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陰地(음지)(1)

精進(정진)을 約束(약속)하며

 

나는 367日(일)을 誕生(탄생)의 날로 定(정)한 畸形兒(기형아)였다는 너무나 또렷한 事實(사실)의 正義(정의) 밑에서 어처구니 없는 꿈을 지금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꿈을 實體化(실체화)하기 爲(위)하여 난 모든 것을 나의 位置(위치)한 周邊(주변)으로부터 不許(불허)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父母(부모)도 兄弟(형제)도 그리고 석류알 터질 듯한 사랑까지도 말입니다. 허나 오롯한 座標(좌표)위에선 나의 서상에 對(대)해선 어떤 責任(책임)도 附加(부가)시키지 않습니다.

좁디좁은 視野(시야)에 病(병)든 落葉(낙엽)이 떨어지고 있군요. 파삭 마른 가지에 대롱거리며 病(병)들어 가는 잎도 있지만 난 殘忍(잔인)한 勇氣(용기)로 傍觀(방관)하렵니다. 그리고가선 가슴속 깊이로만 흐르는 해맑아 지려는 개울에서 조약 돌을 씻어 쌓아 올리렵니다. 가야하는 앞에 숫한 屍體(시체)를 發見(발견)하게 되더라도 同情(동정)을 配給(배급)하는 가난한 洞會(동회) 事務員(사무원)은 않닮으렵니다. 肉體(육체)는 아팟치族(족)을 닮고 精神(정신)은 고호의 魂(혼)을 쫓아 나를 通(통)한 點(점)의 世界(세계)가 線(선)으로 이은 圓(원)의 世界(세계)로 될 때까지 ‘하겡’을 웅켜 잡으렵니다. 허나 지금은 ‘앙-카’ 信號(신호)도 울리지 않은 不安(불안)의 狀態(상태)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廢址周邊(폐지주변)-.

‘장충공원의 벤취는 비어있겠지? 못다한 릴케의 이야기를 마자 해야잖아?’

 

광대뼈가 시리도록 긴 시간이 흘렀다. 복도의 불빛이 흐릿하게 스미는 대기실에 들어서기는 새벽 한시가 가까워서였다. 숙직원 한명이 회전의자에 묻혀 침을 흘리며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응급실은 이곳에서 다섯 科(과)를 지난 현관복도좌편에 위치해있다.

소희(昭姬(소희))의 아금니 가는 소리가 살갗 전체를 더듬으며 찬전을 심고밀물져 나갔다. 비비꼬이며 오그라글던 허리뼈 부딪는 소리. 터질듯한 분노에 찬 비명.

소의의 안전여부가 무겁게 눌려든다.

‘어떻게해! 미친짓인걸.’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뿜는 나 자신에게 새삼스리 놀랐다. 소희의 시계를 들고 있었다. 숙직원은 연신 하품을 했다. 회중시계의 분침은 한시를 만드느라 고역을 격고 있었다. 보증금 쪼로시계들을 마꼈다. 팔목의 시계를 풀 때 비참하도록 떨리는 손을 나는 분명히 의식했다. 숙직원은 불을 켜지 않고 복도에서 스며드는 빛을 이용하여 습관적으로 빨리 펜을 놀렸다. 나는 불을 켜지않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질문도 극히 짧고 간단했다. 나보다 숙직원이 지친 것 같아서 그를 속으로 동정했다. 기지개를 켜며 그는 입을 열었다.

‘부인인가요?-애인인가요?’

나는 멋척게 피식 웃었다.

‘어째튼 수고하십니다. 아-졸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격려였고 신중을 기한 말이라고 여겼다. 나는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아울러 잘되기를 바래야 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갈증이 심해졌기 때문에 겨를이 없었다. 누구에겐가 빌어야 될 것도 같았지만 차라리 복잡할 것 같았다. 소희는 모르지만 나는 나를 의탁시킬 대상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소희의 지장이 찍혀진 옆에 나는 도장을 눌렀다. 까운은 입었으나 캪은 쓰지 않은 간호원이 그 용지를 가져왔다.

그는 굽높은 싼다루 종류의 실내화를 신고 있었지만 눈으론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수술 중 사망을 하더라도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글이 또렷하게 인쇄되어있었다. 앞에선 흰 까운의 간호원이 점점 확대되어갔다.

소희는 이미 죽이고 나마저 죽이려고 달겨드는 듯한 야릇한 착각이 번복되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려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소희가 이 글을 읽고 지장을 눌렀을까? 정말 소희의 지장일까? 간호원이 간사한 여우의 형상으로 일그러져 보이다간 점차 바로 보였다. 그의 닫혀진 입술은 글자만큼이나 윤곽이 확실한게 분홍빛이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숙직원이 교대한 것만 달랐을 뿐이다. 나는 종이 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꼭 누른다음 정중하게 내밀며 마을 걸어보았다.

