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찐따’등의 비속어부터 ‘눈먼 돈’등의 일상어까지 잘못된 언어 사용을 바로잡다

#41067번째뿌우
저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로 정상 보행이 불가능해요. 저는 장애인이지만 특별한 시설도 배려도 요구하지 않아요. 하지만 개강총회에 저 같은 장애인을 비하하며 찐따 운운하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분들 말대로 찐따인 제가 솔직히 죄송은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배려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다짜고짜 찐따 운운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우리대학 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에서 논란이 됐던 글이다. ‘찐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글에 대해 한 학생은 “아 진짜 불편한 거 많네, 찐따인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단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자.

“장애인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어요”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병신’, ‘찐따’, ‘네 눈 장애인이냐?’ 등의 표현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대학 경제학과도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찐따인가, 개강총회 안 왔나 봐’라는 문구를 개강총회 포스터에 사용해 논란이 됐다. 경제학과는 뒤늦게 ‘찐따’라는 단어가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저희가 무지해 이런 언어를 문제의식 없이 사용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더욱 공감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다”라고 사과문을 통해 설명했다.
‘찐따’뿐만 아니라 ‘병신’이라는 단어도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로 어떤 상황에서 ‘병신’이라 말할까. 경북대 재학생 이주영(불어불문17) 씨는 ‘친구가 조금 답답하게 행동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고, 한양대 재학생 우윤철(건축17) 씨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너무 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 사용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병신’은 친구들끼리 장난칠 때, 게임을 할 때 등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를 바라보는 장애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대학에 다니고 있는 지체장애인 A씨는 “세상에 많은 욕이 있는데, 그 욕의 어원을 알고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며 “하지만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고 전했다.
장애인 인권침해 예방센터에 따르면 센터로 접수되는 상담 중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백지현 간사는 “병신 등의 장애인 비하·혐오 용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며 “용어사용이야말로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선별적으로 사용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런 차별적인 용어사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용한 용어에 대해 ‘내가 쓰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며 선별적 용어 사용을 실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단어? No! 혐오단어? Yes!

비속어뿐만 아니라 평범한 단어와 표현들에도 장애인 혐오가 담겨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겨울에 ‘벙어리장갑’을 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벙어리장갑’에서 ‘벙어리’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일상적인 단어 속 숨어있는 장애인 혐오의 대표적인 예시다. 실제로 청각장애인에게 “넌 벙어리니까 벙어리장갑 껴!”와 같은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벙어리장갑’에 대해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벙어리장갑이 비록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써 왔고 지금도 널리 쓰고 있는 말”이라며 “벙어리장갑을 사전에서 삭제하는 것은 어렵지만, 외래어나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는 말들은 ‘순화어’를 만들어 사용을 권장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말샘이라는 사전에 벙어리장갑의 순화어로 손모아장갑, 엄지장갑 등이 등재됐다”고 설명했다.
‘손모아장갑’이란 단어가 우리말샘에 등재된 배경에는 ‘엔젤스헤이븐’의 손모아장갑 캠페인이 있다. ‘엔젤스헤이븐’은 대중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손모아장갑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고 한다. 엘젤스헤이븐 김효민 팀장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벙어리장갑)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는 것이 1단계 목표였다”며 “이제는 조금 불편한 단어가 되면서 의식적으로 ‘손모아장갑’이라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온라인쇼핑몰에서 명칭을 바꿔 판매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덧붙여 그는 “말을 배우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손모아장갑’이라 배우게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변화를 위한 작은 날개짓

‘손모아장갑’의 사례처럼 바꿔나가야 할 관용구나 속담들도 많이 있다. ‘절름발이식 행정’, ‘눈먼 돈’, ‘꿀 먹은 벙어리’ 등이 그 예시이다. 이런 표현들을 기사의 제목, 블로그, 심지어 논문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9604개의 속담 중, 장애와 관련된 속담이 257건이나 있다. 이에 지체장애인 A씨는 “이러한 용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문제”라며 “장애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도전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재고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전했다.
언어는 ‘한’사람 입에서 나오지만 ‘천’사람의 귀로 들어간다고 한다. ‘벙어리장갑’의 사례처럼 다양한 주체들이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만’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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