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효스님으로 추앙받는 히지리 잇펜스님, 저자거리 속 성자로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 구현

지은이 : 다카노 오사무(高野修)
펴낸곳 : 이와타(岩田)서원

스님을 생각하면 행복해 지는 그런 스님이 있다. 일본 중세의 잇펜(一遍, 1239~1289)스님 역시 나를 행복케 하는 분 중의 하나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감히 교만을 떠는 것도 내가 잇펜스님을 조금이나마 알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그래,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자. “잇펜스님은 원효스님의 후신(後身)이다!” 원효스님이 나중에 잇펜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말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원효스님은 파계 이후에 방방곡곡을 떠다니면서, 당시의 민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전하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가끔 악기를 두드리면서 춤도 추었다.
잇펜스님 역시 꼭 그랬다. 서른 다섯, 마음에 안심(安心)을 얻은 이후 일본 열도를 걷고 또 걸었다. 이를 ‘유행(遊行)’이라 말한다. 겨울에도 휘몰아치는 북풍한설을 맞았고, 한데 잠을 잤다. 보통 스님들은 집은 없지만 절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잇펜스님은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16년동안 무소유였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도 따라 다녔다. 가끔 잇펜스님은 그들과 함께 춤추며 염불했다. 염불하며 춤췄다. “나무아미타불~”

당시의 어떤 큰스님들보다 일찍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한 뒤, 10년이 지나 제자 쇼카이(聖戒, 1261~1323)스님은 화가 엔이(圓伊)를 데리고 스님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이렇게 하여 엔이가 그림으로 그린 스님의 전기가 완성된다. ‘잇펜히지리에(一遍聖繪)’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히지리’라는 말이 우리의 저항을 부를지도 모른다. 원효스님과 같이 저자거리로 내려와서 민중들 속에서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는 스님들이, 민중들 입장에서는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분을 ‘저자거리의 성자(市聖, 이치 히지리)’라 불렀다. 줄여서 ‘히지리’라 부른다. 그러니, ‘잇펜 히지리에’는 잇펜 히지리의 그림 전기라는 뜻이 된다. ‘성인’이라 해서는 그런 뜻이 다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이런 히지리들이 적지 않았으니, ‘삼국유사’만 해도 원효·대안·혜숙·혜공·사복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분을 총칭하는 말이 없었으나, 일본의 경우에는 ‘히지리’라는 말로 불렀던 차이가 있다.
그럼 왜 우리는 히지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 우리가 되찾아야 할 참된 출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꿈이 있다.
언젠가는 ‘잇펜 히지리에’를 온전히 다 보고 다 읽고 싶은 꿈, 스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조금이라도 따라 걷고 싶은 꿈,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스님을 소개하고 싶은 꿈 말이다. 그런 행복한 꿈을 나는 꾸고 있다. 그 꿈이 번역서도 없는 이 책을 굳이 소개하라 명령하였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이 글이 잇펜스님을 소개하는 최초의 글일 터이지만, 그 꿈을 향하여 나는 조금씩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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