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月(월) 21日(일) 佛敎界(불교계)와 學界(학계)의 重陳(중진)들을 委員(위원)으로 總網羅(총망라)한 東國譯經院(동국역경원)이 本校(본교)에서 그 開院式(개원식)을 올리고 于先(우선) 海印寺(해인사)에 있는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을 三十年(30년) 計劃(계획) 下(하)에 純粹(순수)한 우리말로 飜譯(번역)하는 거창한 作業(작업)의 ‘테-프’를 끊었다.

생각해보면 ‘간디스’ 江邊(강변)에서 莊嚴(장엄)하게도 울려펴지던 ‘샤아캬무니’의 목소리가 이 땅에 메아리친지 어언 千六百年(1600년)을 헤아리게 된다. 그러나 그 福音(복음)은 우리가 우리의 文字(문자)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漢字(한자)로 表記(표기)된 체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文字(문자)가 創案(창안)된지는 五百餘年(500여년)이 지나갔지만 제대로 우리 民族(민족)의 文字(문자)로 行勢(행세)되기는 겨우 半世紀(반세기) … 그 半世紀(반세기)에 벌써 漢字經典(한자경전)이 한글化(화)되었어야 했을 터인데 …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 晩時之歎(만시지탄)은 있으나마 이 事業(사업)을 爲(위)해 本校(본교)에 譯經院(역경원)이 設置(설치)되고 그 發足(발족)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갑고 흐뭇한 이링 아닐 수 없다.

法華經(법화경)에 보면 五種法師(오종법사)라 하여 書寫法師(서사법사), 受持法師(수지법사), 讀經法師(독경법사), 誦經法師(송경법사), 解說法師(해설법사)의 다섯을 들고 있다. 寫書(사서)란 곧 寫經(사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印刷術(인쇄술)이 發達(발달)하지 못하였을 때에 있어서는 寫經(사경)의 意義(의의)가 臺端(대단)히 컸었고 또 印刷術(인쇄술)이 發達(발달)한 後(후)에 있어서도 國泰民安(국태민안)이나 祖上(조상)의 冥福(명복)을 비는 功德的(공덕적)인 見地(견지)에서 如前(여전)히 盛行(성행)되었음을 우리는 우리의 歷史(역사)에서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近代(근대)에 있어서는 寫經(사경)에 앞서 譯經(역경) - 卽(즉) 어려운 漢字經典(한자경전) 또는 梵語(범어) 巴利語(파리어), 西藏語(서장어) 等(등) 經典(경전)을 누구나 알기 쉬운 한글 經典(경전)으로 옮기는 일이 絶對的(절대적)으로 必要(필요)한 것임은 누구나 느끼고 있는 佛敎(불교) 現代化(현대화)의 첫걸음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東國譯經院(동국역경원)의 譯經委員(역경위원) 諸位(제위)를 現代的(현대적)인 書寫法師(서사법사)로 우러러받드는 바이며 이 聖業(성업)이 참되고 줄기차게 斷續(단속)되어 보람있고 알찬 結實(결실)을 맺어 民族文化(민족문화)의 創造(창조)에 크게 寄與(기여)할 것을 祝福(축복)하여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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