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혹은 이미 떠난 대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 그중 파리는 수많은 유럽 도시들 중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 중 하나다. 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포털사이트에 파리를 검색하면 에펠탑과 몽마르뜨 옆에 자연스럽게 흑인, 소매치기 등이 연관검색어에 뜬다.
유럽여행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몽마르뜨언덕에서 팔찌를 강매당했다거나, 에펠탑 모형을 사라며 길을 막아 억지로 샀다는 글들과 함께 흑인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성 댓글들을 한 번씩은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파리에서 에펠탑만큼이나 유명한 에펠탑 모형을 파는 흑인들과의 인터뷰를 싣고자 한다.

▲파리를 검색하면 흑인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성 글들을 볼 수 있다.(출처: 네이버 까페 Eurang/http://cafe.naver.com/firenze)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에펠탑 모형은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양손엔 치렁치렁하게 에펠탑 모형을 매달고 one euro를 외치곤 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프랑스에는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의 비중이 늘어났고 흑인들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리를 그들에게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바티칸 앞에서 묵주를 파는 사람들도 흑인들에서 인도인으로 많이 바뀌었다.

다짜고짜 다가가 인터뷰하면 당연히 안 받아줄 것 같아 에펠탑 모형에 관심을 보였다. 관심을 보이자 온갖 크기의 에펠탑 모형을 보여주는 틈을 타 가격을 흥정하면서 재빨리 이것저것 물었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동반했지만 그들의 불어가 프랑스식 불어와는 달랐기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이스크림 – 얼음보숭이 같은 느낌) 영어와 섞어서 인터뷰해 의역하였다.

▲에펠탑 모양의 열쇠고리를 파는 흑인들.

아래는 인도에서 온 Kahn씨(37세), 세네갈에서 온 Jubaley (22세) 인터뷰다.

1. 어디에서 왔는가?
인도인 Kahn : 네 달 전에 인도에서 왔다. (이하 K)
세네갈인 Jubaley ; 두 달 전에 세네갈에서 왔다. (이하 Ju)

2.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일하는가?
K : 최소 12시간 이상. 새벽까지 한다.
Ju : 평균적으로 8-10시간 정도. 12시쯤에 나와서 저녁 9시쯤 들어간다. 오전에는 에펠탑을 만들거나 물건을 받으러 간다. (에펠탑 구석진 곳을 잘 보면 에펠탑 모형을 조립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3. 한국말을 잘한다. ‘반짝반짝’, ‘예쁘다’. ‘언니’, ‘누나’ 등등 누가 알려줬는가? 
Ju : 인터넷으로 찾아본 것들도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알려줬다. 중국어랑 일본어도 할 줄 아는데 한국어를 제일 많이 안다.
K : 몇 년 전에 한국 포항에서 일한 적 있다.


4. 수입은 어떤가?
Ju : 요즘 인도사람들이 프랑스에 많이 들어와서 에펠탑 모형을 팔고 있다. 별로 못 번다.
오늘 20유로 벌었고, 지난달에는 400유로 벌었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제일 많이 산다. (웃으며)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깎아달라고 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제값 주고 사려고 하면 왜 깎아달라고 안 하냐며 되묻기도 한다. 대체로 흑인들은 장난을 많이 친다. 한국인들과의 흥정을 재밌게 생각한다.)

5. 가격도 많이 깎아주고 덤도 많이 얹어주는데 원가와 마진이 궁금하다.
Ju : 이건 자세히 알려줄 수 없지만 작은 열쇠고리는 10개에 1유로에 팔아도 이익이 남는다. 이건 덤으로 많이 줘도 괜찮다. 하지만 내가 많이 주면 다른 사람들 장사에 방해되기 때문에 서로 적정선을 지키려고 한다.

6. 에펠탑 모형 가격이 다 똑같다. 혹시 같은 회사에서 소속인가? 관리자가 따로 있는가?
Ju : 아니다. 암묵적인 약속이다. 관리자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없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텃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어서 처음부터 이렇게 잔디밭에서 팔 수 없다.

7. 프랑스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K & Ju : 당연히 돈이 필요해서다. 가족들 생활비. 이것 말고도 다른 일도 찾아보고 있다.

8. 돈을 별로 못 번다고 했는데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Ju : 쉽게 시작할 수 있으니깐.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프랑스에 온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오래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네갈에서 왔다는 청년은 인터뷰에 꽤나 흥미를 보였다. 간만에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겨 신이 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물론 틈틈이 더 큰 크기의 에펠탑을 살 것을 종용했지만.
대화가 길어지자 맥주를 팔던 한 흑인 청년도 우리에게 다가왔다. 알제리에서 왔다는 맥주 청년은 한국 사람을 반복해서 말하며 한국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밤에 맥주를 가장 많이 사주는 사람이 한국인들이라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저녁이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 다음날을 준비하는 유럽 관광객들과는 달리 휴가가 짧은 한국인들은 밤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평일 밤이면 에펠탑 아래에는 한국인들만 남는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이면 에펠탑 아래는 한국인들의 헌팅장소가 된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최고의 고객이다.

▲그 날 구입한 7유로짜리 에펠탑 모형. 인터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값을 주고 샀다.일주일 후, 같은 크기의 모형을 친구는 3유로에 샀다.

이들의 눈빛은 다른 이들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의 눈빛과는 달랐다. 가끔은 경찰의 단속에 쫓기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에펠탑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도 알려주고 소매치기들의 타깃이 된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간혹 짓궂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대처방법은 단순하다. Non Merci! (no thank you) 라고 말하면 더 이상 추근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깐 그들은 열심히 사는 성실한 청년들이었다. 불법체류자이거나 세금을 내지 않고는 있지만, 최소한 잘 못 끼워진 첫 단추를 탓하며 끝까지 단추를 잘못 끼우기 보다는 최대한 자신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었다.
프랑스는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어 세금으로 상당한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프랑스 시민들은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한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최소한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하거나 더 큰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 그들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억울한 일 일 것이다. 무조건 그들을 겁내기 전, 그들을 향한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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