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語(시어) 大部分(대부분)이 蕪雜(무잡)

解放後(해방후)의 詩(시)는 主體性(주체성)이 薄弱(박양)

-新羅精神(신라정신) 長點(장점)살려 現代精神貧困(현대정신빈곤)에 寄與(기여)-

 

解放後(해방후)의 우리 詩(시)가 걸어온 足跡(족적)들을 回顧(회고)해볼 때 무엇보다도 뚜렷이 느껴지는 것은 한 民族(민족)의 詩(시)로서의 主體性(주체성)의 薄弱(박약)이다.

우리가 이 겨레의 詩(시)의 主體性(주체성)을 强調(강조)한다고 하여 그것이 물론 國粹主義的(국수주의적)인 排他主義的(배타주의적)인 成分(성분)을 띠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詩(시)의 主體性(주체성)의 摸索(모색)은 언제나 世界文學(세계문학)의 一環(일환)으로서의 韓民族文學(한민족문학)이라는 意識(의식) 밑에 이루어져야할 것임은 두말할 必要(필요)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意味(의미)에서 본다고 하여서도 解放後(해방후) 지금까지 이르는 동안에 展開(전개)해 온 우리 詩(시)에 있어서 그 主體性(주체성)의 探究(탐구)와 形成(형성)이 너무나 薄弱(박약)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甚(심)히 부끄럽게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世界文學史(세계문학사)에 槪括的(개괄적)으로라도 通(통)해있는 사람들은 어떤 나라의 한동안의 詩(시)가 他國(타국)의 詩(시)의 影響(영향) 밑에 있기도 했던 것을 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 時期(시기)의 일들이고 이어서 그 被影響國(피영향국)도 마침내는 그들의 좋은 特性(특성)의 詩(시)들을 빚어냈던 것을 아울러 본다. 그러나 解放後(해방후)의 詩(시) 뿐만이 아니라 新文學的摸索後(신문학적모색후) 60年(년)의 짧지않은 歷史(역사)를 가지고도 우리나라 現代詩(현대시)는 西洋詩(서양시)의 影響(영향), 그것도 大多數(대다수) 本格的(본격적)이고 具體的(구체적)으로 잘 消化(소화)하지 못해 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民族特有(민족특유)의 좋은 特性(특성)이라는 것도 大多數(대다수) 아예 생각조차도 안해 보려하고 있다. 이 理由(이유)는 詩人個人(시인개인)들에게 있다느니 보다도 더 많이 그 環經(환경)에 있기야 있다. 日政治下(일정치하) 36年(년)을 우리는 이런 緻密(치밀)한 일이 거의 不可能(불가능)한 逆境(역경)에서 살았고 또 西洋文學(서양문학)의 影響(영향)도 거의 日本(일본)이 紹介(소개)하고 飜譯(번역)하는 限度內(한도내)에 받았고 또 解放後(해방후)에는 우리가 겪어 오고 있어 잘 아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 需給不足(수급부족)의 隘路(애로)를 거쳐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드래도 무슨 한 藝術(예술)을 새로히 始作(시작)하여 半世紀(반세기)가 넘도록 한 民族(민족)이 그 主體性(주체성)을 그 藝術(예술)에 性格化(성격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우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反省(반성)과 自覺(자각)에서 생각해 볼 때 西洋詩(서양시)의 不足(부족)한 紹介(소개)와 飜譯(번역)의 現狀(현상)도 痛嘆(통탄)할 일이지만 解放後(해방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 겨우 자리 잡아오고 있는 韓國的(한국적)인 것에 對(대)한 探究者(탐구자)들에 對(대)한 거의 無條件(무조건)한 排擊(배격)도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본다. 이 韓國的(한국적)인 것에 對(대)해서는 微力(미력)이나마 나도 겪고 있어 그 排擊(배격)의 맛을 잘 알고 있거니와 排擊者(배격자)들이 흔히 늘 드는 理由(이유) “懷古(회고)” “復古(복고)” “케케묵은 옛것” “現代(현대)의 逆行(역행)”-하는 것들도 아주 짧은 所見(소견)들이다. 한 地域(지역)이나 民族(민족)의 文學(문학)이나 다시 새로히 꽃필려면 復古的探索(복고적탐색)이란 往往(왕왕)히 있어왔던 것은 歷史(역사)에 아주 깜깜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알일이다.

