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陰地(음지)<2>

趙廷來(조정래)·作(작)

吳明哲(오명철)·畵(화)

 

방구석에 놓은 손바닥만한 책상위에 컵을 포개며 그녀는 중얼대듯 말했다. 나는 기분 나쁜 걸 보이지 않게 한마디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소희의 이런 행동에 기분이 불쾌해 지는 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돌리고도 싶었다.

‘거-그 집은 망하겠는걸’

‘호오…이것도 있어요’

목이 기다란 스푼이었다. 다방에서나 쓰는 건데 하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재떨이 옆에 놓인 금관 갑에는 금관에서부터 아리랑 파고다가 몇가치씩 비좁게 끼어있었다. 어제의 파고다 갑을 구겨 팽게쳤다.

‘여보. 이거 입어봐요. 맞을 꺼야’

‘………’

파란색 바탕에 흰줄 두 개가 있는 털샤쓰였다. 두툼해 보였다.

‘놀랐죠?’

‘어디서 샀어? 꽤 비싸겠군’

‘아따가 말할께요. 또 이건 사탕. 심심할텐데 이것도 잡수세요. 목아프게 담배만 피시지 말구요’

‘고급이군’

깡통에 색색으로 사탕이 그려져 있고 영어로 무어라 쓰여있었다. 영어를 읽어 해독할 나도 아니었지만 자세히 보기도 싫었다. 허기가 일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그녀가 얌전ㅇ르 잃지는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흐뭇하고 든든하기 까지했다.

‘여기 돈. 얼마 되진 않지만’

‘음-시장하군’

나는 몸을 일으키며 잘 접어진 지폐 몇장을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집어들었다. 벼개 밑에서 저금통장을 꺼내 펼쳤다.

‘아-이. 아침 준비해야겠네요.’

‘물 길어야지?’

소희는 주섬 주섬 보퉁이를 웃묵으로 밀치고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서야했다. 공중수도 까지는 한참이지만 물을 한지게 길어야 된다.

아침을 먹기는 정오가 가까워서 였다.

소금에 담근 김치에 먹는 밥맛은 과히 좋지 못했는데 그녀가 몇 숫갈 뜨다 말아 버리는 것이 비위에 거슬렸다. 기분 나쁜걸 나타낼 수도 없었기에 혼자먹었다. 그녀가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먹었다든가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형식이 된지 이미 오래였다. 그건 고역을 겪으면서도 의식적으로 형식화 시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녀를 의심하는 것이 죄가 된다고 단정하는 것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현실적ㅇ니 사고 전부였다. 밥통의 밥을 손질하고 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샤쓰 누가 준건지 알아?”

나는 갑자기 흥미없는 권투를 구경하는 기분에 젖어 들어야 했다.

“귀찮아- 어떻든 입으면 되겠지?”

“그렇긴 해요. 자칭 무역회사 사장이래는 자가 가족관계를 묻잖아요?”

거둬둔 커틴 창밖으로 나뭇가지 흔들리는게 보였다. 양지 쪽에서 어린 애들 떠드는 소리가 소란했다. 숟갈을 놓았다.

“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니까 찾아 보겠나요?”

나는 놀라싿. 날마다 조금씩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녀는 말이 너무 많고 경솔하지 않나 싶었다.

3개월이란 날이 자못 의심스러웠다.

“여보-괜찮죠? 동생이락 한거-”

고개를 턱밑에 밀어 넣기에 갑자기 나는 대답을 해버렸다.

“응-”

“그런 작자들은 애인이나 남편이 있다면 아주 싫어해요”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며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이 들긴 했어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표시할 만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허나 두렵지는 않았다.

“처남이 될지로 모른다며 털샤쓰를 사주지 않겠어요? 호호”

