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미(중어중문14)

“우린 지금 상생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느 수업시간에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근 노키즈존 문제나 노인 무임승차와 같은 문제들이 이슈화되면서 과열되는 양상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여느 여론처럼 그들의 행동들에 몇 가지 제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일방적 배려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행동은 괘씸하게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얼마 후 한 편의 인터넷 기사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무임승차에 마음이 불편하여 지하철에 10만 원 익명 편지를 보낸 70대’라는 기사로, 익명의 노인은 어릴 적 입은 화상으로 장애 판정을 받아 한평생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한 점이 마음이 걸렸다며 5만 원짜리 20장을 동봉하여 지하철 공사에 보냈다. 기사를 보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면서 머리가 띵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 식당에서 아이가 시끄럽게 떠들고 자리를 더럽혀도 그대로 방치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아이를 제지하고 교육하는 부모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리가 부들거리는 내 앞에서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듯이 다가오는 노인도 있고, 지하철에 서서 시험공부를 하는 내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노인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부모와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뿐이다.
대학내일 칼럼 ‘노키즈존이 왜 필요해?’ 에서 작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또 한 명의 인간으로 여겨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약자인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대상화되고 배제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약자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까지도 포용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며 살고 있는 약자들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보자. 그것만으로도 상생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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