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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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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펜스룰
▲이효석 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초등학교 때 힘이 세다고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애가 있었다. 물건을 빌려 갔다가 돌려주지 않을 때도 많았다. 보다 못해 선생님께 일렀고 그 애는 공개적으로 혼이 났다. 쉬는 시간이 되자 그는 어찌 알고 내 앞에 우뚝 섰다. 너가 일렀지, 응. 그러자 그는 내게 ‘기집애’냐고, ‘기집애처럼 일러바치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일단 ‘기집애’가 아닌 데다 일러바치는 건 남자든 여자든 할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에 ‘펜스룰’을 듣고 오랜만에 그 애 생각이 났다. 나는 펜스룰에도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펜스룰이 그 애와 참 닮았다는 생각만 든다.

 펜스룰은 ‘오해 생길까 봐 여자랑 단둘이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여성차별이다. 여성을 남성과 다르게 대하는 대상화다. 스스로 잠재적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어리석은 선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펜스룰에 고개 끄덕이는 한국 남자들이 많다. ‘그래, 안 만나야지’ 이러더니 ‘만나면 조심해야지’, ‘녹음해야지’란다. 일부러 조심하고 녹음하고 할 필요 없다. 그냥 남성을 대할 때처럼 여성을 그저 대화상대나 업무상대로 대하고, 성희롱 하지 않으면 된다. ‘여자가 뭘 트집 잡을지 모르잖아’라고 묻는 이도 있다. 스스로 성차별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셈이니 더 말하지 않겠다. 하긴 펜스룰을 만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애초에 성차별적 발언들로 미국에서 비판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펜스룰에 공감하는 한국 남자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펜스룰은 한국에서 사실 낯설지 않다. 한국 남자들 사이에는 꼬맹이 때부터 어른이 돼서까지 ‘남자끼리’가 참 많다. 그런 ‘여성의 배제’는 대부분 ‘여성을 탐하기 위해’ 이뤄진다.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할 것 없이 ‘남자끼리 카톡방(남톡방)’에서 야한 사진·영상 공유한다. 심하면 주변 여자들까지 들먹이며 얼굴·몸매 평가한다. 더 심한 애들은 ‘주먹(주면 먹냐)’ 거리며 음담패설도 한다. 직장인 되면 남자끼리 3차로 유흥업소 간다. 자리 하나씩 꿰차면 그 유흥업소에서 실제 업무에 관련된 고급 정보도 주고받는다.


 이쯤 되면 마이크 펜스가 한발 늦은 셈 아닌가. 사실 ‘코리안 멘즈 룰’ 아닌가. 남자들이 먼저 인정하자. 그리고 바꾸자. 대놓고 반기를 들 용기까지 낼 필요 없다. 대학생들은 주변 친구들까지 들먹이는 ‘남톡방’에 있다면 슬쩍 나가자. 누가 물어보면 ‘불편해서…’라고 하면 된다. 직장인들은 유흥업소 가지 말자. 선배가 뭐라 하면 ‘여자친구한테 혼나요…’라고 하면 된다. ‘기집애냐’ 정도 비아냥은 참자. 초등학생도 그 정도는 참는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주변을 보라.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있다. 지금,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이효석  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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