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020.7.1 13:37

동대신문

상단여백
HOME 여론/칼럼 사설
[社說(사설)] 時急(시급)한 眞理探究(진리탐구)에의 邁進(매진)

 

子曰(자왈)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설호)아, 이는 論語(논어)의 첫귀절이다. 정녕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 일인지 모르겠다. 몸부림치도록 아깝게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괴로움과 비지땀 속에서 허덕이는 수없이 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새로운 決心(결심)과 奮發(분발)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하겠다. 의례히 放學(방학)이 끝나면 자칫 解弛(해이)된 마음을 지닌 채 開學(개학) 初(초)를 어물어물 넘기는 버릇이 남아있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惡習(악습)은 하루 속히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더욱이 지난 여름은 너무나 오래도록 정말 지루하리만큼 오래도록 긴 歲月(세월)을 쉬어왔다. 그야 放學(방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몽땅 노는 데에만 虛費(허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배움의 길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너무나 貴重(귀중)하고 안타까운 時間(시간)이었기에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제 앞가림은 제가 해야지 決(결)코 다른 그 누구가 해줄 것도 아니요 또 해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받는 것이 아무리 달갑지 않은 傷處(상처)뿐인 파산이라고 하여도 祖國(조국)을 등지고 民族反逆者(민족반역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引受(인수)해야 할 우리들의 파산인 바에야 가꾸고 매만지고 살찌고 향기롭게 할 피나는 準備(준비) 切實(절실)히 要緊(요긴)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도 그 악스럽게 억찌를 부리던 무더위도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나도는 가을이 눈 앞에 닥쳐왔다.

초가집 지붕 위에 빨간 공추가 情熱(정열)을 發散(발산)하듯이 우리들의 피끓는 젊은 情熱(정열)을 眞理探究(진리탐구)에로 發散(발산)시켜야 할 季節(계절)이 닥쳐왔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듯이 謙虛(겸허)한 姿勢(자세)로 우리들의 本分(본분)을 다할 우리들의 季節(계절)은 하늘마저 높고 푸르고 맑기만 하다.

學校當局(학교당국)에서는 보다 合理的(합리적)인 學校運營(학교운영)과 進取的(진취적)인 學問(학문) 開拓(개척)에 對備(대비)해서 一部(일부) 人事(인사) 移動(이동)과 機構改編(기구개편)을 斷行(단행)했다. 한편 第(제) 二(이) 體育場(체육장)자리에 新築(신축)되는 校舍(교사) 建築場(건축장)의 우렁찬 ‘함마-’ 소리는 뻗어가는 眞理(진리)의 搖籃地(요람지)를 메아리쳐 주고 있다.

이 모두가 다 우리 學生(학생)들을 위한 試圖(시도)요 움직임이요 至誠(지성)이요 實踐(실천)이 아니겠는가. 이 숨가쁜 計劃(계획)과 實踐(실천)을 받아들일 準備(준비)는 充分(충분)히 갖추어졌는가. 우리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의 周圍(주위)를 살펴보자.

自覺(자각)은 決意(결의)를 낳고 決意(결의)는 實踐(실천)을 낳고 實踐(실천)은 結果(결과)를 가져오는 것. 오늘의 自覺(자각)과 決意(결의)와 그리고 實踐(실천)이 없이는 어찌 바람직한 來日(내일)의 結果(결과)를 期待(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옛사람은 가을을 가리켜 燈火可親(등화가친)의 季節(계절)이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깜박거리는 등잔불도 없어 반딧로도 工夫(공부)를 하고 大成(대성)했다는 말도 있다. 거기에 比(비)하면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은 얼마나 便利(편리)하고도 祝福(축복)받은 사람들인가. 不夜城(불야성)을 이루는 電氣(전기)와 螢光燈(형광등)이 있지 아니한가.

마음만 있으면 정말 마음만 있으면 가없이 넓은 學海(학해)를 涉獵(섭렵)하기 위해서 무수한 冊(책)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고 한없이 많은 外國(외국)에로의 길도 열려있는 것이다.

世上萬事(세상만사)가 ‘짬푸’란 있을 수 없다. 마땅히 밟아야 할 過程(과정)을 빨리 밟느냐 더디게 밟느냐 하는 差異(차이)는 있을망정 애당초 밟지도 않고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이다. 設令(설령) 그 건너뛰는 것이 可能(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永永(영영) 도리킬 수 없는 不幸(불행)만을 招來(초래)할 뿐이다. 튼튼한 基礎工事(기초공사)가 없는 建物(건물)은 砂上樓閣(사상누각)과 같이 무너지고 말듯이 確固(확고)한 바탕이 없는 學問(학문)이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偏見(편견)과 雜物(잡물)을 造成(조성)할 뿐이다.

말없이 차근차근 꾸준하게 쌓아올린 깊이와 무게있는 實力(실력)이야 말로 個人(개인)과 民族(민족)과 世界(세계)와 그리고 歷史(역사)를 빛낼 수 있는 原動力(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祖上(조상)이 물려준 슬픈 遺産(유산)이 있다. 冷(냉)혹한 現實(현실)이 가져다 준 피어린 傷處(상처)가 있다 끝도 없이 아득-하게 뻗혀진 우리들의 갈 길이 있다. 이 모두가 다함께 時急(시급)한 眞理探究(진리탐구)에의 邁進(매진)을 切迫(절박)하게 要望(요망)하고 있다.

동대신문  dgupress@dongguk.edu

<저작권자 © 동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