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人間(인간)은 구하고, 사랑하고, 바라고 貪(탐)내 마지않는 存在(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쉽게 우리가 구하고, 사랑하고, 願(원)하고, 바라고, 貪(탐)내는 그대로 滿足(만족)할 수는 없다.

설사 一時的(일시적)인 滿足(만족)과 快感(쾌감)은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永遠(영원)한 것은 못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의 괴로움을 느끼고 滿足(만족)의 永遠性(영원성)을 希求(희구)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구하면 구할수록 괴로움은 正比例(정비레)로 더 甚(심)해지는 법이다. 이것은 人生苦(인생고)라하며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라 울며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佛敎(불교)는 이 人生苦(인생고)를 永遠(영원)히 없애고 永遠(영원)한 樂(낙)을 얻기 위해서 일어났으며 이 人生苦(인생고)를 없애고 樂(낙)을 얻는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 ‘길’은 바른 生活(생활)에 依(의)해서만이 이루어 진다하였다.

여기서 바른 生活(생활)이라는 것은 苦(고), 集(집), 滅(멸), 道(도) 四諦(사체)의 原理(원리)와 ‘無我(무아)’의 眞理(진리)를 自覺(자각)해 바른 見解(견해) 바른 思想(사상)에 의해서 生活(생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바른 生活(생활)은 人間(인간)이 의례히 닦고 行(행)해야할 目的(목적)인 까닭에 ‘道(도)’라 하였으며 宗敎(종교)의 究極目的(구극목적)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 해서 正道(정도)라고 하며 또한 人間(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解脫(해탈)을 얻는 길이라는 意味(의미)에서 聖道(성도)라 부르기도 한다.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데는 먼저 苦(고), 集(집), 滅(멸), 道(도) 四諦(사체)의 原理(원리)를 깨닫고 바른 見解(견해)와 思想(사상)과 智慧(지혜)로 현실의 그릇됨을 알고 涅槃(열반)의 眞實境(진실경)에 이르고자 努力(노력)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것을 正見(정견)이라한다. 이 正見(정견)의 目的(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항상 생각을 바르게 하고, 言語(언어)를 바르게하고, 行動(행동)을 바르게해서 바른 方法(방법)으로 살아야하며 바른 努力(노력)으로 正見(정견)이라는 目的(목적)을 항상 마음 속에 새겨 두고 잊지말고 바른 禪定(선정)을 닦아서 宗敎生活(종교생활)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른 생활이 完全(완전)히 이루어질 때에는 우리 人間(인간)은 어두운 고통의 현실에서도 밝고 즐거운 解脫(해탈)의 光明世界(광명세계)에서 眞正(진정)한 自由(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고통을 여히기 爲(위)해서 욕심과 애착과 바라는 것을 버리고 智慧(지혜)를 닦고 남을 돕고 바른 생활에 精進(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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