“수술은 언제쯤이요?”

“이 서류만 확인되면 곧 시작돼요.”

“담당 의사는 박사요?”

나의 목소리는 떨리는 속에 물기가 묻어있음이 틀림없었다. 간호원은 가늘게 웃음을 피우며

“산부인과 과장예요. 물론 박사죠.”

흔들리는 문틈으로 몰려드는 싸늘한 바람이 안면을 휩쌌다. 인조대리석 복도를 때리는 뒷굽의 차겁고 신경질적인 소리가 차츰 멀릴 사라져 갔다. 나는 의자에 몸을 구부리며 담배를 빼어 물었다.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뿜어내면서 너무나 허약한 나의 영상을 보았다. 째기라도 할 듯이 난폭한 음향 속에 이토록 비참해져야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이럴가? 잔인하도록 용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눈앞이 흐릿해 오며 소희의 애타발버둥하는 모습이 비명과 섞여 엉켜들었다. 시간은 한시를 넘어 三(삼)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안정하기 위해 계속 담배를 피웠다. 담배가 꽁초로 다되었을 때 대기실을 나왔다. 나는 몇 걸음을 옮기고 나선 발을 모두고 섰다. 담배를 발로부벼껐다. 하이얀 까운을 입은 간호원 세명과 의사같이 보이는 남자 두명이 나에게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건 의식할 수 없을 만큼 느린 움직임이었다. 두명 용사의 장송곡없는 초라한 장사행렬로 오인되었다. 그들에 의해서 이동식 침대가 밀리워졌다. 침대 한끝은 부축한 남자는 키가 작았으며 앞만 보며 걸어오는 다른 남자는 키가 큰 편이었고, 얼굴에 살이 두툼해보였다. 어딘지 마음에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 누구하나에게 마음을 마낄 수 없이 초조하고 불안한채 공중에 떠있었다. 복도의 공기는 꽁꽁 얼어있듯 차거웠다. 천정에 달린 원형 전등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그건 피로한 나의 눈 때문인지도 모른다. 科(과)를 표시한 문 옆마다 놓여진 사이사이가 뜬 기다란 나무의자는 몹시 흉측하게 시야를 점하여왔다. 그들은 차츰 가까이 닥아왔다. 그들이 나와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순간 순간마다 급한 속도로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왔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응급치료실 문이 흔들리던 것을 흥미있게 보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소희는 송ㅈ아이구나 싶게 만 듯이 누워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아우성은 못하더라도 비명까지 잃고 죽은 듯 누워있는 소희가 깨물고 싶도록 애처럽고 불쌍했다.

나약한 여자인 소희에겐 너무나 잔악한 형벌이었다. 너무나 지독한 생활의 피해자가 된 소희였다. 고통을 참느라 깨물려 닫힌 입술은 움푹 파인 볼과 함께 핏기 하나 없었다. 물빛에 그림자 낀 얼굴은 그들의 걸음에 따라 이상하리 만큼 변해갔다. 그들의 걸음은 내 앞에 와선 한층 느려졌다. 나는 가만히 서만 있었다.

‘지금 수술실로 가요. 곧 시작해요.’

조금전에 보았던 간호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차라리-정말 그대로 두어 주시오. 가련하고 불행한 소희에게 멍든 칼집을 내지말고. 나에게…. 정말….’

그들은 모두 白衣(백의)차림이었고 캪은 쓰지 않았었다. 하나같이 무표정해 보였다.

‘몇시간이나 걸리나요?’

나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말했다.

‘한 세시간 걸릴 겁니다.’

몸집 큰 의사였다.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침대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눈동자는 탄력성을 잃고 있었으며 그렇게 까맣던 검은 자는 윤기를 버리고 퇴색하여 회색으로 보였다.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짓느라 애쓰고 있었다. 내가 먼저 달겨들어 키쓰는 못하지만 웃어라도 주어야 될 것이었지만 그렇게도 못했다. 침대는 나의 앞에 완전히 멈춰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는지 적절한 말도 행동도 찾지 못했다. 그녀는 가만가만 손을 움직이려했다. 간호원이 부축하여 주었다. 파리한 왼손에는 그녀가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성모상이 달린 묵주가 꼭 쥐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시울엔 눈물이 고였다간 옆볼로 주루루 흘려 내리곤 했다. 온 얼굴이 싸늘해져왔고 기분이 몹시 나뻐짐을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옆에는 규석이가 숨을 헐떡이며 담요를 안고서 있었다. 그녀는 무어라 말을 하며 손을 내밀어 묵주를 주려고 했다. 닥치는 통증을 잇빨을 갈며 참느라 애썼다.

