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民主主義國家(현대민주주의국가)에서는 日曜日(일요일) 이란 모든 사람이 한주일동안의 피로를 풀고 뿐만아니라 다음주일의 計劃(계획)을 세우는 매우 重要(중요)한 날이다.

나는 高等學校(고등학교) 때부터 山(산)에 趣味(취미)를 갖고 日曜日(일요일)이면 (물론 ᄈᆞ지는 날도 많지만) 山(산)으로 向(향)한다. 몇몇 마음맞는 親舊(친구)들과 山(산)으로 가는 발은 믿음직하기만 하다.

눈보라, 비바람을 맞고 또 피해가면서 꾸준히 忍耐(인내)와 勇氣(용기)로써 山(산)으로 向(향)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岩壁(암벽) 登攀(등반)을 한다.

어떠한 다른 運動(운동)보다도 精神的(정신적)인 技術(기술)이 必要(필요)하다.

日曜日(일요일)이다. 오늘도 우리는 항상 만나는 敦岩洞(돈암동)에서 버스를 탔다. 물론 만원뻐스다. 입추의 여지가 없는 버스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아침 저녁으로 出退校(출퇴교)만원뻐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하고 답답한 표정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버스차장이나 운전사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고만태워라” “운전잘해라”하는 기분 좋지않은 언사는 들을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벙어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말을 하지마는 모두들 한주일동안의 피로를 풀고 다음주일의 시작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日曜日(일요일)이기 때문에 입에서 그러한 말을 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明朗(명랑)하고 快活(쾌활)하기만 하다.

道峰里(도봉리)에서 버스를 내려 ‘만장봉’ ‘선인봉’ ‘주봉’을 지나기 전에 ‘天竹寺(천죽사)’에서 休息(휴식)을 얻으면 벌써부터 岩壁(암벽)을 登攀(등반)할 準備(준비)를 머리로 더듬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욱 安全(안전)하고 妙味(묘미)있는 登攀(등반)을 할 수 있을까하고….

俗世(속세)를 떠난 氣分(기분)이다. 어제까지 서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또 잊혀지지 않던 흐지부지한 事件(사건)들이 모두 사라진다. 散漫(산만)한 精神(정신)을 하나로 뭉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山(산)으로 向(향)하는 目的(목적)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면서 남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또 물어볼 準備(준비)도 하지 않는다. 우리 一行(일행)의 炊事場(취사장)은 항상 일정하다. (지정된 곳도 아니지만) 主峰(주봉)아래 샘터에 닿으면 시장끼를 느껴 炊事(취사)에 着手(착수)한다. 만약 서울의 어느 지붕 밑에서 男子(남자)가 밥을 한다면 하나의 우음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鐵面皮(철면피)는 아니다.

우리도 喜怒哀樂(희노애락)을 느낄 수도 있고 부끄러움도 느낄 줄 안다. 家庭(가정)에서 밥을 지으라면 앉아서 한두끼 굶는 한이 있더라도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지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부끄러움을 잊고 밥을 짓는다. 모두들 시장하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물론 시장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아마 山(산)에 趣味(취미)를 가진 사람이면 나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처럼 대답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알고 느끼기 위해 日曜日(일요일)이면 山(산)으로 向(향)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더욱더 아니다. 金鑛脈(금광맥)이나 石炭脈(석탄맥)이라도 찾으러 간다는 것인가? 물론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爲(위)해 山(산)으로 가는 것일까? 이렇게 不分明(불분명)한 問題(문제)가 있다고 해서 눈먼 장님들이 코끼리 만져보는 格(격)은 아니다.

確實(확실)히 무엇이 매혹하는 때문이다. 무엇이 매혹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운 질문이다. 大自然(대자연) 속에 原始人間(원시인간)들이 崇拜(숭배)했던 自然神(자연신)이 있어서 우리를 日曜日(일요일)마다 오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다.

二十世紀(이십세기)의 高度(고도)로 發達(발달)된 機械文明(기계문명)은 우리 人間(인간)을 太古(태고)적 ‘에덴’의 樂園(낙원)으로부터 복잡다단한 現代(현대)의 都心(도심)으로 끌어넣어 버렸다. 都心(도심)의 交通量(교통량)이 폭주하는 그 속에서 電車(전차)네 버스네 合乘(합승)이네 새나라입네하고 우물 안 개구리모양 집에서 學校(학교)로·다시 學校(학교)에서 집으로 정신없이 오가며 시달리다보면 마치 어느 옛날 童話(동화)의 主人公(주인공)인양 더 멀고 더 큰 未知(미지)의 世界(세계)를 그리게 마련인게 人間(인간)의 當情(당정)인 모양이다. 그러기에 講義時間(강의시간)에 문득 창넘어로 南山(남산)의 빠알간 단풍을 바라보며 오는 日曜日(일요일)엔 郊外(교외)의 어디 한적한 山(산)골짜기를 찾아가야지하고 엉뚱하게 講義內容(강의내용)과는 전혀 각도가 다른 空想(공상)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막상 닥아온 日曜日(일요일)이다. 그렇다. 오늘은 日曜日(일요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山(산)에 가야만 한다.

 

梁榮三(양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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