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어둠 속의 대화’ 포스터.

중학교 3학년 때 현장 체험 학습으로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를 갔다. 어떤 전시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을 ‘로드 마스터’라는 가이드와 친구들에 의지해 걸어갔다. 의자에 앉는 것, 길을 걷는 것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심지어 마신 음료수가 어떤 것인지도 알기 힘들었다. 로드 마스터는 우리에게 중간중간 기분이 어떤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친구들은 “꼭 장애인이 된 것 같아요”, “장애인 같아서 짜증 나요” 라며 키득거렸다. 


전시가 끝난 뒤 로드 마스터는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설명을 듣고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친구들은 로드 마스터에게 장애인 같다고 얘기해서 죄송하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우리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장애인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 욕을 쓰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친구들끼리 “이 찐따야”, “귀먹었냐”, “장애인 같다”라는 장난을 서슴지 않고 해왔다. 그리고 장애인 비하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일하던 카페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종종 모임을 하곤 했다. 얼음량과 당도, 토핑까지 확인해야 했던 주문방식 때문에 종이로 일일이 주문을 받고 음료가 나왔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 직접 갖다 드렸다. 겉으로는 친절한척 했지만 속으로는 짜증이 났다. 주문이 밀리고 손은 바빠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왜 하필 여기에 와서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거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6년 전의 다짐이 떠올랐다. 6년이나 지났지만 성숙해지기는커녕 더 미숙해진 것 같았다. 평소에 친구들과 장애인 비하 단어들을 사용하며 장난쳤고, 청각 장애인 손님이 왔을 때 짜증을 냈다. 단지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척했던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러운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이번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차별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썼던 단어들이 장애인 비하 단어였다는 것,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 채 자주 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차별하고, 비하하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수화를 배우고 있다. 장애인 비하 단어를 쓰던 내가 청각 장애인 언어를 배운다니 머쓱했지만, 그동안 무심했던 아니 더 못났던 모습을 반성하는 마음에서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청각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수화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화를 배우는 것이 그들에게 유의미한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장애인 차별에 무심했던 내가 이렇게 바뀌는데 의미를 두려고 한다. 이런 작은 변화가 모여 좀 더 나은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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