‘여-보. 배고-프죠? 무얼-좀-좀……. 나는-.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애-.’

그녀의 목소리는 주인잃은 거미줄과 흡사히 약하고 허허롭게 번졌다. 나는 무겁게 서서 고개만 좌우로 저었다.

‘여-보. 이걸-받아요. 죽기는 싫어. 여보- 나-나- 죽기싫여-싫여-.’

나는 그녀의 손에서 묵주를 받아들면서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나의 반대편으로 힘겨웁게 돌렸다. 침대는 점차로 멀어갔다. 나 자신 너무나 몰인정한 태도를 보인 것 같았지만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값싼 연극같이만 생각되는 행동을 차마 할 수 없었으며 결코 하기가 싫었다. 그건 책임질 수 없는 죄의식이 내심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사방은 정적의 샘을 파고 복도의 공기는 싸늘했다.

나는 묵주가 손에서 떨어지는 것도 몰랐으며 규석이만 수술실 앞에까지 따라갔다. 눈은 감지도 않았는데 모든 것은 시야에서 빠져나가듯 멀어져 사라졌다.

‘나를 변명하기 전에 소흰-소희는 무슨 죄가 있어 응? 대답해-어서. 태어났기에 살아보자고 했던 것이 되었을가? 괴롭다는 인연이 되었을까? 소흰 왜 들어갔어? 다 끝났단 말야. 나혼자 바램을 내세울 수 있어? 어떻게 나 혼자서 말야. 소희-.’

목이 아프도록 메어왔고 눈앞은 캄캄한 어둠이 겹싸였으며 멀리론 희미한 소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 ×

‘여-보오. 오늘 늦어. 친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갈게요. 나-좀 취했어요. 아-이 화났어요? 아니라구? 그럼-연탄갈 것 잊지 말고요. 으-음.’

다과점에서 나왔을 때는 로타리를 향해 내시가 질주했다. 냉기를 실은 바람이 따겁게 귓전을 스쳤다. 얼마 걷지않아 통행금지 예비싸이렌이 끈길 듯 감감히 울려왔다. P고등학교 가파른 언덕을 넘을땐 숨을 곤두세워야했다. 통나무에 달린 전등 불빛에 집을 알아보았을 때는 또 한번 싸이렌이 먼 어둠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좁고 울퉁불퉁한 길은 침침한 어둠의 꼬리를 도사렸다. 집마다 버린 설걷이 물이 좁은 길위에 얼어 붙어 미끄럼이 더했다. 얼음이 얼지 않아도 경사가 급한 山(산)동네 골목은 밑창 달은 구두로 오르기엔 어렵게 피로가 몰렸다. 판자문을 열었다. 쇠통이 차거웠다. 방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골목에 둔채 방에 쓸어지듯 상체를 부렸다. 방안은 싸늘한 냉기가 휘돌았다. 언제까지고 이대로 누워있었으면 했다. 발이 시려왔고 전신에 물창 튀듯 오한이 끼쳤다.

외풍이 촛불이 크게 너풀댔다. 까만 슈미즈를 물끄럼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웬지 쓸쓸했을 뿐 별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과점 점원의 파리하지만 조용한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점원은 말이 적었으며 유리창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나이는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가슴은 커보였고 탄력있게 느껴졌다. 소희의 지친 듯한 어조에 취기를 느끼며 수화기를 놓았을 때 점원은 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상체를 굽히며 의자를 빠져 돌아나올대 언뜻 보인 눈동자며 얼굴 표정이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울음이 터질듯한 입언저리며 등점의 빛이 역력하던 물끼젖은 긴속눈섭에 싸인 눈동자가 더욱 그랬다. ‘안녕히가세요’하던 인사말은 기계적인 얼빠진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서 짜부러드는 나를 저주스럽게 보아야만 했었다. 점원이 바라보는 유리창 밖의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불충분한 조건과 사소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나는 무직상태에 있는 나와 직업을 가진 소희와의 사이에 누구가 더 고생을 하는지 견줄 수가 없다. 오늘과 같이 전화로라도 못들어 오겠다고 알리는 밤이면 그녀가 더없이 측은해 지는 거이다. 그녀가 없어 슈미즈를 깔고 자야하는 밤이면 허이연 나의 허상을 무감각하게 바라만보아야 되는 것이다. 그녀도 어딘가 방에서 나와 꼭같은 삶일 거라고 믿고 또 맏어주고 싶을 뿐이다. 허짐나 질투나 의심에 앞서 입속 아랫입술은 건건한 액을 흘려야된다. 속입술을 깨무는 행동은 생활을 위한 고행의 한방법일 뿐이다. 바람이 봅시 불었다. 촛불이 흘러내리다 굳어지고 또 흘러내리고 s했다. 보드라운 소희의 검은 슈미즈를 요위에 깔고 업드린채 나는 잠이 곤하게 들었다.

