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淵(의연)과 佛紀(불기)

高句麗(고구려) 平原王(평원왕) 때 高僧(고승)으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佛敎(불교) 年代(연대)를 中國(중국)으로부터 傳(전)한 사람에 義淵(의연)이라는 분이 있다.

義淵(의연)에 대한 俗世(속세)의 因緣(인연)과 出家(출가)의 動機(동기) 等(등)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海東高僧傳(해동고승전)에서 傳(전)하는 것을 보면 持戒(지계)의 行(행)이 놀랍고 慧解(혜해)가 깊고 밝았으며 見聞(견문)도 해박했을 뿐 아니라 兼(겸)해서 諸子百家(제자백가)의 學(학)에까지 精通(정통)하여 白衣(백의)들의 崇敬(숭경)이 높았다 한다.

그리고 항상 傳法(전법)에 뜻을 두어 佛敎(불교)를 널리 펴서 많은 사람들을 건지고자 하는 願(원)을 세우고 實踐(실천)한 분이라 하였다.

平原王(평원왕) 18年(년)에 佛敎(불교)를 돈독하게 信奉(신봉)하 하든 大亟相(대극상) 王高德(왕고덕)이라는 사람의 請(청)에 依(의)해서 義淵(의연)은 中國(중국)의 업이라는 곳에 가서 定國寺(정국사) 高僧(고승) 法上和尙(법상화상)을 만나고 佛敎(불교)의 歷史(역사)와 敎理(교리)에 關(관)한 것을 물었다.

이때 法上(법상)은 義淵(의연)의 물음에 따라 佛敎(불교)의 始末緣由(시말연유)와 印度(인도)에서 中國(중국)으로 傳(전)해진 年代(연대) 等(등)에 對(대)해서 法本內傳(법본내전)과 周書異紀(주서이기) 等(등)을 引用(인용)해서 佛誕(불탄) 年代(연대)를 周(주) 昭王(소왕) 甲寅(갑인) 四月(4월) 八日(8일)이라 하고 入滅(입멸)을 周(주) 積王(적왕) 壬申(임신) 二月(2월) 十五日(15일)이라 하며 지금 쓰여지고 있는 이른바 二千九百年(2900년) 說(설)을 일러 주었다는 것이다.

이때 義淵(의연)은 批判(비판)의 餘地(여지)없이 無條件(무조건)으로 이 學說(학설)을 우리나라에 傳(전)해서 지금까지 傳(전)해져 온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義淵(의연)은 우리나라에 佛紀(불기)를 初傳(초전)한 분으로 깊은 意義(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佛敎史學(불교사학)의 專攻(전공)이 아닌 法上(법상)이 引用(인용)했다는 周書異紀(주서이기)에 대해서 어느 程度(정도) 믿어야할지 問題(문제)인 것이다.

이와 關聯(관련)해서 現在(현재)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衆星點記(중성점기)를 基本(기본)으로 했다는 2千(천) 5百年(백년) 說(설)을 쓰고 있다. 이 亦是(역시) 우리들이 理解(이해)가 갈 수 있는 確實(확실)한 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二天五百年(2500년) 說(설)을 度外視(도외시)하고 傳統(전통)에만 억매어 二千九百年(2900년) 說(설)을 固守(고수)한다는 것도 적은 問題(문제)가 아니다.

高麗(고려) 高宗(고종) 때 覺訓(각훈)이 지은 海東高僧傳(해동고승전)에 紹介(소개)된 義淵(의연) 傳末尾(전말미)에 義淵(의연)이 傳來(전래)한 佛紀(불기)에 對(대)해서 異說(이설)이 있다는 點(점)으로 미루어 이미 高麗(고려) 때부터 所謂(소위) 二千九百年(2900년) 說(설)에 對(대)한 反對(반대)가 있었던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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