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禪院創立一周年(대학선원창립일주년)에 부쳐-

 韓國佛敎現代化(한국불교현대화)의 바람찬 횃불을 들고 佛敎人(불교인)의 시望(망)과 社會(사회)의 注視(주시)속에 大學禪院(대학선원)이 木校內(목교내)에 設置(설치)된지도 어언 一週年(일주년)이 되었다. 無我(무아)의 境地(경지)로 들어가는 것이 곧 有(유)我(아)의 罪惡(죄악)과 苦痛(고통)에 찬 이 現未(현미), 萬事(만사)를 잊고 무릎을 꿇어앉아 이 現未世界(현미세계)를 否定(부정) 비판하고 보다 絶對的(절대적)인 人間(인간)을 追求(추구) 肯定(긍정)하여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의 禪思想(선사상)을 실천 감행 하므로써 몸과 마음을 닦아 불교의 生活化(생활화)와 現代化(현대화)를 이룩하려는 것이 大學(대학) 禪院設立(선원설립)의 目的(목적)인 것이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을 알수가 있을 것인가.

거짓스러운 자기가 항상 참된 자기를 가리고 억누르고 있는 狀態(상태)에서는 決(결)코 빈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것이며 빈 마음을 所有(소유)하지 못하고는 永遠(영원)히 자기를 喪失(상실)하고 方向(방향)없는 旅路(려로)를 외로히 헤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필요分裂(분열)된 자기, 葛藤(갈등)하는 자기, 심지어는 자기아닌 자기를 이끌고 신음라고 울부짖는 衆生(중생)에게는 자기를 否定(부정)함으로써 자기를 肯定(긍정)하려는 禪(선)의 實踐(실천)이 緊要(긴요)한것이며 그러므로써 사람다운 자기生活(생활)을 所有(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韓國佛敎(한국불교)의 維新(유신)에 寄與(기여)할 大學(대학)禪院(선원)은 佛敎(불교)가 客觀的(객관적)硏究(연구)對象(대상)으로서의 狀態(상태)를 벗어나 참된生命(생명)있는 佛敎(불교)를 이룩하기위하여 努力(노력)해왔던 것이다. 無郞大(무랑대)의 眞理(진리)의 領城(영성)을 정복하려는 數世紀(수세기)에걸친 人類(인류)의끈덕진 努力(노력)은 現代(현대)의 놀라운 科學文明(과학문명)을 이룩해 놓았지만 眞理(진리)의 世界(세계)는 無郞大(무랑대) 바로 그대로 인 것이며 科學文明(과학문명)의 發達(발달)은 人類(인류)의 不安(불안)과 공포만을 加重(가중)시켜 옿았다. 人類(인류)의 墮落(타락)과 자멸을 막고 이 뼈에 사모친 不安(불안)과공포를 불식하고 無風地帶(무풍지대)의 安定(안정)된 人間(인간)을 爭取(쟁취)하기 위해서 禪(선)의 보급이 切實(절실)히 要望(요망)되는 것이다.

그동안 韓國佛敎(한국불교)가 너무나 形式(형식)에 치우치고 歷史的(역사적)인 資料提供(자료제공)만 自足(자족)하여왔던 것이 事實(사실)이다. 이와 같은 狀態(상태)를 早速(조속)히 脫皮(탈피)하고 冷嚴(냉엄)한 自己(자기)비판을 加(가)하여 木質的(목질적)인 佛敎(불교)의 참모습을 들어내는 것이 韓國佛敎(한국불교)를 革新(혁신)하는 方法(방법)이며 人類(인류)를 濟度(제도)하는 처서인 것이다. 우리는 虛空(허공)보다도 가없는 佛院(불원)의 높고 크신 思想(사상)을 體得(체득)하기 위하여 敎學(교학)에 따르는 行(행)으로써 眞理(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시끄럽고 붐비는 게 오늘의 世上(세상)이라면 뒤죽박죽되고 싸우는게 오늘의 世上(세상)이기도하다. 이렇게 世上(세상)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人心(인심)이 이악하면 이악해질수록 禪行(선행)은 더욱 必要不可缺(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썩어없어질 財物(재물)로서가 아니라 不滅(불멸)항 精神(정신)으로 現代(현대)와 現代人(현대인)들을 苦難(고난)과 혼돈, 無秩序(무질서)와 對立(대립)속에서 救出(구출)하는 佛敎中興(불교중흥)의 大課業(대과업)을 自覺(자각)하고 나선 것이 바로 이 大學禪院(대학선원)이다.

決(결)코 華麗(화려)하지도 ()壯(장)하지도 않은이 大學禪院(대학선원)은 그야말로 조촐한 마음의 修道場(수도장)이다. 더욱이 어느 누구에게만 制(제)량된 곳이아니라 누구나 自由(자유)로히 언제든지 善用(선용)할 수 있는 淸淨道場(청정도장)이다. 義務的(의무적)인 參與(참여)를 必要(필요)로 하지 않을뿐 아니라 形式的(형식적)인 번거로움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뜻만 있으면 언제라도 찾아들어 自己(자기)와 自己(자기)와를 맞부치고 고요히 싸우는 對決場(대결장)이다. 外形(외형)의 장업은 없을지라도 마음의 장엄을 얻는곳이요. 이마음의장엄을 얻으므로써만 참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平和(평화)와 淸淨(청정)을 갈망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언제나 歡迎(환영)하는곳. 大學禪院(대학선원)은 一年(일년)이 이라는 짧은 歲月(세월)을 걸어왔지만 그 남긴바 業績(업적)은 참으로 큰 것이다. 여기에는 院長(원장) 李石虎(이석호)스님의 高禖(고매)한 人格(인격)과 꾸준한 努力(노력)이 作用(작용)하였음을 勿論(물론)이다.

그런데 이 機會(기회)에 한마디 附言(부언)해 둘 것은 大學禪院周邊(대학선원주변)의 環境整理(환경정리)에 對(대)해서 섭섭한 마음 그지없다. 人間(인간)이 環境(환경)의 支配(지배)를 받는 동물임이 分明(분명)하다면 大學禪院周邊(대학선원주변)을 좀 더 정갈히 하고 어질더분한 것들을 없애버리고 名實共(명실공)히 淸淨道場(청정도장)으로서의 面貌(면모)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필신이 시달리고 어지러운 者(자)를 慰安(위안)시키고 새로운 希望(희망)을 얻을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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