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산)에 가지 않으련? 이번 일요일 九時(구시) 우이동 종점으로 가자 응.’

두 주일 前(전)부터 약속이 되었었다. 이번엔 몇 명이나 따라 나설까? 전례에 비추어 별 기대는 가지지 않지만 되도록 이면 많은 학생이 참석했으면 한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도 괜찮지만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한번쯤은 한 일행이 되어 山(산)에 오르게 하고싶은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권하면 바지가, 신발이, 하고 핑계가 많다. 생각이 없으면서도 권하니까 한번 웃겨 보자고 하는 줄을 괜히 알면서도 나는 궂이 다음말로 옮겨 가능한 조건을 들쳐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린다. 결국 별소득 없이 돌아서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시작한 등산이다. 내놓을 이력조차도 없는 내가 이사람, 저사람에게 山(산)에서의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기를 칭하니까 타인이 보기는 등산가 이기나 한 것처럼 보는지 모른다. 실상 횟수를 따져보면 열손가락을 꼽고 한둘쯤 여유가 있을까 말까다.

오늘의 목적지는 작년 여름 K선생의 손가락 끝으로 바라 본 ‘오봉’이다.

설친 잠에다 아침까지 굶고 우이동에 이르니 A가 반긴다. 한 차에서 내렸던 D와 A의 네 번이나 차를 갈아 탄 얘기를 들어면서 또다른 일행을 담아 올 다음 차를 기다렸다. 우리 <크라스-메이트>는 모두 열둘이다.그리고 선생님 그룹의 멤버, 그를 따르는 이들해서 일행은 근 삼십명 가까이 되엇다. 일행 중에는 애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온 학생, 심심해 배낭을 짊어지고 낭다 아는 이를 만나 일행이 된 여학생, 8개월 된 아가를 배낭에 넣어 등산 하였다는 ‘하이커 부부’, 딸의 손을 잡은 딸많은 아버지, 각 층의 사람이 모였다.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山(산)에 오르면 여자도 남자도 아이도 어른도 모두 다정한 친구가 된다. 가족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山(산)에 오를 적마다 마음 속에 다짐한다. 내 육체가 거동 할 수 있는 한 山(산)을 가까이 하자고.

어떤 先人(선인)이 말한대로 ‘거기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라는 대답 외에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상봉으로 향한 오솔길은 다른 코스에 비해 훨씬 오르기 쉬웠다. 점심 준비로 계곡을 따라 올랐다.

‘키타’를 둘러멘 대학생풍의 일행들은 몇날 며칠을 山(산)속에서 살았는지 완연히 山(산)사람이었다.

앞서 山(산)을 오른 우리 일행이 걱정되었다. 이 山(산) 저 山(산)에 내고 크게 소리쳐 불러보아도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 출발을 서둘때야 그들은 상봉으로부터 내려왔다. 반가우면서도 미웠다. 아무리 山(산)에 익숙 하드래도 일단 한 일행이 된 이상 행동을 같이 할 것이지. 누군가가 ‘내가 선생님이라면 한 차례 씩 때려줄텐데’하여 웃었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우릴 기다린다. 간신히 제 일봉을 거쳐 이봉에 이르렀다. 제 가끔 환성을 발했다. 山頂上(산정상)에의 느낌은 일치했으리라. 후회뿐인 과거를 돌아보듯, 山(산)아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仙界(선계)에 올라앉은 神仙(신선)인양 모두들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렀다.

Y양의 장타령에 배꼽을 쥐었다.

下山(하산)하는 길은 능선을 택한 탓으로 사막같은 비탈길을 서로들 밀며 스키를 타는 기분이었다. 죽어도 좋다면서 계속해서 찌꺼기 파티가 한창일 때 우리 ‘크라스메이트’는 슬며시 빠졌다. 반짝이는 불빛을 따라가며 한아름 안은 갈대에 제 생각들을 담았다. 山(산)으로 꽉 찼던 마음에 금이 간다. 작년여름 가뭄때의 논바닥을 닮아 가나 보다. 눈앞에 닥아서는 얼굴들이 있다.

텅 빈 대합실 出口(출구)를 지키는 듯한 ‘코스모스’가 그것이다.

別(별)다른 일을 해놓은 보람은 느끼지도 못하였으면 그동안 山(산)에 못오고 흘러간 休日(휴일)들이 뭇내 아쉬워 로는 것은 오늘의 登山(등산)이 더없이 滿足(만족)스러웠다는 證據(증거)가 될 것이다. 이젠 가냘픈 어둠들이 발밑을 덮어 下山(하산)의 길이 좀 어렵더래도 가슴은 豐滿(풍만)하고 기분은 흐뭇해서 짜증은 안난다.

붐비고 비비적거리는 ‘럿쉬·아워’의 道路(도로)에서 사람과 사람 틈에 끼어 쩔쩔메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포근하고 재미있는 산길이냐.

(國文科(국문과)) 朴英福(박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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