“여-보. 여보. 일어나요 어서-.”

잠이 깼을때는 커틴에 햇볕이 듬뿍 묻어 따스했다. 소희의 주장으로 해달은 커틴이었다. 아무리 무허가 판자집에 살더라도 방만은 깨끗이 해놓고 쓰자는 그녀의 말이었다. 무늬도 싫지는 않았다. 둥지에 세 마리의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암놈이 먹이를 주려고 한다. 수놈은 가지에 앉아 새기들과 암놈을 내려다보고있는 따사한 무늬였다. 거기에 햇볕이 물들어 채색 잘도니 한폭의 그림으로 방을 치장하고 있었다.

“왜 문도 잠그지 않고-.”

“음-”

“어제밤 추웠죠?”

“뭐-별로. 오는데 춥지?”

“좀 쌀쌀해요. 어제 화났었죠?”

나는 담배를 빼어물었다. 파고다 한 대가 남아있을뿐이었다.

“아-니. 그런 일 화가나서 어떡해요?”

나는 이불을 처들어 주었다. 온기가 체온을 섞어 기분나쁘지 않게 풍겼다.

“자- 들어와 어서-.”

소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은 몹시 죄스럽게 변해갔다.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외면했다.

“몹씨도 손이 차군. 왜그래? 갑자기.”

“그러시지 말래두. 또 저것을…….”

그녀는 내가 깔고 있는 슈미즈를 내려다 보며 한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말에는 물기가 젖어있는 듯 싶었다. 와락 끌어안았다. 냉기가 풍겼다.

쓸어안으며 이마에 입술을 가져갔다. 싱싱한 그녀만의 체취가 번져밀렸다.

“아침준비해야죠. 요즘은 밤이 긴데.”

그녀는 뿜는 담배연기에 싸인채 나의 앞가슴 옷깃을 만지작 거리며 가만히 말했다.

“요사인 손님은 많아?”

“크리스마스도 얼마 안남고해서 많은 것 같아요.”

“다행이군.”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간

“손님이라는게 버릇들이 전혀없어요.”

“미안해- 참을 수밖엔 없지…….”

지난날 빠에서 난폭했던 나의 행동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머리를 지나갔다. 나는 담담하게 말하며 담뱃불을 켠다.

“괜한 소리. 그런 말 말아요-.”

그녀는 가벼운 미소까지 지우며 말했지만 미간에는 괴롭고 피로한 빛이 짙어보엿다. 앞이 보이지 ㅇ낳던 발길 이십리를 걸어 집을 떠나오며 울던 때가 생각났다. 어제로 생각되는 그 일은 나의 머리 속을 급한 속도로 회전하며 맴돌아 지나갔다. 나는 그 기억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소희의 가슴을 더듬어야 될 것 같았다. 허리에 았던 손을 가슴에 놓았을 때다.

“가만 뭐 가져 온게 있어요.”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넘기며 급히 일어섰다. 벼개에 턱을 고이고 업드린 채 그녀가 끄르는 보통이를 보고 있어야만 했다. 하필이면 왜 이런 때 일어나 버리나 하는 생각이치밀며 뒤늦게 쑥스럽고 얼굴이 붉어짐을 어쩔 수 없었다. 한편 불쾌감과 꿈틀거리는 무엇이 치받쳐 올랐다. 그건 남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에서부터 발작하는 타락한 기분이라 여기며 꾹 눌러야만 했다.

“여기 담배 있어요 어서 피워요.”

나는 이불 속에서 손바닥을 모두어 주먹을 만들었다. 아금니를 아프도록 물었다. 이런 부자연한 행동이 어서 빨리 습관이 아니면 버릇이 돼 버렸으며 했다. 그녀의 웃음을 따라 나도 가장 행복한 체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제 밤의 시달림 때문에 그녀는 이불을 박차고 나갔거니하고 나는 참아야 했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눈은 여니때보다 핏기가 많아 보이기까지 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컵도 몇 개 더 가져왔어요.”

(國文科(국문과)) 趙廷來(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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