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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2 16:57

동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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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존기 #4. 센강의 물맛은? 한국이 연습게임이라면 파리는 실전이야.

 이번에는 파리의 유명한 센강의 물을 직접 먹어본 후기와 강도를 만나 경찰서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날은 내가 파리에서 보낸 날 중 가장 길었던 이틀이다.
악명 높은 유럽의 소매치기. 파리를 이야기하면서 소매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집세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집을 구할 때 파리 시내를 고집한 이유는 하나다. 안전. 외곽지역은 동네 분위기부터 다르다. 해가 진 뒤 2존으로 향하는 지하철과 RER의 전혀 쾌적하지 않은 분위기가 싫었다.

 파리는 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도 정말 많고, 밤이면 나이트버스가 다니는 등,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다. 게다가 나는 꽤나 안전한, 한국인이 많이 사는 15구에 살았고 그간 백팩을 매고 다녀도, 휴대폰과 지갑을 주머니에 그냥 넣어두어도 소매치기를 비롯한 어떤 위험한 순간도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파티가 있거나 거리에서 축제가 있는 날이면 새벽 1시까지 노는 대담함과 패기도 보였다. ‘방심’이 온몸을 휘감을 때쯤, 나에게도 ‘그일’이 생겼다.
 그날은 파리에서 와인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야경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고, 분위기에 신이 난 우리는 센강으로 향했다. 취한 동양인 여자 셋은 너무도 좋은 먹잇감이었을 터. 주변에서 놀고 있던 여러 무리는 우리에게 자꾸 다가와서 같이 놀자 거나, 휴지나 종이와 펜을 빌려달라는 둥 자꾸 가방을 열게끔 했었다. 철저하게 짐 단속을 하면서 우리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북적이던 센강도 어느새 한산해졌기에 화장실만 다녀와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평소에 강도를 만나서 짐을 뺏길 경우 저항하지 않아야 무사할 수 있다는 것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이 화장실을 간 사이 누군가 내 가방을 가져가려고 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그가 순순히 가방을 놓는가 싶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의 반사 신경에 감탄하며 뒤를 돈 순간 그는 내 등을 밀었고 나는 그대로 센강에 빠지게 되었다.

