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리 궁전의 모습. 관광객이 잠시 없는 틈을 타 찍었다.

“Is this line... for... nazaries palace?”
갑자기 왼쪽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내가 돌아보자 떠듬떠듬 정확한 콩클리시 발음으로 물었다. 손에는 쥔 스마트폰에는 카카오톡 대화창이 열려 있었다. 나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그 사람의 얼굴이 놀라움과 당황함에 환해졌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그리고 자신이 한국사람임을 알고 한국어로 대답한 상황이 신기했나보다. 나에게 온몸으로 한국인임을 알려주었는데 그렇게 놀라니 나도 덩달아 눈이 커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게 9시 반) 이슬람식으로 지어진 알함브라 성에 가는 버스를 탔다.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도 제법 선선하다. 근처 구경을 하다가 나사리 궁전에 들어가기로 예약한 시간이 다가와 줄을 섰다. 나사리 궁전은 시간당 관광객 수를 제한해서 예약한 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더듬거리며 영어로 이 줄이 나사리 궁전에 가는 줄인지 물었다. 내가 한국어로 대답하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MJ.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녀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50일간 유럽 전 지역을 큰 계획 없이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가려고 했던 독일에 태풍이 불고 프랑스에서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미리 짜놓은 일정이 어그러져 딱히 예정에 없던 스페인으로 떠밀리듯 오게 되어 지금 나를 만났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나사리 궁전에서 셀카 찍는 MJ를 찍었다. 추운 곳에서 와서 두꺼운 외투를 들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사가 되어주었다. 둘 다 혼자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셀카를 주로 찍고 누군가가 찍어주는 사진은 얻기 힘들었다. 왠지 마음 맞는 친구를 운 좋게 사귄 거 같아 열과 혼을 불태워 사진을 찍었다. (둘 다 솔로였음. 솔로천국!) 알함브라 안에는 푸른 정원과 연못이 곳곳에 있어서 사진찍기 좋았다. 물이 귀한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지어진 이 궁전에 조성된 분수대와 연못은 왕의 특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가족 여행을 할 때는 엄마나 아빠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게 낯간지러웠다. 애교 있는 딸이 아니었기에 카메라를 찍을 때 생기는 애정 어린 분위기가 참 어색했던 거 같다. 오히려 이 타지에서 갑자기 만난 남이 찍어주는 게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혼자 여행을 와서 한국에 남겨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말이다.
내가 상념에 잡혀 있을 때 MJ는 이제 론다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며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는 서로의 여행을 축복하며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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