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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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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 꼭 같은 색깔의 그릇에 있어야만 하는가예술에 사회적 의미를 담고 변화를 부르기엔 정치권 벽 너무 높아 …
▲사기업의 지원금으로 마련한 보소스 루링스의 스튜디오 내부. 우).

현지 인맥 없이 부족한 영어 하나로 인터뷰를 해주십사 설득하는 일은 때론 마음을 쪼그라들게 했지만 하나하나 일정이 잡혀갈수록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설레었다. 자본주의적이고, 계급적이며 제한적인 한국의 예술계와 달리 찬란한 문화예술이 떠오르는 유럽의 예술계는 수많은 기회의 장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자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모두 그곳 예술 환경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특히 그들은 현 헝가리 정부가 예술계에 무지(無知)하게 개입하고 있으며 이분법적인 정치적 잣대로 많은 예술가를 탄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헝가리가 유럽 예술계 현실 전체를 대변해줄 순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을 생각했을 때 ‘유럽’ 하면 기대하는 것들이, 유럽 일부분인 헝가리에서는 생각보다 찬란하게 그 빛을 내고 있지 않다는 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현대 예술가 보소스 루링스(Borsos Lurinc)와의 인터뷰를 통해 짚어 보고자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현대 예술가 보소스 루링스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예술의 역할은 나누기가 아닌 연결

보소스 루링스는 부다페스트에서 활동하는 현대 예술가다. 부부인 루링스 릴라(Lorinc Lilla)와 야노스 보소스(Janos Borsos)가 함께 활동하는 그룹명이자, 예술작품을 실제로 탄생시키고 이끌어나가는 상상 속 아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보소스 씨는 “보소스 루링스는 우리보다 더 강하고 당돌해요. 무엇보다 이 아이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결’과 ‘공동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더 강한 거예요. A와 B 사이에 경계선을 그으려고 하지 않거든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이 아이를 ‘그(he)’나 ‘그녀(she)’라고 부르지 않아요. 대신 ‘이것(it)’이라고 부르죠. 이 아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점을 이어나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때론 이 아이 뒤에 숨을 수도 있고요. 하하. 상상 속 아이라고 하지만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랍니다”라고 말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우연히 같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예술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친해졌고, 이후 졸업한 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보소스 루링스란 이름으로 함께 예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예술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거리를 두며 예술과 사람을 그 안에서 또 구분 짓지 않는 거죠.”
기자들은 인터뷰 전날 보소스 루링스의 스튜디오 옥상에서 진행된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했는데,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 둘러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릴라 씨는 이런 파티를 하거나 전시회를 여는 이유도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모이기도 하며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끈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시되지 못한 작품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 2017’.

헝가리 정부, 예술을 정치 수단으로

예술을 통해 공유적이고 리좀적인 사회적 효과를 내는 것 외에도 보소스 루링스는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소스 씨는 “우리는 주로 작품에 사회적인 주제를 담아내는 데 흥미를 느껴요. 어떤 사회적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하죠”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헝가리의 정치적 상황에서 이는 어려운 일임을 짚었다. 릴라 씨는 “거의 운동가와 같은 삶을 살게 되죠.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듯한 좁고 멍청한 시야를 가지고 우리 예술가들에게 강요하려는 이념들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그들은 이런 노력이 큰 효과가 없음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권력을 붙잡고 있는 정치권을 둘러싸고 있는 벽이 너무 높아서 다다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작품을 대중에 공개해서 스스로 힘을 얻기도 어렵고, 결국 자신들의 움직임은 그 벽을 콕콕 찌르는 수준에 불과한 상징적인 제스처에서 그친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로부터 고작 나흘 전이었던 7월 24일, 보소스 루링스는 정치적 검열 탓에 그들의 그림이 전시회 벽에서 강제로 내려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릴라 씨는 “국기를 활용한 그림이었어요. 한 국기 위에 다른 국기를 얹거나 배치를 바꾸는 식으로 마치 레고처럼 다루며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거죠. 우리는 원래 이런 식의 작품을 많이 만드는데, 하나의 국기는 전체의 국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안엔 너무나도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전시회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에게 이런 우리의 작품에 대해 사전에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에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 그림을 당장 내려야 한다고 전화가 왔어요. 우리의 그림은 불미스러우며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헝가리 국기를 훼손한다면서요. 국가의 상징을 이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며 거친 말을 했죠. 돌아가 보니 우리의 그림은 이미 없었고요. 초대받은 건 우리인데 말이죠”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그리고 릴라 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림 제목은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예요. 우습게도 검열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검열된 꼴이 된 거죠.”
보소스 루링스는 정부의 시각에서 마련한 예술가를 위한 정책도 저급한 수준이라며 그들의 무지함과 예술을 양극화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비판했다. “예술가를 위한 정책의 실상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정부가 구조를 다 바꾸고 있거든요. 돈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 많아요. 하지만 원래 예술계를 위한 지원에 들어가던 돈을 그들만의 예술 아카데미를 만드는데 다 쏟아붓고 있어요. 거긴 이념적인 색채가 강한 공간이에요. 그들의 이념을 받아들이면 돈과 지원을 받는 거지만, 아니면 그렇지 못하는 거죠.” 릴라 씨는 정부는 돈은 있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꼬집었다.
“그런 예술 아카데미를 위한 빌딩만 계속 살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아니면 전시회 하나를 여는데 일 년 예산을 몽땅 다 써버리던가요. 완전히 비전문적이고, 구시대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전혀 없는 거죠.” 결국, 실상이 이렇다 보니,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문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한다. 예술계에 이름을 알릴 중요한 기회가 됐던 대회들도 점점 줄어 이제 하나만 남은 것이다.
 

예술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문

이처럼 암담한 상황 속에서 빛을 찾는 건 예술가들만 고군분투해서 될 일은 아니다. 일반 대중도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끄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작품이 시끌벅적한 논란을 낳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소스 씨는 “뭔가 스캔들러스해야만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예술은 스캔들이 아니라 사회에 비판적인 소리를 내는데 필요한 도구이자 새로운 사회를 여는 문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중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보소스 루링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해답은 바로 ‘교육’, 그리고 ‘연결’과 ‘공동체’에 있었다. 릴라 씨는 “예술 교육이 변해야 해요. 사람들이 다양한 예술형태를 만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자주 모여 전시회를 가는 기회를 많이 마련하는 방법이 있겠죠. 그때마다 만나는 예술을 꼭 모두 좋아하지 않아도 돼요. 예술도 하나의 언어로써, 한번 소통해보는 거죠. 작품을 해석해보면서요. 지금까지는 이 예술이라는 언어와 사람들 사이에 연결이 희미했어요. 실제로 전시회를 열어보면, 그 안에서 이러한 작용이 일어나는 걸 직접 목격할 수 있거든요. 결국 일반 대중, 예술가, 예술이 모두 같이 움직여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라고 전했다.
사실 예술이 일상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말은 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기자가 깨달은 건, 이미 예술은 우리의 일상이라는 거다. 다만 우리에겐 일상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그것과 대화를 나누는 눈과 마음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예술적 경험을 통해 일상 속의 예술과 인사하고, 예술이 사회 속에서 계속 숨 쉴 수 있게 지켜주는 일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그날까지 한국과 헝가리 모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함을, 더 많은 고민을 해나가야 함을, 그리고 그러한 의무가 내게도 있다는 걸 알았다.
색색의 예술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고 뒤섞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게 된다.

임지수 기자  jisoo0717@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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