▲노트르담의 성당야경은 이렇게나 예쁘다. 사진을 찍고 놀 때만 해도 그런 큰일이 생길지 몰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약 그날 날씨가 추웠더라면, 우리가 앉아있던 담의 높이가 높았더라면, 시간이 더 늦어서 지나가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수영을 못했더라면 나는 신문 한쪽에 ‘파리교환학생, 파견중단 검토’라 든지, ‘유럽소매치기,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돼’ 등의 제목과 함께 ‘故A씨’로 올랐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날은 한동안 계속되던 추위가 누그러졌을 때였고, 널찍한 빈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담 높이가 낮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고, 평일이지만 축제 기간이라 늦은 밤까지 사람이 많았기에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물속에서 발길질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 포기하지 말라는 주위의 응원에도 나는 몇 번이나 미끄러져 계속해서 물속으로 빠졌지만 여럿이서 힘을 합쳐 당겨준 덕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평소 남의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시크한 파리지앵들이었지만 한쪽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전화로 구조를 요청해 나는 물에서 나온 뒤 2분 만에 경찰관과 구조대원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담요가 아니라 포장지 같은 것을 들고 왔고, 잠수복을 장착하고 있었다. 어떻게 신고를 한 지 모르겠으나 구조가 아니라 시체를 건져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구조대원들은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저체온증의 위험이 있으니 옷을 벗을 것을 요구했고 나는 구급차 안에서 속옷위에 포장지만 두른 채 간단한 검사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헝데부, 그러니깐 약속을 잡아야 한다. 보통 일주일이 기본이기에 웬만한 감기나 배탈 정도는 헝데부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다 낫는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조대원들은 바로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게끔, 그리고 학생이니 보험으로 모든 비용들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여기선 일단 병원에 들어가면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의사가 멀쩡하다고 판단하기 전까지 퇴원할 수 없기에 병원은 사양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30분 가까이 혈압과 체온 등을 쟀고, 큰 변화가 없다는 그들의 판단과 몇 번이나 괜찮다는 나의 확답과 내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나서야 나는 구급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사고를 당한 위치다. 이렇게 낮은 담에 앉아서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포장지를 두르고 집에 갈 수는 없었기에 가까운 친구 집으로 향했고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짐을 확인해보니 없어진 건 동전지갑과 이어폰, 벗어둔 재킷정도였다. 강도는 밀어놓고도 놀랬는지 정작 지갑은 열어보지도 않은 듯했다. 하지만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불어를 할 줄 아는 친구를 앞세워 다음날 경찰서로 향했다.
 파리는 우리나라처럼 파출소가 곳곳에 있지 않고, 한 구에 한개 정도 경찰서가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벨을 누른 뒤 경찰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 나는 간단하게 강도를 만났다고 설명을 한 뒤 들어가 진술서를 작성했다.
 프랑스는 원래 느리니까~ 하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한참이나 기다리는데 한 흑인 여성이 벌벌 떨면서 뛰어 들어오더니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 창밖에서 자신을 위협하고 창문을 깼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녀의 눈물에 모든 경찰이 뛰어와 위로를 해주고 귀 기울여 들어줬다. 경찰들이 사라지자 갑자기 그녀는 태연하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충전기를 꺼냈고, 머리를 매만지다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정말 멀쩡해 보였지만 결국 그녀는 단 10분의 대기후에 VIP로 처리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서에 갔을 때 빠른 처리나 친절함이 필요하면 겁에 질린 표정과 눈물 등 소위 과장 섞인 쇼가 필요하단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저를 센강으로 밀었어요가 아니라 ‘미친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라고 말이다. 만약 물에 빠진 채 금색 포장지를 두르고 경찰서로 갔다면 바로 처리됐을지도 모르지만 덤덤하게 사전까지 찾아가며 서류를 작성한 나는 그때부터 무한대기자가 되었다.
 게다가 단순 소매치기인 줄 알고 처음에는 조서도 작성해주지 않았다. 친구가 누군가 우리를 죽이려고 했다며 과장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고 나서야 우리는 조서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센강에는 CCTV도 없고, 나는 그 사람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는 겨우 보험사에 보낼 서류만 받고 집에 돌아왔다.

▲경찰서에 가면 이렇게 생긴 서류를 준다. 이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

 잃어버린 물건 중에는 친구 옷도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보상보험을, 프랑스학교에서도 학생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다른 유럽국가에서 온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단순 소매치기는 보상이 되지 않지만 이렇게 강도를 당한 경우는 보상이 된다고 했기에 학교에 보험증서를 요구했다. 그때가 10월이었는데 학교에서는 황당하게도 아직 가입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대답을 내놓았고, 11월 말에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프랑스 학생 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보상을 받을 순 없었다. (참고로 9월 첫째 주에 신청한 학생증은 10월 말에 발급됐다. 교환학생 30명과 신입생 신청자를 다 합쳐도 100명도 조금 남짓한 수다. 한국이었다면 일주일 만에 다 처리됐을 것이다)
 센강의 물맛은 보기와는 다르게 냄새나지도 이상한 맛도 나지 않는다. 그냥 차가운 수돗물 맛이다. 더러운 센강의 물 때문에 혹시나 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겁이 났었는데 평소 잘 먹고 다닌 덕에 너무 건강해서인지 다행히도 아무 탈이 나지 않았다.
 의외로 휴대폰은 방수가 잘 됐다. 소매치기 방지용으로 고리를 껴서 손목에 걸어둔 상태라 나와 함께 물에 빠졌었는데 서비스센터에 찾아가 보니 전혀 침수의 흔적이 없다며 그냥 가도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아주 잘 작동한다. 그 뒤로 나는 노을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내가 엄청나게 마신 센강의 물, 이렇게나 더럽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길에서 논 것이 한국에서도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방을 빼앗지 못해 화가 난다고 한강에 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 CCTV가 없고 내가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냥 돌려보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호받던 자국민에서 낯선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 서러운 일이었다. 한국이 연습게임이라면, 파리는 실전이다. 조심 또 조심하자.

김다름  국문문창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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