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폭력”-이에 對(대)한 嫌惡(혐오)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거리를 自由奔放(자유분방)하게 暴走(폭주)하는 각종 車輛(차량)의 神經質的(신경질적)인 소리를 비롯하여 工場(공장)의 機械(기계)소리들. 이것들은 가뜩이나 피로한 市民(시민)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물론 車輛(차랑)이나 工場(공장)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소리가 부득이한 것임을 모르는건 아니다. 그러나 그 善意(선의)의 騷音(소음)이 無意識中(무의식중) 끼얹는 被害(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閑暇(한가)하게 집에서 讀書(독서)라도 할라치면 여기도 소리의 暴力(폭력)으로부터는 無防備地帶(무방비지대)임을 절감하게 한다. 門(문)밖을 지나는 行商(행상)들의 悲鳴(비명)에 가까운 외침이며 라디오의 發狂(발광). 골목에서 법석을 피우는 어린 것들의 아우성. 이렇게 되면 冊(책)을 들여다 보는 눈은 저절로 찌푸려지고 만다. ▲市街(시가)를 거닐다 보면 音響ㅇ制區域(음향ㅇ제구역)이란 標識(표지)를 보게 된다. 특히 창경원 動物園(동물원)담장을 끼고 도는 路邊(노변)에는 여러곳에 첨부되어 있다. 車輛(차량)의 ㅇ笛(ㅇ적)등으로 動物(동물)이 그 목숨을 견디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動物(동물)이 죽어나는 騷音(소음)이라면 人間(인간)인들 別道理(별도리)가 없을 것 같다. ▲대개의 事務室(사무실)이나 복도를 보면 ‘靜肅(정숙)’ ‘조용히’등의 標識(표지)가 붙어있다. 騷音(소음)속에선 事務處理上(사무처리상)의 能率(능률)이 오를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이런 구호를 喚起(환기)시키는 것이다. 大學(대학)의 講義室(강의실) 안팍을 돌아보면 저절로 不評(불평)이 안나올 수 없다. 講義室(강의실)에선 講義(강의)가 한참인데, 복도에선 소리를 높여 雜談(잡담)에 熱中(열중)하는 學生(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雜談(잡담)보다 健全(건전)한 討論(토론)을 권장하는 것이 우리의 立場(입장)이지만. 討論(토론)도 校庭(교정)의 벤취에서나 벌어지는 것이 제격이 아닐까. ▲소리의 暴力(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진지한 學究生活(학구생활)을 보호할 수는 없을가. 講義室(강의실)복도에서 ‘소리의 暴力(폭렦)이 橫行(횡행)하는 동안 그 被害(피해)는 우리 스스로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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