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 주찬양.

지난 2009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 드라마 ‘아이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대작(大作)을 만든 장본인 양윤호 감독이 우리대학 영상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가 됐다. ‘아이리스’는 남다른 스케일과 과감한 액션 장면 연출로 주목받았다. 감독과 작품은 닮는 것일까. 직접 만나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여유까지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만들어 낸 걸작

그는 경찰대 1차 모집에 합격했지만 과감하게 우리대학 연극영화과(이하 연영과) 진학을 선택했다. 이는 예술을 표현하는 직업 중 감독이 본인의 예술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리대학에서 경험한 것이 유독 많았다며 회상했다.
그는 1992년, 우리대학 재학 중 여러 단편영화제에 영화 ‘가변차선’을 출품해 대상을 휩쓸었다. ‘가변차선’에서는 당시 그와 동기였던 박신양이 주연을 맡았고 당대 스타로 활약하던 김혜수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조감독으로 참여해 화제가 됐다. 그는 “그 당시에 전셋값이 2000만 원 정도 할 때인데 상금으로만 1500만 원 정도를 받았다”며 “상금으로 학과에 필요한 장비까지 사줬다(웃음)”고 말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런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에 대해 “자신에게 있던 열등감의 영향이 컸다”며 입을 열었다. 누구보다 대학 시절이 화려해 보인 그에게 ‘열등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았다. 그는 “먼저 연영과에 아무런 지식 없이 진학한 것에 열등감이 있었다”며 “운동권과 비운동권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했었다. 운동권, 비운동권이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고스란히 경험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 이런 열등감은 그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예술 활동에 영감을 주었다.
또 그는 “연영과에 다니면서 가장 몰두했던 것은 공부였다”고 밝혔다. 대학 때부터 진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교 와서 공부 안 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 됐다”며 “연영과 수업뿐만 아니라 듣고 싶었던 것들까지 다 들어서 졸업을 겨우 맞춰서 했다(웃음)”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분 좋은 시작, 거침없는 도전

그는 데뷔작부터 성공적이었다. 데뷔작인 영화 ‘유리(1996)’에서 고뇌하는 젊은 수도승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연출했고, 이는 한국 영화 중에서 칸 영화제에 세 번째로 초청됐다. 또 각종 영화제에 초청돼 비평가들에게 “영상미가 신선하고 실험성이 돋보인다”는 호평을 받아 성공적인 예술 영화의 면모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당시 70년이 넘었던 한국 영화사에서 칸에 초청받은 것이 세 번밖에 안 되는 게 말이 안 됐다”며 지지부진한 한국 영화계를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예술성이 강했던 영화 ‘유리’ 이후 상업 영화에도 도전했다. 그중에서도 ‘미스터 콘돔(1997)’, ‘짱(1998)’, ‘화이트 발렌타인(1999)’ 같은 코미디나 로맨스 장르 제작에 주력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도전할 때마다 항상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액션’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영화 ‘리베라 메(2000)’ 제작을 원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그의 이전 작품들 장르와 비교하며 그의 액션 영화 제작 능력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인정 안 해주니까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당시에 그가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의심을 새로운 색깔을 갖거나 단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겪는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것을 결심했다. 그는 “자기 삶은 자기가 증명하고 가야 하는 것”이라며 “아직도 나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에 서 있다”고 말했다. 예순 살이 넘어서는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 활동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장르 도전도 성공적이었다. 그가 연출한 드라마 ‘아이리스’는 최고 시청률 39.5%를 기록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영화감독으로서 노련한 능력이 드라마와 만나 빛을 발한 것이다. ‘아이리스’는 20부작 드라마지만 20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영화와 드라마가 가진 각각의 장점만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영화처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그 요구는 나름 쉬운 요구였다”며 “단, 영화처럼 퀄리티 있게 찍되 TV 방영 속도를 맞추기 위해 스텝들과 정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미 액션 장르에 노련한 그였지만, 드라마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배우들의 노고도 많은 영향을 줬다. 특히 그는 이병헌의 연기력을 칭찬했다. 그는 “이병헌이 높이 매달리거나 구르는 것에 몸을 마다하지 않았고 액션 장면을 워낙 잘했다”고 회상했다. 또 이병헌과 관련한 일화도 떠올렸다. 그는 “헝가리에서 폭파 장면 촬영이 있었는데 폭파 장면이 있다는 것을 미리 병헌이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병헌이가 깜짝 놀랐지만, 열심히 해줬다”고 당시 미안했고 고마웠던 마음을 전했다.

모교의 품에서 제자들을 품다

“할 수만 있다면 (영화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강단에 오르는 그의 진심이 묻어나는 한마디였다. “좋은 감독이 되는 법은 책에 다 나와 있지만 그대로 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본인이 직접 깨닫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예술이 불교에서의 개안(開眼)과도 닮았다고 했다. 그는 “평생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눈을 10번 정도 뜨고 깨달으면 된다고 했을 때, 대학 시절에 많이 깨달은 것과 사회에 나가서 처음 깨닫는 것은 시작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한번 개안할 때마다 시나리오와 작품을 보는 시각이 점점 좋아지고 바뀐다”며 “대학 시절 개안을 하게 되면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제자들의 ‘개안’을 위해 열정을 갖고 지도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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