“現代(현대) 現代(현대)”하고 現代(현대)는 復古(복고)와는 永遠(영원)의 원수인 것처럼 무턱대고 지껄여대는 사람들이 적지도 않은 듯하나, 참 無識(무식)한 사람들도 자 보지. 그럼, 저 西洋(서양)의 文藝復興當時(문예부흥당시)의 現代精神(현대정신)의 貧困(빈곤)을 補足(보족)하여 再出發(재출발)하기 爲(위)해 希臘羅摩(희랍라마)의 古典精神(고전정신)을 먼저 復興(부흥)하는 일이었다. 文藝復興期(문예부흥기)를 넘은 뒤의 古典主義時節(고전주의시절)에 있어서도, 獨逸(독일)은 希臘(희랍) 羅摩(라마)의 古典(고전)들을 열심히 模倣(모방)하는 史的(사적)한 時期(시기)를 거치기도 하였다. 가령 내가 하는 新羅(신라)가 요즘 盛(성)히 排擊(배격)의 對象(대상)이 되는 모양이나, 新羅精神(신라정신)의 長點(장점)을 살려 우리나라 現代精神(현대정신)의 貧困(빈곤)에 寄與(기여)할 수 있다면 할 일인 것이요, 東洋(동양)이 지금 비록 機械文明(기계문명)에는 應進(응진)해 있다 하드래도, 그 上代(상대)의 精神中(정신중)에 現代(현대)의 精神(정신)의 不足(부족)을 補(보)할게 있으면 또한 그 復古(복고)의 遺産繼承(유산계승)할 일일 따름인 것이다.

孔子(공자)는 말하였다.-‘나는 옛것을 傳(전)하기만 하고 새것을 짓지 못하고, 옛것을 믿어 옛것을 좋아하는 點(점), 저 老彭(노팽)(殷(은)의 善大夫(선대부))비슷하다.’- 論語(논어)

이렇게 復古(복고)했던 孔子(공자)이지만, 그는 孔子當時(공자당시)의 現代(현대)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現代(현대)에 까지 와서도 한 숨은 現代人(현대인)의 資格(자격)을 으젓이 保有(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 ‘에즈라‧파운드’같은 사람들은 孔子(공자)에만 열심하고 있다고 하지않나? 보라고. 그러니, 요새도 西洋(서양)까지 건너가서 現代(현대)를 衝動(충동)하고 있지 않나.

그 다음에 우리가 解放後(해방후)의 詩(시)를 두고 차분히 反省(반성)해야 할 일은, 역시 그 쓰인 말의 蕉雜(초잡)한 點(점)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新開化後(신개화후)에 日本人(일본인)이 濫造(남조)한 日本的新文化語(일본적신문화어)인 漢字語(한자어)로 많이 이루어져 왔는데, 이것의 克服(극복)이야마로 참 銘心(명심)할 일이다. 가령 例(예)를 들어서 ‘存在(존재)’니 ‘浪漫(낭만)’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그것인데, 이런 것들은 日本(일본)의 新文化(신문화)인 明治維新(명치유신) 뒤의 日本人(일본인)들이 主(주)로 西洋(서양)의 學問(학문)을 紹介(소개)하면서 誠意(성의)와 努力(노력)을 過(과)히 많이 쓰지않고 卓上(탁상)에서 빚은 말들로서, 日本(일본) 그곳에서도 實生活上(실생활상)의 言語(언어)들과는 拒離(거리)를 갖는 것으로, 日本生人(일본생인)들도 제나라 말에 잘 길든 사람들은 詩(시)에 잘 쓰지 않는 것을 알아야한다. 日本語(일본어)는 우리말 보다도 더 漢字語勢(한자어세)를 中心(중심)으로 해왔고, 지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의 詩(시)에도 漢字語(한자어)를 쓰기는 實生活(실생활)에 오래 쩔어온 것 아니면 有能(유능)한 詩人(시인)들은 잘쓰지 않는 걸 알아야 한다.

더구나 이런 日本製(일본제)의 卓上的(탁상적) 新文化語(신문화어) 속에는 우리가 그대로 써서는 아주 안맞는 것도 없지 않으니, 가령, 우리가 많이 써먹어버리고만 말 ‘浪漫(낭만)’이란 말은 日本語音(일본어음)으로는 ‘로만’이기 때문에 Romanticism의 Roman의 音(음)에 맞추기 위해 採擇(채택)되어 使用(사용)되어온 말이다. 그러나, 써먹어 오기는 해버리고 말았지만 어디 우리 音(음)으로야 ‘낭만’을 가지고 Roman에 맞출 수가 있어야지요.

上記(상기)한 點(점)들을 잘 考慮(고려) 反省(반성)해서, 이것들을 위선 音數(음수)가 적어, 쓰는게 便利(편리)하고 容易(용이)하다하여 安易(안이)하게 써버릇하는데만 머물지말고 우리의 日常生活語(일상생활어)의 世界(세계)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詩(시)의 말이란 언제나 實生活語(실생활어)에 中心勢力(중심세력)을 根據(근거)해 選擇(선택)해야 하는 것이니, 特殊文化圈(특수문화권)에서 말고 大多數民族(대다수민족)의 日常生活語(일상생활어)의 世界(세계)로 돌아와서 거기서 골르고 配置(배치)해가야 그게 바로 이 나라의 生命(생명)의 本流(본류)와 一致(일치)하는 길이다.

(글쓴이‧文理大副敎授(문리대부교수)) 徐廷柱(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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