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표백’을 통해 본 현 사회를 당면한 청년들의 시각

▲소설 ‘표백’(2011).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과 같은 민주화 투쟁을 겪었다. 시간이 흘러 이 시대를 이끌었던 주체들은 이제 기성세대가 됐다. 그들은 지금의 청년들을 보며 사회를 바꾸려는 야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에 대해 소설 ‘표백’은 전통적 성공의 기준에 반대하는 청년들을 보여주며 현시대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대학을 다니는 ‘나’가 세연과 처음 만난 때는 선배의 말에 반항하며 뒤풀이 중간에 나온 후 따로 모인 술자리였다. 세연은 예쁜 미모를 가졌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다. 이렇게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해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 후 사회적 안위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됐던 세연의 세 친구가 자살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우리는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흔히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암울할 것이라 여기며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자살한 4명의 사람은 취직이 확정됐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 대기업의 자손 등 모두 안정적인 삶이 예정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세연과 친구들의 자살은 우리의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살했을까?
세연은 ‘표백세대’로 살아가는 현시대를 거부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 그녀가 자살 선언문을 통해 말한 표백세대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사회를 잘 굴러가게만 하는 것이 임무인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표백세대는 더는 사회적으로 혁명을 일으키는 변화는 일어날 수 없고 경쟁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성취만이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개인적인 성취도 기성세대가 맞춰놓은 기존 사상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에 그녀는 회의감을 느낀다. 이런 사회에 저항하는 그녀의 방법은 자살이었다. 그녀는 자살을 통해 표백세대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를 거부했다. 
그런데 세연이 말한 대로 표백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은 잘못된 것일까? 서술자 ‘나’는 세연의 자살 선언문을 읽고 굉장한 모멸감을 느낀다. 그는 개인적 성취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시한 사람으로 만든 표현과 자살을 사회 변화에 야망 있는 모습과 동일시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대로 과연 수많은 경쟁을 통해 얻은 개인적 성취를 과연 시시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높은 취업 장벽과 고스펙을 바라는 각박한 사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얻은 모든 성취는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귀중한 결과이다. 과거에 비해 민주화된 세상이고 국민의 영향력으로 대통령도 바뀌는 사회에서 새로운 혁명만을 바라며 개인적인 성취를 폄하하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기성세대의 생각에 갇혀있는 것이다. 
세연은 사회에 변화가 없어 삶이 무기력하다고 생각했고 청년들이 더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바라봤다. 그러나 현 사회의 청년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간다. 이처럼 지금의 청년들은 현시대에 맞게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 세연처럼 비관적인 태도로 현세대를 바라보기보단 소설 속의 ‘나’처럼 지금의 삶을 더 잘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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