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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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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한 페미니즘을 바라는 그대들에게책 ‘이갈리아의 딸들’을 통한 미러링에 대한 고찰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1977).

1977년 노르웨이 출신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에 의해 쓰인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은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는 남녀의 ‘성 역할’이 바뀌어 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여성이 기준이고 기본값이다. 이는 여자와 남자를 지칭하는 언어에서부터 알 수 있다. 이갈리아에서 여성은 움(wom)이고, 남성은 맨움(manwom)이다. 영어에서 ‘man’에 ‘wo'를 붙여 ‘woman’을 만든 것과는 반대다.

사회의 주체인 움은 이갈리아의 거의 모든 생산 활동을 담당한다. 반면, 아이의 아버지라고 지목당한 맨움은 움으로부터 의무와 혜택을 갖게 된다. 움의 집에서 움의 보호를 받으며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것이다. 움이 임신하고 출산을 하느라 고생했으니 육아는 당연히 맨움의 역할이다. 또한, 꾸밈에 관심이 많은 맨움들과는 달리 임신과 출산을 통해 신체가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움들은 몸매 관리에 관심이 없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맨움들은 ‘페호’라고 하는 성기 가리개를 착용하고 다녀야 한다. 돌출된 남성의 성기는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부끄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맨움들에게 페호 없이 외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6살 맨움인 주인공은 어느 날 저녁 수풀에서 움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지만,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묵인한다. 결국, 이런 불평등에 지친 맨움들은 공공장소에서 페호를 불태우고 소리를 지르며 ‘맨움해방운동’을 벌인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 완벽에 가까운 ‘미러링’으로 성차별을 비판했다. 이갈리아 사회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여성 상위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에 적용하자면 “남자가 조신하게 일찍 다녀야지”, “남자는 결혼해서 내조를 잘해야지” 같은 말을 들으며 사는 사회,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남성을 몰래 찍고 만져서 남성 전용 칸을 만들자는 주장이 일지만, 여성들이 이는 역차별이라고 화내는 사회가 되겠다.
2017년 페미니즘이 화두에 오르는 데에는 ‘미러링’이 일등공신이었다. 미러링(mirroring)이란 ‘비추다’, ‘반영하다’라는 뜻의 ‘mirror’에서 비롯된 말인데, 주로 인터넷상에서 기존에 문제가 됐던 남자들의 언어를 따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조신해야 할’ 여성들이 거친 언어를 쓰자 보기 거북하다며 말을 ‘예쁘게’ 해야 듣지 않겠냐고 했다. 혹자는 이런 거친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며 꾸짖었다. 

20세기 초 영국, 투표권을 차지하기 위해 투쟁한 여성들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창문을 깨고 물건을 불태우는 것은 폭력만이 남자들이 알아듣는 언어이기 때문이죠”

그들은 처음부터 과격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조신하게’ 여자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상가 창문에 돌을 던지고, 우체통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도 그들의 투쟁은 신문 구석 자리에 실리기도 힘들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은 유명한 승마 경기가 열리는 날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깃발을 들며 달리는 말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여성 참정권 운동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물론 “온건한 방식은 통하지 않았으니 페미니즘은 폭력적이어야 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일에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특히 자신이 직접 불편함을 느끼거나 피해를 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래서 인권 운동은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백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흑인 인권 운동, 귀족의 마음에 들 만한 노예 해방 운동 같은 것은 없었다. 

‘한남충’이 있기 전에는 수많은 여성 혐오 단어들이 존재했다. ‘된장녀’, ‘김치녀’, ‘ㅇㅇ년’ 등에는 심드렁하고 무심했던 사람들이 반대로 뒤집으니 발끈한다. 하지만 ‘미러링’은 사람들을 발끈하게 했다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거울이 무엇을 비추고 있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제 거울이 비추고 있는 그 불편한 진실을 없앨 차례다.

최수빈 기자  choisub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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