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라(국문11졸) KBS기상캐스터

눈 오는 새벽입니다. 눈을 보고 있자니 예보가 딱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매일 밤 9시 뉴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는 저는 늘 ‘오늘 뱉은 말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퇴근을 하거든요. 특히 오늘처럼 눈, 비 예보를 하고 온 날은 더 그렇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았네요.
여러분께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문득 이십 대의 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돌아봤습니다. 저의 이십 대는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쓴 일기를 보면 유독 ‘...하고 싶다’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되고 싶다, 하고 싶다, 읽고 싶다, 쓰고 싶다, 알고 싶다 등등.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빼곡히 적어 놓은 옛 일기장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제가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뭘 이렇게까지 삶에 기대하는 게 많았을까 싶어서요.
저는 늘 지금 이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가 되고 싶었고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온몸과 마음이 기울어진 채로 살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삶이 제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저는 많은 꿈을 꾸고 미래를 기획하겠지만, 삶에는 촘촘한 계획보다도 더 가짓수가 많은 변수가 있음을 기억하려 합니다. 날씨처럼 또는 생방송의 순간처럼 삶이라는 것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음을, 기상캐스터가 된 지 8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많은 게 여러분의 뜻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언젠가 여러분은 간절히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든 것에게 감사하는 순간을 맞을 거라는 것입니다. 삶에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많은 기쁨이 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여러분과 저는 기억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참 사랑했던 남산 산책로,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5월이면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밝고 둥글게 빛나던 교정의 연등…아직도 생생한 제 마음속 기억을 함께 간직하고 살아갈 여러분들을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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