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히 싸워라 學生(학생), 大衆(대중)들아 吾等(오등)의 ‘슬로간’아래 궐기하자, 吾等(오등)의 勝利(승리)는 오직 吾等(오등)의 團結(단결)과 犧牲的精神(희생적정신)에 있다”는 口號(구호)를 絶叫(절규)하며 惡辣(악랄)한 日本帝國主義(일본제국주의)에 抗拒(항거)하여 學生運動(학생운동)의 始源(시원)을 이룬 光州學生義擧紀念日(광주학생의거기념일) 第十一回(제십일회) ‘學生(학생)의 날’이 오는 三日(삼일)로 迫頭(박두)하였다.

一九二九年(일구이구년) 十一月三日(십일월삼일) 義擧(의거)가 일어난 후 前後六個月間(전후육개월간)에 걸쳐 五十四個(오십사개)의 初等學校(초등학교), 一百三十六個(일백삼십육개)의 中等學校(중등학교), 四個(사개)의 專門學校(전문학교), 또 間島(간도)에서의 八個校(팔개교)等(등) 五萬七千名(오만칠천명)의 피끓는 學徒(학도)가 參加(참가)한 이 運動(운동)은 退學(퇴학) 五百八二名(오백팔이명) 無期停學(무기정학) 二千三百三十名(이천삼백삼십명)의 犧牲者(희생자)를 내면서 全國坊坊曲曲(전국방방곡곡)에 遼遠(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獨立鬪爭史上(독립투쟁사상) 例(예)가 드문 學生運動(학생운동)의 찬란한 金字塔(금자탑)을 이루었던 것이다.

光州學生事(광주학생사)건이 있은지 二十餘年(이십여년)이 지난 一九五三年(일구오삼년) 十月二十日(십월이십일) 大韓民國國會(대한민국국회)는 滿場一致(만장일치)로 十一月三日(십일월삼일)을 學生(학생)의 날로 制定(제정)하여 每年(매년) 多彩(다채)로운 紀念行事(기념행사)를 實施(실시)하여 왔다.

그런데 最近(최근) 日本(일본)서도 우리교포 女學生(여학생)이 이런 경우를 當(당)하여 韓日學生間(한일학생간)의 충돌을 빚고 있어 닥아오는 ‘學生(학생)의 날’을 앞두고 學生(학생)들의 觀心(관심)이 集中(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學生(학생)의 날’을 맞이하여 本校(본교)에서는 個別的(개별적) 紀念式(기념식) 거행은 아직 未定(미정)이라 하며 文敎部(문교부)와 學生(학생)들 共同主催(공동주최)로 서울 운동장에서는 뜻깊은 紀念式(기념식)을 갖게될 豫定(예정)이다.

一九五四年(일구오사년) 六月十日(육월십일) 全國學徒(전국학도)들의 정성을 모아 發祥地(발상지)인 光州西中學校(광주서중학교)에 세운 ‘光州學生獨立運動紀念塔(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의 前面(전면)에 〃우리는 핏끓는 學生(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生命(생명)이다〃라는 文句(문구)는 永遠(영원)히 韓國靑年學徒(한국청년학도)들의 지켜나갈 ‘못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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