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일 또 만나!’
드라마 ‘청춘시대’(이하 청춘시대) 마지막 장면에는 위와 같은 말이 나온다. 마지막을 장식했음에도 내일 또 만나자고 여운을 남기며 시청자들에게 기대감을 선사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떠나간 하우스메이트들, 그리고 박연선 작가. 그를 만나봤다.

청춘시대만의 섬세한 감성

청춘시대는 방영하는 날이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고 그만큼 파급력도 강해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를 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된 데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작가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캐릭터를 잘 살려낸 것이 한몫했다.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독백은 인물들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인물의 세밀한 감정 묘사를 위한 박연선 작가만의 방법이 있을까.
그는 본인의 섬세한 감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만화’를 꼽았다. 차분한 드라마의 분위기와 반대되는 대답에 의외의 매력이 돋보였다. 휴가를 받으면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 그는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만화를 봤다. 그중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만화로 ‘슬램덩크’를 꼽았다. 그는 슬램덩크에 대해 “캐릭터 활용 방법, 조연의 얘기를 끌어가는 법, 책 바깥에서도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 대사, 구성이 돋보이는 만화다”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작가가 한 작품을 써나가면서 발전하는 것이 눈으로 보여 신기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슬램덩크의 대사를 일상생활에서 쓰기도 하고 캐릭터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그는 자신만의 감정의 발판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예민한 감정을 가진 것이 단점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감정에 집착해 이야기의 흐름이 느려지기도 하고 갈등을 극적으로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잔인하게 쓰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각각 개성 있는 하우스메이트들

그의 깊이 있는 내면은 청춘시대의 내용과 구성에서 빛을 발했다. 청춘시대는 20대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함께 셰어하우스에 살며 소통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누군가의 선택은 그들만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낼 만큼 사회적 분노가 많이 쌓여 있다. 박연선 작가 역시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싫어했던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사회에 쌓여 있는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청춘시대의 주제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주제보다는 청춘들의 아픔을 다룬 것에 중점을 두고 시청했다. 이에 대해 그는 “청춘들의 아픔에 더 주목했다고 해서 아쉽거나 하지는 않다”며 “드라마를 소비하는 건 이미 작가의 영역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청춘시대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의 얘기를 다룬다. 20대 청춘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로 “중년이나 노년은 이미 완숙해서 아직은 미숙한 청춘을 주인공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은 데이트폭력과 그 후유증, 허언증, 매춘, 생활고, 취업난, 첫사랑의 아픔 등 청춘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아픔을 겪는다. 이런 캐릭터 설정에 있어 작가의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그는 “가난해서 24시간을 쪼개 쓰는 캐릭터가 있다면 돈을 펑펑 쓰는 캐릭터가 있어야 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는 캐릭터가 있다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못 믿어서 현재만 사는 캐릭터가 있어야 하고,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캐릭터의 위치와 성격이 적확하면 그들의 성격에 따라 비하인드 스토리가 생성된다”며 캐릭터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가장 공들인 캐릭터는 누구일까. 모두가 주옥같은 청춘시대 주인공 중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캐릭터는 ‘정예은’이었다. 밝은 성격의 대학생이었지만 데이트 폭력을 당해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픈 청춘이다. 작가는 이 캐릭터를 통해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던져 주었다. 박연선 작가는 정예은에 대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캐릭터이고, 그래서 더 미움받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극 중 본인을 닮은 캐릭터로 ‘유은재’를 꼽았다. 유은재는 시골에서 서울로 갓 올라온 대학교 신입생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 첫 연애를 시작하지만, 대부분 첫사랑이 그렇듯 이별을 한다. 처음 이별을 겪은 유은재에게 이별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박연선 작가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는데 이러한 내 모습을 유은재 캐릭터에 투영시켰다”고 말했다.

쉽게 오는 실패, 너무 먼 성공

보통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극적인 성공을 그린다. 비참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부유한 인생을 살게 되고, 진실한 사랑을 만난다. 하지만 청춘시대에 나온 청춘들에게 성공은 먼 얘기다. 박연선 작가는 “드라마틱한 성공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나는 완벽한 해피엔딩과 완벽한 새드엔딩을 믿지 않는다. 개인의 인생 중 100%의 성공과 100%의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예로 청춘시대의 ‘윤진명’은 취업난 속에서 취직에 성공해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지만,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수 있다.
이런 작가의 철학에 맞게 청춘시대도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 혹은 완벽한 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항상 후속작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아마 다음 편을 빨리 보고 싶은 대중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항상 박연선 작가는 이 물음에 정확히 답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후속작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쓸 드라마에 녹여내고 싶은 주제나 소재를 묻는 질문에 “사극을 써보고 싶다. 그리고 감정과 욕망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을 전하는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연선 작가가 대중들과 또다시 만날 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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