 旅行(여행)하며 끈질기게 社會(사회)의 裏面(이면)을 찍어낸 長篇記錄映畫(장편기록영화). 近來(근래)에 開封(개봉)을 본 “世界(세계)의 밤”처럼 짤막짤막한 스물아홉개의 씬을 한데 묶어 놓았다.

샌프란시스코의 金門橋(금문교)를 비롯하여 휴스톤市(시) 市民(시민)들의 視祭(시제)에 쓰이는 포장마차, 광막한 美國(미국)의 보리밭, 디즈니랜드 等(등) 美國(미국)의 風習(풍습)과 氣質(기질)을 포착한 카메라는 一時間三十分(일시간삼십분) 동안 資本主義(자본주의)와 美姬(미희)들이 우글대는 뉴욕에 가서 엔딩.

作者(작자)의 말을 빌리자면, “뉴-욕은 심장도 과거도 없다는 都市(도시), 맘모스의 뉴-욕 허나마 천루의 물거울이 비쳐주는 뉴-욕의 자태에서 나는 이 都市(도시)의 보물과 寺院(사원)을 發見(발견)한다 기나긴 旅行(여행)이 이곳에서 끝난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츄어 作家(작가)에서의 脫皮(탈피)를 보여 준 이 記錄映畵(기록영화)는 ‘라이헨바흐’의 短篇記錄映畵(단편기록영화) 보다 進境(진경)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너무 카메라에 집착한 탓으로 째임새가 없는 느낌. 刑務所(형무소) 안에서 까지 赤裸裸(적나라)한 죄수들의 私生活(사생활)을 포착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全篇(전편)을 흐르는 메카니즘과 쎅쉬한 탓취는 娛樂映畫(오락영화)로서의 氣分(기분)을 살려놓고 있다 公開(공개) 되지 않은 美國(미국) 스트맆쇼 學校(학교)의 全景(전경)이라든가 쌍둥이 大會(대회), 오트바이 타기, 꼬마자동차 경주, 후라후-프 경기대회는 美國(미국)의 텔레비전죤 뉴-스를 보는 것 같아서 實感(실감)이 나지 않는다.

製作(제작)에 ‘삐엘·브랑벨제’ 總天然色(총천연색) 씨네마스코르, ‘미셀·르그랑’의 카니발의 노래가 들을만 하다. 大韓劇場上映中(대한극장상영중) 【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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