그녀는 말을 이르며 밥상을 들고 나가고 있었다. 심한 현기증과 동시에 구토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방금 먹은 밥이 아닌게 분명했다. 허리를 꺾으며 벽에 몸을 부렸다. 으스러지라 아금니를 갈았다. 무릎을 곤두세우고 두 손으로 머리칼을 잡아 뜯었다. 원통하고 분했으며 가슴은 터지지 않으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잠시동안 미칠 것 같은 흥분을 억제하느라 식은 땀이 앞가슴에 흘러 내렸다. 주먹 안에는 머리칼이 무언으로 무엇인가를 증언하는 양 듬뿍 뽑혀 있었다. 머리털 속이 아프고 저리기는 얼마 후였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삼십분 가까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생각했다. 그런 말을 무엇 때문에 하는 걸까? 옛날의 소희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가? 차라리 그랬던 일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그녀는 웃으며 말하지 않았나? 나는 불필요한 오해나 아니면 우둔한 질투를 하는걸까? 그녀는 아직도 순진해서 그런 말을 나에게 알려 이해를 받으려는 것이였을까? 혹시 외롭게 보이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였을까? 여러모로 생각했지만 어딘지 한쪽 구석이 허물리는 불길한 예감은 씻을 수 없었다. 모든 걸 잊기로 했다. 퍼런 멍이 흉한 주먹을 불끈 쥐어 허공을 후려치며 모든 것을 잊으려했다. 이런 나의 행동은 비열하다기 보다는 어떤 커다란 대상에 대항하는 가장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는 언젠가 책으로 읽은 李箱(이상)과 같은 인간이 될수는 없으며 결코 그런 인간은 아니다. 그와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나에겐 단절시킬 수 없는 문명한 미래가 있으니까 말이다. 허나 너무나 가혹한 고행이다. 참는 도리밖엔 없는 것이다. 혜화동 우체국에서 오백원을 저금하고 오르락 길을 헐덕이며 올라 왔을 때는 해도 설핏했다. 금관갑에 든 아리랑을 빼어물었다. 소희를 깨워야 할시간이었다. 서서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몹시 피로해보였다. 가늘고 매끈한 콧등은 아름다움을 상하게 추하진 않았다. 예쁘고 고상한 얼굴이라 생각이 들었다. 울컥 서러움이 일어났고 죄스런 마음을 버리질 못했다.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몸을 녹히려 이불을 걷고 다리를 디밀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여태껏 보지 못한 슈미즈를 입고 있었다. 그건 접었던 주름도 완전히 구겨지지 않은 새것이었다. 보통 이에서 슈미즈를 보지 못했던 것이 불안스러웠다. 조심스레 이불을 더 추켰다. 슈미즈 앞자락 여기저기에는 누른 빛 얼룩이 말라있었다. 눈 앞이 침침하게 흐려왔다. 숨결까지 가빠지고 목이 뜨거웠다. 슈미스는 반쯤 겉혀있었기에 추켜올리기에 편했다. 그녀는 영문모르고 곤히 잠들고 있었다. 조심스레 들추다간 숨이 탁 막혔다 가슴이 꽉 막혔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돌이킬 수 없었고 전신이 겉잡을 수 없이 떨렸다. 방망이로 뒷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ㅇ낳았다. 가만히 이불을 덮어주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뒷산 돌비석 앞에서 철없는 아이를 닮아가며 머리가 아프도록 울었다. 서럽고 원통했다. 소희가 불쌍하고 가련하기도 했다.

누런 빛 얼룩. 차라리 보지 말아야했을 거라며 나를 원망하며 후회를 되풀이 했다. 바보의 생애가 그렇게도 높게 좋게만 보였다. 산에서 내령며 몇 번인가 딩굴었다. 무릅이 자구 꺾이어 발이 헛 돌았다. 사방은 어두워 있었고 바람도 거세게 휘몰아쳤다. 드문 별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별세계를 정복하는 로켓 파이롯트가 겪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그건 얼마나 혹독한 고행일까? 정복을 위한 고행. 나의 현재는 직각을 헤아리는 비탈임에 틀림없다. 햇볕은 한번도 받지 못한 썩어버린 흙으로 된 비탈길이다. 미래는 내가 아는 미래는 저렇게 먼 별들의 세계와 다를게 없을 것만 같다. 너무 심한 고행인 것이다. 방아랫목에는 밥상이 이불로 덮혀있었고 그녀는 나가고 없었다.

× × ×

“문기형-”

“어- 할아버지야?”

“뭣 하우?”

“누어 있는거야. 공부 잘 돼?”

“공부는 무슨.”

“자주 놀러 와. 영 심심해서 원”

“형수씬 나가셨오?”

“무슨 말야? 할아버지 말녕이지”

규석은 말없이 밤송이 같은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규석은 나에게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형이라 불렀다. 소희를 보곤 형수씨라 예사로 했다. 그는 무척 쾌활했다. 상대를 시험치다 실패하고 다시 공부중이었다. 규석은 가끔 들렸으며 나의 외롭고 지루한 생활의 유일한 말벗이기도 했다.

“형수씬 고되시겠군.”

“음- 담배피워.”

담배를 빼돌며

“앞으론 날씨가 추워질텐데요.”

“아직 십일워 인데-”

나는 성냥을 그어주며 대꾸했다. 몸에 밴 솜씨로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눈동자는 멈출 줄 몰랐다.

“언제 벽도 바르셨군요? 저 사진도”

“응- 집에 누어서 할게 있어야지. 그리고 소희도 해 보라는 거야.”

규석은 허탈하게 웃고 나선

“공처가 후보생이군요. 그것도…”

하고나선 맛있게 담배를 빨았다. 그는 무심코 했겠지만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가루커피를 양재기에 탔다. 물이 뜨거워 향긋한 냄새가 코 끝에 번지며 맛을 돋구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났소?”

천진하게 미소하는 양볼에는 놀라는 빛이 가늘게 섞여 번졌다.

(國文科(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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