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書週間(독서주간)은 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 美國(미국)의 어느 ‘보이·스카우트’도서관자이던 ‘푸랭크린·케이메수’가 시작했다. 처음의 목적은 청소년들에게 독서를 장려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 地方(지방)은 물론 全美國(전미국)의 행사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範圍(범위)도 넓혀져서 어른들의 讀書熱(독서열)과 그 습관을 길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一九二七(일구이칠)년 현 國立圖書館(국립도서관)의 前身(전신)이던 소위 조선총독부도서관이 주동이 되어 서울시내 각 도서관과 손을 잡고 시작한 것이 讀書週間(독서주간)의 효시이다. 물론 해방 후에도 이 행사는 실시되어오다가 6·25로 수년간 중단되었었다. 그후 一九五六(일구오육)년 韓國圖書館協會(한국도서관협회)의 발족과 함께 年例(연례)행사로 실시되어 오고 있다. ▲讀書週間(독서주간)의 意義(의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根本的(근본적)인 뜻은 數千年(수천년)동안 닦아온 知識(지식)과 技術(기술), 思想(사상), 경험 등을 적어놓은 서적을 습관적으로 읽도록 하자는데 있다. 한편 국민전체에게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良書(양서)의 활발한 출판으로 독서 意慾(의욕)을 북돋는 장겨기간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다. ▲흔히 책이란 人類(인류)의 頭腦(두뇌)라고도 한다. 어떤 이는 인류문화사의 收支決算表(수지결산표)라고도 했다. 그것은 책 속에 역사는 물론 人倫道德(인륜도덕)으로의 길과 文化發展(문화발전)의 모든 資料(자료)가 寶庫(보고)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매개없이 오늘의 文化(문화)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책이 다 有用(유용)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 活用(활용)한 것은 아니다. 읽어서 活用(활용)하는 곳에 그 生命(생명)이 있는 까닭에서 이다. ▲人類社會(인류사회)에 빛을 남긴 사람들의 傳記(전기)를 읽으면서 스스로의 雄飛(웅비)를 꿈꾼다는 것은 얼마나 벅찬일인가. 數千年前(수천년전)의 성현들의 말씀을 읽으면서, 혹은 大文豪(대문호)들의 作品(작품)을 한 장씩 넘기면서, 어느듯 우리의 精神(정신)은 살이 찌고 풍요하여 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讀書(독서)는 마음의 糧食(양식)이라해왔다. 敗北者(패배자)에겐 좋은 반려가 되는 良書(양서)들-. 여기에도 현명한 선택이 있어야 한다. 惡書(악서)가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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